재산증여

<재산증여>

가정문제, 재산문제, 채권채무 관련,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하소연을 듣고, 민원해결의 법률적 상담을 주로 하는 법무사업의 특성상 간혹 있는 일이기는 하지만 법적인 해결책 아닌 인간적 동정으로 답을 해주다 보면, 잘못된 결과로 떼쓰는 사람을 만나는 경우가 더러있다.

“물에 빠진 사람 건져주면 보따리 내 놓으라!”는 속담 그대로 인데, 직접 당하고 보면 그 속상함이 며칠 밥맛을 잃게 하기도 한다.

얼굴에 고생한 이력이 역력하고 거무틱틱한 왕주름이 많은 촌부의 여자 “박 보살(그냥 성이 박이고 이름이 보살이라 했다)” 을 만난 것은 얼추 7년 前 쯤 이다.

당시 농사철이기도 했지만 법무사 사무실을 찾아온 박 보살은 그야말로 흙이 묻은 통바지에 검은 장화를 신고 농사일 하다 그대로 온 작업차림이었다.

평생농사 짓고 막일로 살다보니 환갑이 넘도록 화장한번 못하고 산다는 말로 사무실을 찾은 미안함을 얘기하므로 난 오히려 소박한 농부의 모습이 좋기만 하여 한껏 친절하게 상담을 해 드렸다.

당시 토지보상금이 꽤 나오게 되어 집을 장만 하였는데 나머지 돈으로 대토를 하려고 나를 찾았다는 것이다. 마을 이장이 그동안 일을 해줬는데 이웃에서 이장만 믿지 말고 주위에 아는 사람이라도 통하라고 하여 어찌어찌 연결이 되어 내게 온 것이다.

그 때 몇 번의 상담으로 현금도 분산시켜 통장 관리하도록 안내해 주었고 대토도 적정 가격으로 매입하도록 해주었더니 환한 웃음으로 농사짓기가 한결 수월해졌다고 말하며 그해 가을 수확한 농작물(감, 밤)도 잔뜩 갖다 준 순박하고 어진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 인연으로 무슨 일이 있으면 꼭 내게 찾아와서 묻곤 하다가 박보살은 자신의 살아온 과정을 자연스레 내게 얘기하게 되었다.

여자로서 살아온 그녀의 인생은 참으로 기구했다. 산촌마을에서 태어나 학교는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채 처녀시절 이웃 마을의 유지였던 기혼자에게 속아 혼인식 한번 치르지 못하고 그 사람 자식을 가지게 된 사실,

온갖 수모를 겪으면서도 잉태된 생명을 지우지 못하고 그 자식이 태어나자마자 장애를 가진 것을 알게 된 유지가 자신과 피붙이를 버려두고 도시로 가버린 뒤 자신의 운명은 장애아인 자식을 키우기 위해 험한 품팔이 노동과 농사일로 40년을 지금의 마을에서 살아왔다며

모진세상 등지고 목숨 끊으려 할 때가 한 두 번 아니었는데 그때마다 걸리는 게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고 온종일 저만 쳐다보고 있는 피붙이인 장애자식이 걸려 죽지못해 살았다는 얘기였다.

그렁저렁 세월 살아 이제 내 몸 늙고 자식나이 40세가 되고 보니 내 죽는 건 괜찮은데 저 놈 돌볼 사람 없는 게 기가막혀 자식돌볼 사람을 궁리궁리 찾는 중에 마을사람 몇이서 권하길 박 보살 앞으로 된 집하고 땅을 장애자식 앞으로 해주면 그 재산을 보고라도 여자가 와서 살림을 해주지 않겠느냐 해서 자신의 재산을 모두 자식에게 주겠다는 것이다.

그런 동네 사람들의 애기만 듣고 자기의 재산 모두를 증여하겠다는 박 보살을 내가 극구 말렸다. 요즘 세상 어느 여자가 재산보고 와서 자기 평생을 받쳐 장애남편을 돌볼 것이며 혹시 그런 여자가 있어 온다 해도 재산만 노리지 누가 생모인 박 보살처럼 농아남편을 돌봐주겠냐고 한사코 말렸다.

이미 결심을 굳히고 나를 찾아온 박 보살은 그래도 좋으니 사지(四肢)가 멀쩡한 자식인데 장가라도 한번 들게 해주는 게 자신의 도리가 아니냐며 고집을 부리는데 정말 모정인지 집착인지 나의 설득이 먹히질 않았다.

겨우겨우 달래 그럼 재산을 넘기되 우선 절반만 넘기자 그 정도도 시골에서는 큰 재산 아니냐는 달램으로 집과 땅의 절반만 장애아들 앞으로 넘겼다.

그 이후 박 보살은 나를 ‘참 고마운 소장님!’이라며 농산물도 몇 번 같다 주었다.

2009년 한창 더운 어느 날 함안 외곽도로를 지나치다 논길에 머리에 무거운 바구니를 이고 태양볕에 새까맣게 그을린 촌부가 총총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

함께간 아내와 나는 저렇게 힘든 농사를 짓는 나이 든 촌부가 안스러워

‘농촌마다 젊은 사람은 없고 노인만 남은 현실이 걱정이다’라는 대화를 하며 아낙의 모습을 자세히 보니 바로 그 박 보살이 아닌가!

내가 알기로70세가 된 나이인데...

짧은 순간이었지만 뭉클한 연민으로 가슴이 얼마나 먹먹하였는지 모른다.

그 얼마 후 박 보살이 다시 사무실로 찾아왔다.

이유인즉 장애자식 앞으로 된 재산을 다시 자기 앞으로 돌려놔 달라는 것이다.

재산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40세 여자가 오긴 했는데 불과 몇 달만에 집을 저당 잡히고 은행돈만 챙겨서 달아났다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장애인에게 나오는 복지기금이 자식 앞으로 재산이 있다고 그마져 지급대상이 아니라서 못타 먹는다며 그것도 억울해서 원래대로 환원하겠다는 것이다.

세상물정 모르기로서니 이 또한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지난번에 재산 넘기면서 취,등록세에다 증여세까지 지출한 것이 얼마인데 또 다시 그 부담을 안으려 하니 나의 안타까움도 여간 커지 않았다.

그러나 결정의 문제는 내 몫이 아니었고 박보살의 판단에 따르는 일이니 달리 도리도 없었다.

박 보살의 얘기인즉

40넘은 저 어리석은 자식을 밤낮 지킬 수도 없는데 못된 맘 가진 일가들 중에서 틈만 나면 장애자식을 차 태워 면사무소에 데리고 나가서는 인감증명서 발급받아 땅을 처분하려해서 치마속에 감춘 자신의 끈달린 주머니에 인감도장, 통장을 항상 차고 다니는데 그 짓도 못하겠고 그냥 자기 앞으로 소유권이전을 해야겠다는 말끝에 증여 보다는 매매로 하는 게 비용이 싸게 드니 그리 해달라는 것이다.

내가 놀란 것은 글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고 사는 박보살 입에서 증여니 매매니 하는 정확한 용어를 쓰고 벌써 계산을 하고 온 것으로 보아 누군가가 박 보살을 뒤에서 봐 주든가 조종을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여러 상황을 에둘러 물어 보니 박 보살이 자식의 재산에 집착하는 이유가 어느 신당에 다니면서 알게 된 모 보살이 이래저래 시킨다는 사실을 파악하였다.

답답도 하고 괘씸도 한 일이지만

자신의 재산을 도로 가져오겠다며 고집을 부리는데 달리 말릴 방법도 없고

박 보살에게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모든 일은 정상적으로 하는 게 좋으니 매매도 아닌 것을 매매로 하여 나중에 위장매매로 문제가 생기기 보다는 자식에게 다시 증여 받는 것으로 신고하고 세금 낼 것은 내는 게 좋다고 설득하였다.

결국 증여의사 철회로 재산을 다시 환원시키면서 그에 따르는 비용을 알려주고 증여세는 등기후에 내는 것이니 증여세 신고도 즉시 하라며 우리사무실과 거래하는 세무사까지 오게 하여 소개시키고 일을 마쳤다. 그게 1년전쯤의 일이었다.

오늘 아침에 출근하자 박 보살과 다른 여인 한명이 사무실에서 담배를 피우며 웅크린 채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놀라기도 하였지만 나의 사무실에서는 누구도 담배 피우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데 담배연기를 물씬 맡게 되자 짜증이 나왔다.

그러니 애꿎은 직원에게만 화살이 돌아간다.

“한 대리 뭐하는 일이냐! 아침부터 사무실에서 담배연기 나게 하고...”

나의 언성이 약간은 높았든 것 같다.

그러자 함께 온 여인이 대뜸 “저 법무사에게 돈 달라 그래!”

무슨 도깨비 장난인지, 날벼락인지 내가 졸지에 빚쟁이신세가 된 듯한 분위기였다.

무슨 돈을 말입니까?

그 때 여인이 도끼눈을 뜨고 늘어놓는 얘기는 내가 일자무식인 박 보살을 꼬드겨 등기를 하게하여 등기비용만 몇백만원 받아먹고 일은 제대로 해 주지 않아 세무서에서 증여세에다 과태료까지 포함 천만원이 넘는 돈을 내라는 통지가 날아왔다는 것이다.

등기비용이래야 20만원 정도 인데 이 여인은 등록세,취득세 조차 법무사인 내가 받은 것으로 몰고 증여세도 나더러 내 놓으라는 것이다.

일단, 당사자가 아닌 여인은 호통을 쳐서 내 사무실에서 나가게 하고

나중에 박 보살을 통해 전해들은 전후 사정은 함께 온 여인이 자기와 아들을 돌봐주는 어느 신당여인(보살님 이라고 깍듯이 호칭)인데 그 당시 자식의 재산을 자기 신당에 시주하는 것으로 해 놓으면 모든 등기비용을 신당에서 대고 농아인 자식을 한평생 돌봐 주기로 약속 하였단다.

그러다 내게 오는 바람에 등기도 박 보살에게 했고 세금도 지금 천만원이 넘게 나왔으니 책임을 모두 내게 떠넘기라 하여 같이 왔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 이렇게 착한 사람을 미혹하는 사악한 인간이 끊임없이, 쉬임없이 도처에 존재하는 혼탁한 실상을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 보살님이라는 여인은 박 보살을 내세우기만 하고 자신은 교묘하게 뒷전에 있으니 나로서는 박 보살에게만 물을 수 밖에...

그런데 문제는 이 무지렁이(미안한 표현이지만) 박 보살이 내 말 보다는 보살님이라는 여인의 말을 더 믿는 것 같아 나로서는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연결했든 세무사에게 자초지종을 듣고 보니 증여세 세무신고 작성을 다 해놓고 아무리 연락을 해도 박 보살이 다른 사람과 함께 있으면서 그 돈은 당장 안내도 되는 돈이고, 나중에 우리가 알아서 할테니 연락조차 하지 말라며 홀대하는 통에 기분만 나빴단다.

할 수 없이 오후엔 주소를 가지고 박 보살의 집에 직접 찾아갔다.

나는 박 보살을 앞세우고 그 보살님(?)인 여인이 있는 데를 같이 가자! 만약 그 보살님이 모두 시켰다면 경찰에 신고하여 그냥 두지 않겠다며 윽박지르기까지 하자 그 보살님은 큰 산(무슨 말인지 모르겠다)에 있기 때문에 지금 만날 수도 없다며 그때서야 박 보살은 자신이 잘못 했다면서 손을 모아 비는 게 아닌가! 참으로 어리석고 불쌍한 행동이었다.

세상물정 모르고 분별력 없는 박 보살의 이 모습을 탓 할 수도 없다. 그러니 그동안 상담 잘해주고 결과가 잘 못 되었을 때 내게 떼쓰는 사람들 대부분은 그 원인이 무지(無知)에서 비롯됨을 경험으로 알 뿐이다.

면단위 농촌에는 아직 선,악조차 구별 못하고 판단력조차 없는 박 보살과 같은 사람이 적지 않음이 현실이고

조금의 돈을 가진 노인들에게 보이스피싱 이 도사리고, 기도와 병치료를 빙자한 마수(魔手)가 손을 뻗고, 만병통치약 이라며 불법 의약품을 파는 미혹은 도처에 깔렸는데... ...

이렇듯 순박한 사람들을 돌봐 줄 만큼의 이 나라 복지행정력이 미치지 못함이 안타까울 뿐이다.

by 마음 | 2012/01/10 16:37 | 삶의 향기 | 트랙백 | 덧글(0)
가족관계증명서

<가족관계 증명서>

옥희(玉姬)는 올해 25세의 아리따운 숙녀로 지방대학졸업 후 2년 동안의 각고 끝에 행정직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였다.

노량진 옥탑방 생활을 3년 넘게 하면서 참으로 힘든 시기를 자존심과 오기로 자신과의 싸움에서 끝내 이길 수 있었던 버팀목은 아이러니 하게도 부모님이 반대하는 개명신청에 대한 반항심 이었다며 웃는 모습이 참으로 청아하다.

고등학교 1학년때 우연찮게 접한 성명학이란 제목의 책을 읽고, 이름이 그 사람의 인생에 미치는 영향력에 관한 내용을 공감하였고

좋은 이름, 큰 이름은 인생의 철학적 의미에서도

그 이름 속에 건강운과 출세운이 있다는 운명론적 귀결을 얻었는데

갑자기 자신의 이름이 “옥희” 玉(구슬) 姬(계집) 임에 좌절이 생겼다는 것이다. 특히, 姬(계집 희) 라는 말이 너무 자존심을 상하게 하여 화가 났단다.

이름으로 인한 사주팔자나 운명론을 다 믿는 것은 아니지만

이상(理想)을 높게하여 원대한 꿈을 실현하고픈 생각으로 국문학 공부를 열심히 하면서 방송국 기자나 변호사가 되고 싶은 자신의 야망과는 이름이 너무도 걸맞지 않더란다.

자신의 시시하기만 한 이름에 대한 초조함이 생기고 어찌 생각하니 천박하다는 느낌이 들자 자기의 이름을 이렇게 경솔하게 지어서 출생신고 한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 들었고.

오빠의 이름 원일(元一) 언니의 이름 채현(彩賢))에 비하여도 자신의 이름 옥희는 유흥가 기녀들에게나 쓰일 듯한 어감과 뜻을 가진 것 같아 부끄럽고 분한 마음마저 생겼다. 그러나 막내인 자신을 누구보다 챙겨주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야속한 마음을 나타낼 수도 없었다.

한동안 속으로만 앓다 친구들과 속닥임 끝에 자신의 고민을 호소하고 친구들 사이에서만이라도 이름을 ‘정현’으로 부르기로 했으니 친구들에게는 그렇게 모두 동의를 받았다.

이-메일 끝엔 항상 웃는 모습의 ‘정현 보냄’이 모든 문서의 종결이었다.

대학 1학년 때 호적상의 이름이 자신에게 거부감이 생겨 사회생활을 소극적으로 할 수 밖에 없다는 이유로 법원에 개명을 신청한 30대 중년의 신청인에게 이름도 ‘헌법상 개인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 이라 하여 허가 결정을 받았다는 기사를 보고옥희는 자신의 이름도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어 당장 개명신청을 하려니 당시 만 18세인 자신은 신청권이 없고 법정대리인인 부모님의 신청으로만 가능하다는 설명을 들은 것이다.

그러나 생활에 바쁜 아버지는 그깟 이름이 뭐 대수냐며 “신경 끊어라!” 라는 말한마디로 묵살해 버렸고 어머니마저 ”공부만 열심히 하면 그 이름으로 그냥 살아도 아무도 무시하지 않는다“는 말로 거절하는 바람에

옥희는 참으로 자신의 고충을 몰라주는 부모님이 야속하기만 하여서 결심한 것이 사회인이 되기 전에 내 스스로 이름을 바꾸겠다는 반감이 오늘까지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오기와 열정으로 공부하여 비로소 공무원시험을 합격하고

공무원 교육원에 입소 안내와 신원조회 서류와 자기진술서를 제출하라는 통지를 받았다.

교육원 입소까지 몇 달의 여유가 생긴 옥희가 제일 먼저 시작할 것은 ‘개명신청’인지라 지난 9월 중순 법무사인 내게 찾아온 옥희의 개명사유를 들으며 절차상 필요한 서류인 본인과 부모님 각,각의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받아 오게 하였다.

곧 올 것 같았든 옥희가 보름이 지난 후에 어머니와 함께 찾아온 날의 분위기는 지난번에 만난 옥희가 아닌 듯 표정이 어둡고 날카롭기만 했다.

그동안 주민등록등본은 발급받은 적이 있지만 처음 발급받아 본

어머니 가족관계증명서에는 오빠와 언니의 이름이 빠지고 자녀로 자신의 이름 외 모르는 사람의 이름이 함께 올려진 것을 발견하고 의아했다.

처음엔 잘못 발급된 줄 알고 담당직원에게 확인까지 한 옥희는 자신의 가족구성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어머니에게 그 이유를 묻자,

옥희보다 더 놀란 표정의 어머니는 창백한 안색으로 거의 혼이 나간 듯 한동안 황망해 하시드니 결국 눈물을 쏟으며 자신의 기구한 과거를 설명하는데 옥희의 출생내막은 어머니의 ‘혼인외의 자’라는 사연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어머니는 전혼중에 옥희를 출산하여 전 남편의 호적에 출생신고까지 하였으나 지금의 남편과 재혼하면서 혼인외의 자로 이중 출생신고가 이루어져 지금의 아버지가 인지한 것이 되므로 결국 어머니의 가족관계증명서의 자녀 두명은 그러한 연유라는 고백까지 들은 것이다.

그러니 이 날까지 살아오면서 어머니는 딸에게 출생의 비밀을 설명할 방도를 찾지 못한 채 지내 오다가 2008년 호주제 폐지로 남성중심의 호적등본이 없어지자 자신의 전혼 내력이 나타나지 않음에 고민거리가 저절로 해결된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충격에 휩싸인 딸을

어떻게 대하여야 할지! 진정시킬 방법조차 알지 못하는 어머니와

부모님 특히 엄마에 대한 배신과 미움으로 자신의 존재는 살 가치가 없다고까지 낙망한 딸이 나에게 찾아온 것이다.

자신의 태생적 정체를 알게 된 옥희는 혼돈과 분함으로 이미 며칠을 밖으로 돌다가 모든 과거는 어머니의 일이고 자신은 자신의 삶을 살겠다고 다짐은 하였으나 또 잠을 자고 일어나면 견딜 수 없는 악몽인 듯 몇 번이나 “어쩌면 이럴 수가 있느냐며... 울고 몸부림까지 처 봤지만 어머니는 묵묵부답! 그냥 흐느끼기만 하니 그 답답함을 금할 수 없어 법적으로 신분관계를 깨끗하게 정리할 방법을 묻고자 오늘 함께 온 것이란다.

나는 먼저 옥희 어머니에게 한마디 안할 수가 없었다.

“호주(戶主)중심의 호적이 사라진 지금의 가족법상으로 전 남편과의 혼인관계는 숨길 수 있어도 혈통주의는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낳은 자식은 숨길 수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가족관계증명서”입니다.

이 신분관계는 사실에 근거하는 법인데 있는 사실을 어떻게 없는 것으로 하겠습니까! 비록 사정은 있었겠지만, 언젠가 알게 될 사실을 미리 알리지 않은 것은 어머니가 잘못 하신 것입니다.

지금 남편과의 사이에 옥희가 태어난 것으로 출생신고를 하면 친자로 인정받고 법적으로 모든 게 해결될 줄로만 알았다는 옥희 어머니는

비밀스런 자신의 과거를 고스란히 확인시키는 이 ‘가족관계증명서’가 웬수(?)같이 여겨지는 듯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옥희에게도 말했다.

“네가 출생의 비밀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고유한 네 이름을 네가 스스로 거부하고 다른 이름으로 개명을 하려다 알게 된 자작지얼(自作之孼) 이기도 하다.

때문에 정체성의 혼란으로 조금 힘이야 들겠지만 옥희라는 이름 그대로 사용하고 어머니의 가족관계증명서를 제출하는 일을 그만두면 고통스러울 이유도 별로 없지 않느냐!

너는 지금 남들이 그토록 부러워하는 공무원시험을 통과하고 가장 좋은 사회인으로의 출발점에 서 있다.

엄마는 엄마의 인생을 힘들게 살아왔지만 너는 너의 인생을 희망적으로 살면 되는 데 엄마의 고통을 네가 다시 짊어질 필요는 없잖느냐? 그러니 자승자박(自繩自縛)하지 마라!

네가 고민하는 네 출생의 비밀은 다른 사람에게는 관심사항도 아니다.

‘스티브 잡스(Steve Jobs)’처럼 네가 아주 유명인사가 되어 자서전 이라도 쓸 정도라면 그 때는 이미 혼인외 출생자라는 비밀 따위는 문제조차 되지 않는다 ! 그러니 지금 당당히 살아라!

사람에게는 ‘본인의지로 선택 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게 있는데

그런 운명은 반항 할 수도 없고, 반항한다 하여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순응하는 것이 고뇌하는 것보다 낫고 살다보면 잊혀진다.

젊음의 때가 생각만큼 길지가 않으니 어제보다 오늘을 중하게 여기고, 매 순간순간 열정으로 사는 것이 존재의 본질이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2시간이 훌쩍 넘었다.

두 사람 모두 수긍하는 듯 ‘고맙습니다!’인사를 몇 번이나 하며 돌아가는 어머니와 딸의 어깨가 들어 올 때 보다 한결 높아 보인다.

그래! 오늘의 사건 수임은 상담보다 긴 설교로만 끝났지만, 그래도 무거운 삶을 힘겨워 하든 사람에게 조금이나마 짐을 들어줬으니 내 하루의 무게는 많이 가벼워 졌다!


2012 임진년이다!  새롭게 도전하고 적극적 사고로 남은 여생을  살아야 겠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명한  "깊은 바다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는  성경말씀을 올해의 지표로 삼겠다.  미미하지만 내게 주어진 달란트로 봉사와 베푸는 삶을 살 것을 다짐해 본다.
가사상담을 위한 적극적 노력의 일환으로 나의 노-트에서 관련된 글을 실었다. 다음에는 이혼소송으로 고통 당한 어느 가정의 사례를 싣고 싶은데, 비슷한 고통을 겪는 분들에게 유익이 될지,  고통만 가중시킬지를 몰라 깊은 고심을 아니 할 수가 없다. 가정이 붕괴되면 가장 먼저 사회적 파급을 미치는 것은 비행소년으로 일탈하는 결손가정의 자녀들이다. 
원래 비행 청소년은 없다! 가정의 무관심에 의한 어른의 문제가, 발달과정의 청소년의 건전한 성장을 어둡고 힘들게 했을 뿐이다.
      
 

by 마음 | 2012/01/02 10:12 | 隨想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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