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복무문(禍福無門)

추억의 누나!  

70년대 초 이종사촌 정숙 누나와 나의 관계는 참으로 따뜻했다.

누나는 시골에서 상경한 후 고생은 하였지만 그래도 미용기술을 익혔기에 종로의 번화로운 미용실에서 미용사로 근무하며 돈을 만지고, 그 무렵 나는 도서관과 학원 언저리를 겉돌며 머리만 긁적거리는 때였다일요일이나 방학 때면 시립도서관은 이른 새벽부터 줄을 서야 선착순 입장을 할 수 있었는데 막상 도서관에 들어서면 읽고 싶은 책 몇 권 대출받아 지정 좌석에 쌓아두고는 도시락부터 까먹는 게 일이었다.

내 하루치의 읽을거리 식량으로 책은 충분했지만, 정작 오전 11시가 되기도 전에 장에서는 요동치는 아우성이 그치지 않던 배고픈 학창시절이었다

그 무렵 도서관에서 가까운 곳에 누나가 근무하는 미용실이 있다는 게 얼마나 든든했는지 모른다. 두어 달에 한번 씩 누나를 찾아가면 맛있는 빵도 사 주고 내게 몇 천원의 용돈도 쥐어주며 공부 열심히 해서 집안의 대들보가 되라는 소리를 해주는 고맙고 장한 여장부였다.

어느 날 도서관을 나와 저녁 늦은 무렵 누나를 찾아가는 날로 기억한다. 그런데 누나가 안 보인다. 윈도우 안을 기웃거리는 내게 누나와 동료 미용사로 근무하는 얼굴 예쁘장한 다른 누나가 나오더니 정숙이 오늘 고향에 갔는데, 며칠 출근 못할 것이라는 얘기를 전한다.(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때 누나는 고향에서 맞선 본 후 곧 결혼하게 된다.)

 그 소리에 맥이 빠져 터덜터덜 거리로 나왔다. 종로2가 서점 앞에서 버스를 타야 했지만 차비가 없다. 오늘 누나 만날 것을 염두에 두었기에 빈주머니는 걱정도 안했는데 제대로 발등 찍힌 꼴이었다. 도리 없이 성북구 자취집까지 걸어가기로 작정은 하였지만 걸을 생각만으로도 내 어깨는 축 늘어졌는데 그 때 누군가 내 어깨를 톡톡두드린다. 조금 전 미용실에서 만났던 그 누나였다.

그 누나 손에는 몇 장의 지폐가 들려있었다 너 공부 잘했다고 정숙이가 자랑하더라!”라는 말과 함께 내 주머니 속에 돈을 쑥 집어넣는 것이다. 내 알량한 자존심에 손으로는 받지 않을까 봐 그냥 주머니에 넣어준 것이다. 그리고 돌아서며 한마디 더 던진다.

맛있는 거 사먹고 힘내서 공부 해!“ 그 이후 나는 누나가 근무하는 미장원 근처에 가지를 못했다. 그 예쁘장한 누나와 마주쳤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나로서는 도무지 감당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40년도 넘은 70년대 초쯤으로 기억하는 내 추억속의 누나들은 사촌동생 남의 동생 할 것 없이 공부하려는 남동생들에게 이렇게 아낌없는 성원을 베풀 줄 아는 거룩했던 누나들이다

그런데 반세기 가까운 세월이 지난 지금 상황은 어떤가!

당시 서울에 미장원을 차려준다는 신랑의 말에 현혹되어 서둘러 결혼했지만 결국 누나의 결혼은 속은 결혼이었고 빚으로 차린 미장원은 사기까지 당하여 서울생활 청산하고 촌부의 아낙으로 살면서 현재는 손자, 손녀 돌보는 60대 후반의 할머니가 되었다.

간혹 친,인척의 길,흉 모임행사때 만나보면 누나는 과거의 향수에서 깨어나지 못하여서인지 세상을 항상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며 잔소리가 엄청 심한 편이다. 그 순진하고 어질기만 했던 누나의 모습은 간데없고 입에는 늘 세상에 대한 불만과 사람에 대한 악담의 줄기가 거침없이 나온다. 젊었을 때 서울에서 겪었던 세파의 시련을 극복하지 못했던 트라우마로 그렇게 된 것 같다. 추억속의 누나는 고맙고 아름답기만 한데 현실의 누나는 친척들에게조차 기피의 대상이 되었고 나 역시 소원한 관계로 지낸다  

얼마 전 해외여행으로 휴대전화를 꺼 두었을 때, 누나가 내게 연락을 취했는데 공교롭게 내가 받지 못하는 일이 발생했다. 사무실에서도 여행 갔다는 얘기대신 안계시다고만 했다는데 고모님 별세 소식이었음에 그 전화를 받지 못한 것이다. 몇 년 전까지도 고향을 찾을 때는 일년에 두 번씩 꼭 뵈던 고모님을 요양병원에 가신 후로는 찾아뵙지를 못해 면목이 없었는데,,,

여행 다녀온 후에야 다른 경로를 통해 사망 소식을 듣게 되었지만 이미 장례도 끝난 뒤였다. 급히 정숙 누나에게 전화를 하고 맏상제인 사촌 동생에게도 전화를 하며 부의금만 송금시키고, 49제 기일에는 꼭 참석하겠다고 사죄를 하였지만 누나의 생각은 다른 것 같았다.

일부러 전화를 안 받았고 고의적으로 장례 참석을 기피한 몰염치한 인간이라는 것이다. 오해일지라도 내 잘못은 변명이 안 되지만 그 사람의 생각은 자신이 살아 온 삶의 결론이라 하지 않는가! 혹독하게 살아온 누나의 인생에서 형성된 생각이 독설과 악담으로 이어지니 나의 인내도 견딜 수가 없어 기어이 폭발하였다. 내가 그만큼 나쁜 인간이니 지금부터 인연을 끊자고 선포하고 만 것이다.

어떤 상태를 파악하는 사람마다의 잘못된 기준은 군맹무상(群盲撫象)과 같다. 실상을 알지 못하니 자기 주관대로 그릇 판단하고 일부만 판단하여 여러 소경이 코끼리를 만지듯, 꼬리만 만진 사람이 연상한 코끼리는 새끼줄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내게는 참으로 따뜻했고 장하기까지 했던 20대 초반의 정숙 누나는 어디 가고 어쩌다 저토록 불신 가득 탐욕스런 노파가 되었을까! 안쓰러움과 연민으로 가슴이 답답하지만 한번 잘못 주입된 누나의 세상관은 설득이 안 통하고 타협의 여지조차 없다. 이렇게 이종사촌 정숙 누나와의 관계는 종말을 고한다.

화복무문(禍福無門)이라 하여, 화나 복은 운명적으로 오는 게 아니라 자신의 말과 행동으로 온다는 성현의 말씀을 생각하기도 전에 나도 벌컥 성을 냈으니 참으로 슬프고 후회막급한 날이다!

2015년 6월의 노트에 쓴 글

 

by 마음 | 2021/11/05 14:24 | 隨想 | 트랙백 | 덧글(0)
혼 밥 아침

<혼 밥 아침>

 

여름이라도

아침에는 뜨끈한 국과 밥을 먹어야한다며

어머니는 하루도 빠짐없이 내 밥상을 그렇게 차려주셨다.

군대에도 구내식당도

국이 빠짐없이 나왔으니 내 식습관은 변할 일도 없고

국에 밥 말아먹는데 5분을 넘긴 적도 없었다.

 

결혼 초,

출근이 바쁜 아내가 아침 식단을 바꾸자하여

무심코 대답하였는데

졸지에 밥 대신 빵을 먹고 국 대신 우유를 마시고

아내는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는 환경이 되었다.

 

얼마 후,

생태에 혼란이 생긴 나는

대한민국 남자는 아침이면 뜨끈한 국과 밥을 먹어야 한다.”

출근을 서두르는 아내에게 삐죽거렸다.

43년 전의 이야기다.


그 대한민국 남자! 지금은 혼자 아침을 챙긴다.

하루는 밥을 먹고

하루는 빵을 먹는다.


2021. 8


by 마음 | 2021/08/10 10:48 | 삶의 향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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