水如我心(수여아심)

가훈을 정하다

30년 전쯤 기억이다.

초등학생이던 큰 딸이 아침 출근준비로 정신없는 나에게 아빠 우리 집 가훈이 뭐예요?”라고 묻는다. 갑자기 묻는 이유가 학교 숙제여서 적어가야 한다면서 생글거리는데, 정작 가훈이라고 할 만한 말이 생각도 나지 않아 엄마한테 물어봐했더니 딸은 선생님이 아빠한테 알아오라고 했다면서 고집을 피워 난감해진 나는 아내에게 당신이 알려줘! 라고 미루었다.

아내는 별것 아니라는 듯 우리 집 가훈은아빠 말이 법이다.” 라고 하여 한바탕 웃고 말았는데

그동안 아내와 딸에게 내가 양반 집 장손이라는 말을 자주하며 가부장적 권위를 내세웠던 허세를 은근히 비꼬는 말 인듯하여 얼른 책상 서랍에 10년도 넘게 묵혀있던 화선지를 찾아 펼친 글이 水如我心이란 글귀였다.

그래서 딸에게 우리 집 가훈은 水如我心(물과 같은 내 마음)”이라고 열심히 설명하고 적어가게 했는데

담임선생님이 딸에게 너희 집 가훈이 뭐냐?”고 묻자 정작 딸의 대답은 엄마 말이 법입니다!”라고 엉뚱한 말을 하여, 같은 학교 교사였던 아내를 기절초풍하게 했던 기억이 선하여 지금도 우리 애들에게 가훈은 엄마 말이 법이다로 통한다.

당시 맞벌이 부부로 각자 생활에 바빴던 탓에 제대로 된 가훈이랄 것도 없이 지낸 게 부끄러워 내친김에水如我心을 우리 집 가훈으로 삼기로 작정한 동기이다.

이 화선지 글은 내가 결혼할 때 집안어른으로부터 받은 것으로 기억하는데

누른 봉투체로 보관만 하다가 우연히 펼쳤지만 서체는 예서체나 해서체가 아닌 초서체로 먹물이 뚝뚝 떨어진 자국도 있는 일필지휘의 명필인지라 표구하여 액자로 걸어두기로 하였다.   

글쓴이가 草堂(초당)으로 낙관이 되었으니 초당선생의 글이다.

조선후기의 성리학자 이예봉 선생의 호가 草堂(초당)이었으니 그분이 쓴 글이 틀림없다면 나와 격이 잘 맞는 셈이다.

일반 명사로서의 草堂(초당)이란 원체에서 따로 떨어진 풀과 볏짚으로 지은 조그만 별채를 일컫는데, 조선후기 평민이 살던 대부분 집이 草堂(초당)이라면 현대의 서민들이 대부분 사는 아파트나 무엇이 다를까!

결국 평민의 글귀가 서민이 사는 아파트에 걸렸으니 어울림이 있는 셈이었다.

초당선생은 취사 이여빈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수학하였으나 관직에는 나가지 않고 학문에만 전념하여 노년에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정9품인 종사랑(從仕郞)의 품계로 최소한의 예우는 받았지만 미관말직의 벼슬로 봐서 각별히 뛰어난 학자는 아니었던 점이 오히려 나와 비슷하여 그 분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水如我心(수여아심)은 언제부터 확실한 우리 집의 가훈으로 나의 새김글이 되었다.  

물과 같은 내 마음水如我心

평온 할 때는 호수이지만 물의 성질로 사나울 때는 험한 폭우가 되기도 하고 세파에 부딪힐 때는 파도처럼 소용돌이치는 마음이기도하다.

한때, 삶의 방향을 잡지 못해 숨통 조이던 젊은 날도 있었고, 푸른 멍, 붉은 멍이 들도록 치열했던 중년의 때도 있었는데, 쫓지 않아도 가는 게 시간이고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고 강물처럼 흘러가는 의 절개지라 할 수 있는 요즘에야 너울너울 바다로 흘러가는 물이 水如我心이 아닐까

가진 것도 믿지말고, 아는 것에도 속지말며, 물 흐르듯 조용조용 욕심 없이 사는 게 水如我心 뜻으로 새기며 오늘의 일과를 차분하게 보내야겠다. 어제 집안 정리를 하다 베란다 창고에서 먼지로 뒤덮인 水如我心가훈액자의 흘림체 글을 보며 느끼는 감회이다.

 

2019. 10. 14

 

by 마음 | 2019/10/18 16:44 | 隨想 | 트랙백 | 덧글(0)
바둑, 술, 인생의 착각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 다시 그 역사를 반복할 것이다.”

이 말은 나치의 만행으로 역사적 비극을 겪은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 현장에 적혀있는 말이다. 2006년 그 장소에서 숙연한 심정으로 이 말을 되뇌면서 일본과의 관계를 심각하게 생각했었는데

오늘의 JAPAN과 과거의 JAPAN 무엇이 다른가? 오늘의 KOREA와  과거의 KOREA 무엇이 다른가? 한마디로 똑같다. 침략의 DNA를 가진 이웃나라 일본에 우리가 방심했을 뿐이고 기억을 하면서도 대비하지 못하는 정치적 무능력에 속앓이 할 뿐이다. 언제까지 한반도의 지정학적 한계를 넋두리하며 민족감정만 부채질 할 것인가!

그러나 이런 낭패는 국가만의 문제가 아닌 내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 일본을 망각하고 그동안 나는 일본에 너무 우호적이지는 않았는지 반성하고 또 반성해야 한다. 그 무렵 작성했던 글이 지금도 그대로 적용되는 이치에 놀라면서 2006년 나의 넋두리를 반복해 본다.   

요즘 이 아닌 사람들이 없이 고위직에 올라, 세상을 소란스럽게 하며 국민을 피곤케 하는 일이 비일비재 하더니, 차제엔 사법부조차 정치에 오염되어 진보, 보수의 개인 성향에 따라 법논리도 아닌 갈등 조장으로 법조인을 우롱하는 지경까지 이르러

나라를 걱정하는 원로들이 점잖은 말로 권면을 해도 들으려 하지 않고, 미래를 생각하는 학자들이 고언을 해도 마이동풍(馬耳東風)이라 차마 우리 입으로 저주와 욕을 퍼 부울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 한들

후안무치(厚顔無恥), 회총시위(懷寵侍衛)의 사람들이 세도를 누리는 시대에 참여되고 있음에 이제는 비위 좋은 군상(群像)의 거들먹거리는 소리며, 경제는 없고 악재만 남아 나라살림 축내는 꼴이며 차라리 보고 듣고 싶지 않아 책이나 읽고 바둑이나 두고 내 주량에 맞게 한 잔의 술이나 마시며 한심한 세월 보내고 있다. 상책도 없고 하책도 없다.

비록 사람을 등급으로 평할 수는 없지만 바둑에는 겸손과 수신(修身)이 있고, 술을 마심에도 절제와 진경(眞境)이 있음을 알면, 마음을 다스리는 예와 격을 알게 되어 세상을 다스림이 오히려 선망하여야 한다.(13년 전과 달라진 것이라면 바둑 대신 운동을 하는 편이다.)  

바둑과 술의 급은 이러하다.

초급인 18급에서 실력을 쌓아 1급에 오르면 이윽고 대망의 단이 된다.

()대의 학자 장의(張擬)의 저서 기경(棋經)에서 논한 바둑의 단계를 보면

 

(9) : 守拙(수졸) - 어리석게나마 지킬 줄 아는 실력을 갖춘 단계.

(8) : 若愚(약우) - 어리석기는 하나 바둑을 둘 줄 아는 단계.

(7) : 鬪力(투력) - 싸우는 힘이 생겨 바둑을 힘 있게 둘 수 있는 단계.

(6) : 小巧(소교) - 작은 기교를 부릴 줄 아는 단계.

(5) : 用智(용지) - 지혜로움이 엿보이는 바둑을 두는 단계.

(4) : 通幽(통유) - 심오한 바둑의 세계에 들어가 바둑을 두는 단계.

(3) : 具體(구체) - 바둑의 근간을 구체적으로 익힌 단계.

(2) : 坐照(좌조) - 앉아서 바둑의 세계를 관조하는 단계.

(1) : 入神(입신) - ()의 경지에 들어가서 바둑을 두는 단계.

라 하여 바둑의 엄격한 권위와 위계를 구분하고 있다.

 

()에도 급과 단이 있음을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겠지만

시인 조지훈의 돌의 미학酒道有段은 술을 마시는 데에도 급수와 단이 있음을 이렇게 분류했다.

9급은 부주(不酒).. 술을 아주 못 먹지는 않으나 안 먹는 사람.

8급은 외주(畏酒).. 술을 마시긴 마시나 술을 겁내는 사람.

7급은 민주(憫酒).. 마시기도 하고 겁내지도 않으나 취하는 것을 민망하게 여김.

6급은 은주(隱酒).. 취할 줄도 알지만 돈이 아까워서 혼자 숨어 마시는 사람.

5급은 상주(商酒).. 술을 좋아 하면서도 무슨 잇속이 있을 때만 술을 내는 사람.

4급은 색주(色酒).. 성생활을 위하여 술을 마시는 사람.

3급은 수주(睡酒).. 잠이 안 와서 술을 마시는 사람.

2급은 반주(飯酒).. 밥맛을 돕기 위해서 술을 마시는 사람.

초급은 학주(學酒)..술의 眞境(참다운 멋)을 배우는 사람. 주졸(酒卒),

초단은 애주(愛酒)..술의 취미를 맛보는 사람. 주도(酒徒)

2단은 기주(嗜酒)...술의 진미에 반한 사람. 주객(酒客)

3단은 탐주(眈酒)...술의 眞境을 채득한 사람. 주호(酒豪),

4단은 폭주(暴酒)...酒道修練하는 사람. 주광(酒狂),

5단은 장주(長酒)...酒道 三昧에 든 사람. 주선(酒仙),

6단은 석주(惜酒)...술을 아끼고 인정을 아끼는 사람. 주현(酒賢),

7단은 낙주(樂酒)...마셔도 그만 안 마셔도 그만, 술과 더불어 悠悠自適 하는 사 람. 주성(酒聖),

8단은 관주(觀酒)라 하여 주종(酒宗), 인데

술을 보고 즐거워하되 자신은 이미 술을 마실 수 없고 남들이 마시는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빙긋이 웃는 상태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술을 마시는 가장 높은 경지는 세속을 초월하여 즐기는 단계인 주성(酒聖) 까지가 마지막이라고 봐야 한다.

술의 9단은 폐주(廢酒)라 하여 열반주(涅槃酒)가 되면, 한 잔만 더 들어가도 저 세상으로 곧 떠날 지경에 이른 상태를 말하기 때문에 이미 다른 세상 사람이다.  

따라서 바둑의 9단인 입신은, 산전수전(山戰水戰) 다 겪고 승부에 초연하여 유유자적(悠悠自適)할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쯤 되어서 얻게 되는 명예이지만

9단이란 이미 술로 열반에 들었으니 명예도 존재도 없는 딴 세상 사람이다.

하긴 요즘의 바둑에서는 갓 입단한 저단자 중에도 실력이 워낙 뛰어나 고단자들을 제치고 최고단인 9단마져 누르며 세계대회에서 우승하는 통에 엄격한 위계나 복잡한 승단절차를 생략하고 곧바로 입신의 경지에 이르는 천재들이 있으니 바둑의 로서 발전이라 해야 할지...  

평범한 나의 생활에서는 이겨야 사는 프로보다는 바둑은 3, 술은 2급인 반주(飯酒),정도로 수분지족(守分知足)하며 사는 것이 人生의 일등급이 아닐까? 하는 착각을 하지만, 아니다! 침묵으로 현실을 회피하고, 고상한 척 살아가는 시답잖은 내 행동은 자아성찰 없는 노회한 늙은이에 불과한 인생의 낙오자 아닌가!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 다시 그 역사를 반복할 것이다. 국가나 개인이나...

2019. 8. 2.

by 마음 | 2019/08/02 11:21 | 隨想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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