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관광

예멘 난민을 역사적 관점으로 본다.

 

8월 여름휴가를 해외여행이 아니라면 제주도에서 함께 지내면 어떻겠느냐는 제주도에 있는 지인의 제의를 받았을 때, 제주도도 해외이니 그렇게 하자며 쉽게 승낙하고, 집에 와서 아내의 동의를 구하자 당연히 반색할 줄 알았던 아내의 태도가 시큰둥하다.

지인의 집이 호텔보다 못할 것도 없는데 왜 그러냐는 반문에 의외의 답이 돌아온다. 제주도가 너무 복잡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관광보다 외국인, 특히 중국인과 예멘 난민도 있어 마뜩찮다는 이유다.

요즘 뉴스에 많이 거론된 예멘 난민의 문제를 휴가지 거부의 핑계로 삼는 아내의 태도에 이번엔 내 부아가 슬슬 치민다.

 

난민이 있고 중국인들이 많이 찾는다면 아름다운 관광지의 명성이 퇴색된다는, 뭔가 잘못된 인식이 아내 및 일반 대중들에게 이미 만연되어 있는 듯 하다. 중국인들이야 돈 들고 찾아와 관광이 끝나면 돌아 갈 사람들이니 그렇다 치고, 돈도 없이 목숨을 걸면서 살 길을 찾아 제주도에 와 난민을 신청한 예멘인들에 대한 인식은 또 왜 이렇게 부정적인가!

 

물론 제주도민의 입장에서 거부감을 표시하는 상황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제주도민도 아닌 아내는 왜 관광을 기피하리만큼 싫어하는가?

답은 그 사람들의 종교가 무슬림 이어서 싫다는 것이다. 어휴! 모태부터 신앙의 기반이 기독교인 아내에게는 무슬림에 대한 적의가 깃든 것이다.

 

그들이 그들의 조국을 탈출할 수밖에 없는 사유로 정치적, 종교적, 인간적 박해를 피해 난민으로나마 살기 위해 온 것은 한마디로 생존을 위해 온 것인데 세계 각처에서 모두 기피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그들은 어쩌란 말인가! 야만적 정치를 피해 문명국을 찾아 목숨을 건 탈출을 한 생명들인데 그들은 어쩌란 말인가!

 

우리나라는 반 세기전 자유 우방국의 도움과 원조로 오늘의 번영을 이룬 나라다. 6.25 전쟁, 1.4. 후태 때 북에서 남으로 살길을 찾아 내려온 실향민들이나 빈곤에 찌들었던 우리 국민에게 우방국의 도움이 없었다면 어떻게 오늘과 같은 번영이 있었는가!

예멘에서 살 길을 찾아 이 땅에 온 사람들도 그렇게 이해해야 된다.

다만 목적지가 동족의 땅이 아닌 이족의 땅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런 그들에게 이질적 민족성, 종교의 다름, 자국인 일자리 잠식, 도시의 안전과 미관을 해한다하여 그들을 떠나라고만 하면 우리나라의 인권 존중은 얼마나 후진적인가!

실례로 우리나라도 난민의 역사는 일제 강점기부터 있어왔다. 그 무렵 우리의 선조들은 자유와 목숨을 부지하려 중남미로 하와이로 난민처럼 떠나지 않았는가! 물론 그 나라에서 인력이 필요하여 받아주는 조건이 지금과는 같지 않았지만

 

또한 우리나라의 난민구호의 역사에서 보면

1975430일 베트남이 패망하자 사이공(. 호치민)이 함락되기 전후 우리나라가 구출한 베트남 피난민은 보트피플 포함 약 3,000명 정도였다. 그러자 정부는 1977년 부산시 해운대구 재송동에적십자 난민보호소를 설립하여 이들을 보호한 적이 있다. 그들 중 2357명을 미국, 뉴질랜드등 17개국에 재정착하게 하였고 587명은 국내 정착을 시킨 뒤 적십자난민보호소를 1993년 폐쇄한 사례가 있다. (한국적십자운동 100년사 인용)

현재 세계 경제대국 10위권이라는 우리나라의 글로벌 위상으로도 제주도에 온 난민신청인을 범법자로 적대시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일단 사람목숨 살게 해주며 시간을 들여 그들이 정착할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 OECD 가입한 선진문명국인 우리나라의 인도적 국격으로 보나 국제인권규범으로 보나 맞다고 본다.

결국 내전에 시달리는 그들의 나라가 안정되고 문화와 풍습이 상이하여 우리나라에 정착이 어렵다고 느끼면 그들 중 대다수는 돌아갈 사람들이다.

국내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또 한국은 무역으로 먹고 살며 성공한 나라다. 이들 이슬람문화권 사람들이 지금은 난민 신세이지만 역사의 흐름이 바뀌어 이들의 도움으로 이슬람문화권과 더 큰 교류가 형성되고 상호 무역으로의 교역국이 될런지 알 수가 없잖은가!

제주도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자연유산을 간직한 우리나라의 자랑스런 관광지이다.

그런 면에서 그들이 머무는 동안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서 삶의 터전이라도 마련해주는 대한민국의 인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하긴 이런 담론보다 아내를 먼저 설득시키는 내 지혜가 우선이다. 덥다!

 

2018. 7. 20.

by 마음 | 2018/07/20 12:21 | 隨想 | 트랙백 | 덧글(0)
증여, 유언 신탁등기

<유언대용 신탁계약등기 설명>

 

도대체 이해를 못하는 이 장로님에게 은근히 부아가 치민다.

중견기업 대표이사까지 지낸 분이고 사업적 수단이 뛰어나 돈 꽤나 모은 사람치곤 융통성이 부족한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지만,

혹여 내 설명이 복잡해서 이해를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단도직입으로 다시 물었다.

장로님! 결국 막내딸에게 재산을 주고 싶은 것은 맞은데 증여로 주려니 증여세가 만만찮아서 세금 좀 줄이는 방법으로 주었으면 좋겠다는 얘기 아닙니까?” 큰아들과 딸에게 눈치도 좀 보이고……(세금 겁내는 건 사업했던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이긴 하다.)

 

공시가 3억이 넘는 집이니 증여로 주면 증여세 등 취득세가 4천만원 정도 나오고, 상속으로 주면 좋은데 살아서 상속하는 방법은 없고, 상속을 한다해도 다른 자녀 두 명이 제법 잘살고 외국에서 들어올 생각도 없지만 제 동생에게 동의를 해줄리는 없다고 하셨잖아요. 그러니

곁에서 장로님 부부를 돌보고 간병까지 해주는 셋째 딸에게 주고싶은 마음이라면 제 말대로 유언대용신탁서를 작성해서 등기를 하면 된다니까요!

그렇게 장로님 재산을 신탁등기하면 사시는 동안은 장로님 명의의 재산이고 돌아가시면 막내딸의 고유재산으로 등기할 수 있으니 바로 원하는바 아닙니까? 또 생전 신탁 등기된 재산은 상속재산이 아니므로 그때 큰아들과 딸의 동의를 받거나 도장 받을 필요조차 없으니 딱 좋은 제도잖아요!

 

2014년부터 시행된 유언대용신탁(신탁법 제59)을 설명하는데 이렇게 힘이 들 줄은 몰랐다.

장로님 셋째 딸이 사회적 적응이 뒤떨어진 이유는 중학교 다닐 때 받은 왕따의 충격 때문이었다고 한다. 재혼한 부인과의 사이에 태어난 셋째 딸은 초등학교 교사인 엄마의 품안에서 자라고 초등학교 입학 때부터 졸업까지 같은 학교에 데리고 다니면서 돌보고 방과 후 수업도 엄마 그늘에서만 지냈는데 중학교 입학으로 엄마와 떨어지면서부터 친하던 동창생들로부터 왕따의 돌림을 당한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엄마가 선생님이니 모든 친구들과의 일이 순탄했는데 중학교에 들어오면서는 믿었던 동창들로부터 네가 잘난 게 뭔데?”라며 수업 일탈을 일삼던 애들로부터 돌림을 당하고

심지어 지나가면서 옆구리를 팔꿈치로 가격하는 폭행까지 당했음에도 그런 사실을 2학년 때까지 숨기고 혼자 감당하다 급기야 수업시간에 당한 성적모독까지 겪고서야 장로님 부부가 알게 되었으니 셋째 딸의 정서불안과 까칠해진 태도는 이미 심각할 정도였단다.

결국 전문심리상담과 정신치료를 받아 얼마쯤 회복은 되었지만 성장기에 상처 입은 트라우마는 쉽게 치유되지 않아

장로님의 큰애와 둘째 애들처럼 좋은 학업성적이 아니다보니 취업도 힘들고 사회생활적응도 어려운 외톨이 성격으로 성년이 된 탓에 장로님 부부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기도의 십자가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워낙 심성이 착해서 부모에 대한 효성은 잘난 첫째, 둘째보다 지극하기만 하여 장로님이 뇌출혈로 병원에 입원하여 재활 운동하는 3년 동안 싫은 내색 한번 없이 그 어려운 간병을 해주었으니 세 손가락 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부모의 내리사랑에도 편애가 생겼다는 게 장로님이 지금까지 터놓은 가정사였다.

그러니 장로님은 자립이 어려운 셋째 딸에 대한 보장을 뭔가 해놓고 싶은데 큰아들과 딸의 시샘이 보통이 아닌데다 새로 들어온 며느리조차 야무지게 제몫을 챙기려는 듯 심상찮은 말들이 오가니 장로님이 살아서 위엄이 있을 때 셋째 딸에 대한 증여를 하려다 내가 비용도 줄이고 증여세 걱정도 없는 방향으로 유언대용 신탁계약등기로 방향 틀어준 것인데 그 신탁등기의 법적 유용성의 이해를 못하는 게 답답했었다.

 

신탁법은 바로 장로님 같은 경우의 부모가 자식들 중 고운 자식에게 선택적으로 재산을 줄 수 있는 최상의 법적제도이다. , 증여가 아니면서 결과적으로는 증여세 없이 증여한 것 같은 효과가 있는 제도이기도 하다.

신탁법 제59조에 유언대용신탁이란 부모생전에 부모와 자녀 간에 신탁계약을 맺어서 부모의 재산을 자녀에게 신탁하되 생전의 수익권은 부모가 가지고 부모의 사후에 자녀가 수익권을 갖는 것으로 내용을 정하는 방법이다. 부모님의 입장에서 더 많은 재산을 물려주고 싶은 자녀가 있는 경우에는 반드시 유언장을 작성하여야 하는데,

유언은 엄격한 요식행위로서 자필증서, 녹음, 공정증서, 비밀증서에 의한 유언으로 각각의 형식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그 효력이 무효가 되며, 또한 유언장을 작성하여 놓았다 하더라도 이후에 또 다른 유언장을 작성한 경우 기존의 유언장의 효력이 무효가 되게 됨으로써 먼저 작성된 유언장에 의해 증여받기로 예정되어 있는 자의 권리가 불안한 지위에 놓이게 되는 문제점 등을 개선한 현실적 제도가 '유언대용신탁등기'이다.


더구나 신탁등기시에 들어가는 세금은 정액등록세 및 등기신청 수수료 정도면 되고 증여세를 납부해야 하는 것은 아니므로 세금으로 비용이 들어가지 않아 부담도 없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위탁자 사후에 수익자인 자녀에게 이전 등기를 할 때에야 상속세의 적용을 받게 되는데 상속세의 경우 증여세에 비해서 감면규정이 많아 유리하다. 이 좋은 제도가 있음에도 활용도가 적은 것은 법 개정된지가 비교적 최근이고 또 나이 많은 부모님 세대를 상대로 법의 홍보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런 노력이 부족했던 것같다. 한편으로는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러주지 않고 노후생활을 보장 받으려는 연세 드신 분들의 의식변화도 한 몫 했기 때문이 아닐까!

2018. 7. 15.

 

by 마음 | 2018/07/17 17:32 | 隨想 | 트랙백 | 덧글(0)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