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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투리와 왕따> 부추를 경상도에서는 정구지라 부른다. 사전을 찾아보니 충청도에서의 방언으로도 쓰인다고 한다. 시골의 마당 넓은 텃밭과 들에 많이 키우는 여러해살이 풀이 정구지이다. 주로 겨울이 지나 봄에 싹이 자라면 윗줄기를 잘라 봄나물로 먹고 또 자라면 김치로 만들거나, 부침개로 지져 먹기도 하는데 꽃은 흰색으로 피기도 한다지만 나는 꽃을 본 기억은 없다. 그런데 며칠 전 어느 자연식품 광고에 정구지에 대한 해설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예로부터 부추를 정구지(精久持)라 일컽었는데 그 이유인 즉 부부간의 정을 오래도록 유지시켜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이란다. 그 외에도 신장을 따뜻하게 하고 생식기능을 좋게한다고 하여 온신고정(溫腎固精)이라 하기도 하고, 남자의 양기를 세운다하여 기양초(起陽草)라고도 하였단다. 또 과부집 담을 넘을 정도로 힘이 생긴다 하여 월담초(越譚草)라 하였고, 운우지정을 나누면 초가삼간이 무너진다고 하여 파옥초(破屋草)라고도 하였으며, 장복하면 오줌줄기가 벽을 뚫는다 하여 파벽초(破壁草)라고도 불렀단다. “봄 부추는 인삼.녹용과도 바꾸지 않는다”는 말과 부추씻은 첫물은 아들은 안주고 사위에게 준다”는 이 말은 아들에게 주면 좋아할 사람이 며느리 이니 차라리 사위에게 먹여 딸이 좋도록 하겠다는 의미라나. 또한 “봄 부추 한단 은 피 한방을 보다 낫다” “부부사이 좋으면 집 허물고 부추 심는다”는 옛 말이 있다. 추운 겨울동안 영양분을 가득 머금은 봄 부추는 상긋한 맛과 피를 맑게하는 효능으로 보약대신 먹기도 한다는 정구지 예찬 해설이었다. 그렇다면 정구지라는 말이 반드시 사투리가 아니었다는 말인가! 나는 경북 상주가 고향이어서 정구지라는 말을 어머니로부터 듣고 자랐지만, 서울로 전학간 9살 이후 정구지라는 말은 촌 사투리인줄만 알고 아예 쓰질 않았는데 정구지의 해설과 (精久持)의 한자표기까지 보게 되니 사실관계가 맞는지 여부를 떠나 새삼스레 고향에서 먹든 쌉쌀한 정구지의 입맛이 살아나고 사투리로 인한 어린시절의 아팠던 감회가 스친다. 내가 처음으로 사투리에 대한 거부감이 생긴 것은 초등학교 3학년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질문에 재빠른 답을 한 이후였다. 그 때 친구들의 까르르 웃음과 놀림이 얼마나 컸는지 나는 피해의식으로 한동안 말을 제대로 못하고 외톨이로 지내야만 했다. 몇 명이 아닌 반 아이들 모두로부터의 놀림은 내게 씻을 수 없는 평생의 상처가 되어 지금까지 사람들과의 사귐에 소극적인 성격으로 변화시킨 것을 보면 오늘 날 “왕따”의 문제는 당하는 입장에서는 그 피해가 너무 커다는 사실을 극구 알려 방지책을 세워줘야 한다. 내가 왕따를 당한 이유도 선생님의 질문에 대한 답이 “먼지!” 였는데 아무도 답을 말하려 하지 않아 내가 “문지요!”라고 사투리 말을 한 것 뿐이었는데, 촌놈의 말인지라 서울아이들은 박장대소 하며 웃었고 나만 보면 "문지요!"라며 내 사투리말로 놀리는 통에 얼마나 오랫동안 말을 않고 지냈든가! 그 왕따의 위력은, 당시 일제고사에서 만점을 받아 전교생이 참석한 조회시간에 내 이름이 불리어졌을 때조차 아이들은 또 웃었고 나는 부끄러워 교장선생님 앞에 나가지를 못하고 얼굴만 붉혀야 했으니... <나의 뇌리에는 지금도 그 때 아이들의 웃음에 주의를 주지 않고 함께 미소 지었던 선생님의 얼굴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그 이후 나는 철저히 표준말을 남몰래 외우고 억양을 감추는데 정성을 다했다. 그 유년의 서러움이 갑자기 “정구지”라는 말을 듣는 순간 떠오름은 이제 남은 나의 인생이 회상의 세월이기 때문인가 보다 정구지(精久持)가 사투리 이전에 한자어였다니...과연??? 그래! 그 서러웠던 기억을 되씹으며 오늘, 선생님을 오래도록 한 나의 아내와 정구지나 좀 먹어야겠다!
소통과 인간관계 사무실을 시내로 옮긴 후 모처럼 상담약속이 잡힌 날! 지하주차장에서 차를 가지고 올라오는데 주차장 입구에 빨간색 경차 한 대가 출근을 하려고 서두르는지 차를 앞,뒤로 움직이는 등 내 진로를 가로막고 방향을 정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다. 주변의 이동공간이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운전이 서툰 초보자인 듯하여 잠시 기다려 주었음에 이번엔 아예 차를 세워 버리고 한참을 그냥 머무르고 있다. 운전중에 요런 경우가 가장 예민한 자율신경을 촉발하는 순간이다. 경차는 불과 10여초 미만의 머무름이었겠지만 운전석에 앉은 내 졸갑증은 몇분은 기다려 준듯하여 더는 인내를 못하고 크락션을 한번 눌렀다. ‘나 좀 통과하게 어찌 해달라는 신호’이었다. 그러자 한번 더 움직여서 방향을 잡으려던 빨간차의 운전자가 창문을 내리면서 당황한 표정으로 조금 기다려 달라는 손짓을 한다. 처음에 놀란 것은 젊은 여성의 울 것만같은 슬픈(?)표정이었지만 자세히 보니 운전석에 앉은 여인의 가슴팍에는 어린아이가 안겨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운전감각이 그렇게 조심스럽고 서툴렀든 모양이다. 그런 사정도 모르고 크락션을 눌러 여인을 불안하게 했던 내 행동이 너무 미안하여 나 또한 자책감으로 황망하기만 하다. 당장 차에서 내려 제가 무엇 도와드릴 일이 있습니까? 묻고 싶은데 마음 뿐,몸의 움직임이 무디는 동안 빨간 차량은 방향을 잡고 속도를 높여 튀어 나간다. “저러다 엎어지겠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빠르게 가버린 젊은 여인의 날랜 운전을 보면서 알 수 없는 안쓰러움에 가슴이 먹먹하다. 아침부터 귀여운 자식을 가슴에 안고 운전을 해야하는 엄마는 마음이 얼마나 바빴을까! 옆에 앉힐 수도 없을만큼 갓난아이였다면 보육원이나 친정집에라도 데려다 주고 출근을 해야 하는 사정이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운전자가 애기를 안고 주행을 하면 안전은 어떡하나... 이렇게 육아를 병행하기가 팍팍한 현실이니 직장생활을 하는 가임여성은 출산을 기피 할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나는 비로소 목도한 것이다. 요즘 젊은 여성의 심리 저변엔 봉건적 신분사회의 타파를 위해 ‘연애는 하여도 결혼은 미루고, 결혼은 하여도 자녀 갖기를 거부할 수밖에 없었다’는 오래전 읽은 20세기 신세대 여성운동가의 자전소설 내용과 오히려 흡사한 면이 있다. 여권의 신장으로 사회구도와 동기부여는 확연히 달라졌음에도 자녀 양육에 대한 모성의 근본은 변하지 않은 때문이리라! ‘데일 카네기’의 저서 인간관계론에 “人生의 실마리는 인간관계의 설정에 있다”고 하였다. 침묵과 눈빛만으로 상대의 마음을 열게 하고, 그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신뢰의 원천이고 사랑이라고 한다면 손짓과 표정, 아기를 안고있는 광경을 보여줌으로 나의 졸갑증을 부끄럽게 했던 경차 운전자는 이미 인간관계론의 소통심리를 극복한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지난 해 미국여행 중 들은 교민의 얘기다. 커네티컷주 에비뉴 지방도로를 달리다 과속운전으로 경찰차의 추격까지 당하여 서게 된 미국생활 초보유학생이 처음으로 법규정위반 단속을 당하게 되니 너무 두려운 나머지 과속이유를 묻기도 전에 단속경찰에게 “난 지금 병원에 가는 중이다!”라고 대답을 하였는데 경찰을 정말로 무서워하여 놀란 표정과 당황으로 사색이 된 얼굴을 본 미국 경찰은 학생의 말을 사실로 믿고 급한 환자라고 여겼는지 “내가 에스코트 해 주겠다!” 는 제의까지 하여 “난 지금 너하고 얘기 할 시간이 없으니 그냥 냅도!” 라고 하였더니 “O.K go go!" 하더라나... 사실 이 학생은 과속벌금만도 300$정도 가 될뻔한 위기에 처하자 자기도 모르게 거짓말을 한 것이란다. 물론 미국의 교통경찰이 그렇게 어수룩하지도, 관대하지도 않다. 아무리 엄격하고 냉정하기로 평판이 난 사람일지라도 상대방의 말과 표정에 대한 신뢰가 보이면 인간관계는 이렇게 달라질 수 있음의 예시일 뿐이다. 어쨌거나 침묵! 손짓! 진지한 표정! 만으로 내 바쁜 마음에 감동을 준 경차운전자는 인간관계 소통의 기본이 말이 아님을 일깨워 주었으니 나로서는 참 감사할 일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소통이 원활해야 좋은 관계가 형성되는 것인데 법률지식 조금 안다고 나는 남들과 소통을 막고 교만하지는 않았는지 ... 오늘 나의 사무실을 찾는 분에게 좀 더 온화한 표정과 겸손한 상담으로 좋은관계가 이루어지길 기대해 본다. 불신이 만연한 시대에 신뢰받는 사람이 되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
창원시 마산회원구 북성로 106번지 환금프라자 401호 김영석 법무사 (055-232-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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