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부동산 경매

<양육비, 공유부동산 처분>

이혼 판결문을 들고 찾아온 민원인 이름이 익숙한 친구의 이름과 같고 고향도 같은지라 남다른 친근감이 발동했는지 모르겠다.

10년 전의 판결문이지만 자녀에 대한 친권을 모()인 민원인이 행사하고, 상대방은 자녀가 성년이 될 때까지 매월 30만원씩 양육비를 지급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혼한지 10년이 지나도록 양육비를 한 번도 받지 못하고 자녀가 올해로 성년이 되었다는 것이다.

결혼 시부터 이혼한 남편과 공동명의였던 주택이라도 팔아 미지급된 양육비를 받아내려는데 문제는 이 여인은 헤어진 전 남편에 대한 증오가 가시질 않아 전 남편에게는 연락조차 하기 싫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 남편의 협조 없이 공동명의인 집을 처분하고 싶다는 문의였다.

팔면 어차피 지분대로 가져갈 텐데 그래도 수월한 방법은 함께 매도하는 게 낫다는 일반적 나의 답변에 민원인은 내키지 않는 기색(氣色)이다.

큰맘을 먹고 전 남편에게 연락을 한번 취했다가 네 맘대로 해봐라!’라는 냉담한 반응의 무시를 당한 뒤라 지금은 매수하겠다는 사람도 있지만, 못 팔고 있다는 여인의 입장을 이해를 하면서도 한때 부부였던 사람끼리 왜 이렇게 감정의 골이 깊은지 답답하기는 하다.

 

공유인 부동산을 처분하는 방법 중 하나인공유물 분할의 소를 제기하여 전 남편의 동의에 가름한 판결을 받은 후 공유물경매를 신청하면 현금분할로 자기 몫을 가져올 수 있다는 실무적 설명을 하자, 이 여인은 시간과 비용이 만만치 않음을 망설이고, 전 남편이 자진해서는 주지 않을 양육비도 받아야 하는데 또 다른 청구소송을 해야 일시금으로 분할의 몫에서 제해야한다니 여인은 이 모든 과정에 전 남편은 돈 한 푼 안들이고 자기 몫을 챙겨가는 꼴이라서 법이 너무 불공평하다며 훌쩍훌쩍 울어 된다.

그럼 달리 방법이 없으니 성년이 된 자녀에게 아빠를 찾아가서 지분을 넘기는 절차도 한번쯤 생각해 보라 권했더니 자기가 고생고생하며 키운 자식을 그 뻔뻔한 남자에게 가서 사정하는 것도 구차하여 싫다며 또 휴지를 서너 장 뽑아 눈물을 닦는 모습을 보니 이 여인의 가슴엔 전 남편에 대한 애증의 응어리가 사무치게 맺힌 듯하여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라는 속담처럼 사무실의 공기조차 서늘하다.

 

한참을 지켜본 뒤 여인에게 말했다.

이제 40초반의 나이에 그렇게 미운감정만 품고 있으면 남은 인생 어떻게 살겠느냐! 잊을 건 빨리 잊고 새 출발하는 것이 본인에게도 자녀에게도 더 좋은 일이니, 마음을 정리하는 게 좋겠다. 사람마다 자기만의 슬픔, 고뇌 없는 사람이 없는데 주변에 관계 맺은 사람 한 번 둘러보시라고, 누구나 아픔을 겪었지만 삭이고 사는 것이지 아픈 상처를 자꾸 헤집어 내어 상처를 곱씹고 덧나게 하면 종국은 자기 파멸밖에 더 있겠느냐 설득하면서, 나만해도 살아온 인생 뒤돌아보니 실패와 좌절이 더 많아 지금도 꿈속에서 탄식하다 잠을 깰 때가 종종 있다며 내 아픈 과거까지 들먹이며 여인을 위로하고 설득하다보니 상담이 꽤 길어졌다. 때마침 다른 상담인의 전화를 받으라는 직원의 전갈로 내 책상으로 자리를 옮겨 전화 받는 동안 여인은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슬며시 일어나 사무실을 나갔다.

 

무려 2시간 가까운 상담을 하며 등기부등본 3통 열람, 판결문과 서류 등 복사한 양이 스무장 정도이다. 달리 상담에 대한 급부를 받은 바 없이 여인이 마시고 간 박카스 병과 커피 잔을 치우든 직원이 좀 염치없는 사람 같다.’는 말을 할 때, 그래도 나가면서 고맙다는 인사라도 했으니 그나마 다행이고 민원인의 고민이 너무 커서 그럴 것이다. 고 자위는 했지만 약간의 찜찜함은 남는다.

여인은 훌쩍이면서도 내가 한 말 중 공유물 분할의 소경매절차 등의 말은 메모를 하기까지 한 생각이 스쳐서다.

결국, 법률상담에서 심리상담, 그러다 인생 상담까지 해 주었으니 좋은 법무사로 기억하겠지 하며 여인이 놓고 간 판결문과 가족관계증명서 등 복사본을 훑어보니 뭔가 이상했다. 자녀란에 19세 된 자녀의 이름이 올라온 것은 당연하지만 배우자의 란에 판결문과 다른 사람의 이름이 올라와 있는 것을 본 것이다. 그렇다면 이 여인은 이미 재혼을 했다는 얘기 아닌가! 주민등록등본 복사본을 찾아보니 세대주인 여인의 세대원으로 지금의 남편이 올라와 있는데 전입일이 전 남편과 이혼이 확정될 무렵의 일자로 나와 있다.

도대체 뭐야? 여인이 눈물을 흘리며 서러운 넋두리 하소연을 할 때 여인혼자 자녀 키우며 힘겹게 살았던 외로움 때문인 줄 알고 더 친절하고 진지하게 설명했는데 그런 게 아니잖아! 여인의 목적은 공동명의로 된 집을 전 남편 도움 없이 처분하는 절차를 알기 위한 상담 일 뿐이었는데... 아뿔싸! 또, 헛 삽질 했구나!

 

2019. 5. 13.

 

by 마음 | 2019/05/14 12:21 | 隨想 | 트랙백 | 덧글(0)
나의 기도

법무사생활  

사무실에 출근하여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내 자리에서의 기도입니다.

그리고 홈페이지를 확인하는 것이지요. 오늘은 우연히 2009년도 4월에 썼던 내 글의 제목을 보다가 지금의 느낌과 처한 상황이 너무도 똑같은 나의 기도를 읽고는 놀라움과 비감이 교차합니다. 10년 전과 달라진 것이라면 사무실을 시내로 이전한 것뿐입니다. 다음은 그 때의 기도 내용입니다.  

오늘 하루 건강 주셔서 출근하게 하셨으니 감사, 일터 주신 자리는 축복의 장소라는 믿음의 고백, 또 오늘 만나는 사람들과 좋은 교제가 있기를 소원하는 바람!

참으로 그렇습니다. 경기불황으로 하루하루 힘겹고 전문직이라는 명함을 가졌어도 경제적 여력은 마이너스 카드를 써야할 지경에 이르렀지만, 그래도 이런 일터 주셔서 나보다 더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게 생활법률 상담을 해 줄 수 있는 내 역할이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관공서라고는 읍사무소와 보건지소 밖에 없는 읍 단위에서 내가 법무사사무실을 개업할 때! 내가 이 지역에서 감당할 사명이 있음을 깨닫게 한 이는 나의 직감, 나의 능력이 아니었습니다.

양심과 정의의 마지막 보루라고 믿든 내 일터 법원에서 법관이 아닌 일반직의 태생적 한계의 벽은 결코 넘을 수 없는 "금단(禁斷)의 벽"임을 절감하고 경악과 좌절로 사직을 택할 수밖에 없었을 때 나의 위로는 기도와 성경뿐이었습니다.

믿고 싶지 않지만, 내부 부조리를 혁신하고 업무의 경직 대신 하의상달의 분위기로 공정과 순리의 올곧은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지위와 명예, 심지어 승진의 기회마저 박탈하는 불의가 득세하는 현장의 피해자가 바로 '' 임을 을 알았을 때 나에게 남은 인생은 법무사라는 전문자격증 하나뿐이었습니다.

일반직 협의회 대표로서 법원장과의 독대로 진실을 호소한 것 뿐, 그 어떠한 불의도 행하지 않았음에도 내게 얹어진 멍에는 법원의 권위를 도발했다는 침소봉대! 주홍글씨 낙인이었습니다. 이 기막힌 왜곡은 법관이 주도하는 사법행정 조직에서 일반직으로의 나는 살아 갈 수 없음을, 내가 의지할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음을 절감하는 것뿐이었습니다. 하나님께 간구하며 몸부림도 쳤지만 나의 신원회복은 내 존재의 미약함을 확인하는 과정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다 불현듯 나의 달란트로 봉사할 수 있는 곳이 이 곳<대도시도 아니고, 고향도 아니고, 법원앞도 아닌, 조촐한 읍내> 이라는 응답으로 경제적 계산 없이 무작정 사무실을 얻은 것이 법무사로서 나의 새로운 인생 출발이었습니다누가 보든 말든, 나의 개업소식을 법률신문에 실은 문구도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는 여호와의 행하신 것이요”(시편 11821-23) 라는 성구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불의한 조직과 인간에 대한 적의(敵意)가 가시지 않은 아둔한 나였습니다.

몇 년이 지난 지금, 다시금 생각해보니 나로서는 전혀 생각지도, 원하지도 않는 방향으로 나의 길이 정해진 것 모두 하나님의 섭리임과 내 기도의 부족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은 내 의지로 움직여지는 것이 아니고 또한 목숨 걸고 지켜야 할 정의(正義)가 내게는 없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모든 것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 수밖에 없는 나약한 인간임을 알게 되자 내 마음에 비로소 평안함이 깃들었고 그 하나님의 역사 앞에 나를 음해(?)했든 세도 높은 자들도 결국 나락의 길을 걸었으니 말입니다.

그러니 아픔도 미지근하고 미움도 미지근하지만 원망 없이 모든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지금의 내가 되었고 나의 하루하루는 작은 소망으로 시작하는 소시민으로의 생활인일 뿐입니다.

내 인생이 강하고 담대하지 못했음도 인정하고, 기도와 영성이 부족했음도 인정하며, 야무지 못한 성격으로 경제적 성공과도 거리가 멀었다고 인정하니 욕망도 후회도 없습니다. 살아온 날들, 살아갈 날들, 지금의 나는 무엇을 기대하는 바도 없이 정말 얼토당토 않게 세월만 허송한 초로의 남자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기이합니다. 사무실에 출근하는 내게, 아내는 항상 표정이 밝다고 얘기합니다. 남들도 제게 인상이 좋다고 가끔씩 얘기합니다.

사실은 아니겠지요! 세상근심으로 일그러진 마음일 때가 많은데 무엇 그리 좋겠습니까! 능력도 열정도 식은 채, 아무런 의미 없는 하루를 보내면서 그냥 근본도 모르는 편안함으로 지내는 내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세파를 겪은 후의 나는 원함도 없고 부족함도 없습니다. 무력감인지 평안함인지 모른 채, 아직은 몸이 건강하므로 뭔가 좀 존재적 가치이고 싶다는 기대를 하지만 하나님은 나를 용도폐기하신 모양입니다! 아니 내 의지(意志)의 실종이라 해야겠지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 라는 히브리스 111절의 성경말씀을 다시금 묵상하며 기도 해야겠습니다

이렇듯 10년 전의 기도와 바람이 지금도 그대로라니! 발전도 변화도 없는 내 생활, 무력한 내 생의 본질을 확인한듯하여 씁쓸함이 스치지만, 어쩌겠습니까! 요즘은 시간 날때마다 영어성경 필사를 하고 일주일에 몇 번씩 정구를 치며 근본도 모르는 편안함으로 시시덕거리고 있습니다.

                    2019426일  바람 불고 흐린 날. 

    


by 마음 | 2019/04/26 13:48 | 삶의 향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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