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상지화, 아상지화

<카타르시스>

집착이라는 말 외, 달리 설명할 길은 없다. 합리적 분노란 없기에 분노를 표출했다는 것은 비합리적(非合理的)이었고 비신사적 행동이었음을 자인해야만 한다.

지난주 정구동호인들과 복식 시합 중 에이스인 젊은 파트너의 무례한 말투와 반복되는 명령식 경기 운영에 몸이 따르지 못하는 내가 결국 시합을 망친 후, 화를 참지 못하여 라켓을 땅바닥에 패대기치면서 다시는 이따위 운동 않겠노라며 파트너를 향한 나의 불만이 터진 것이다.

게임에 진 것이 문제가 아니라 게임에 임하는 파트너의 태도에 질려버렸고. 더구나 상대편 동년배의 에이스도 2부리그 수준인 내가 네트 앞에서 전위를 보고 있음에도 야구에서 투수가 타자에게 빈볼을 던지듯 내 몸을 향해 위협적 패싱샷을 2차례나 감행함에 무방비로 당한 내 감정이 상할대로 상한 것이다.

시합을 하면서 게임의 매너를 내 세운다면 약자의 항변에 불과 하겠지만,

서로 존중하고 즐기면 될 운동을 왜 이렇게 이기는 데만 집착하여 품격 없는 말과 행동으로 적지 않은 나이의 내게 잔소리를 하는가!

결국 무의식 속에 숨겨진 열등감이 분노의 원인이었다.

별 것 아닌 일임에도 내가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가에 대한 자존심이 상하고 보니 이겨야겠다는 의지도 승부욕도 사라지고 운동 이상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게임을 포기하며 나는 이렇게 망가진 것이다. 기왕 망가졌다는 생각이 들자 라켓을 한 번 더 패대기치고 정구장을 나서는데 내 행동을 지켜보던 주위의 동료들이 나를 둘러싸며 화를 풀라 했지만 한번 분기탱천한 내 성미는 겉잡을 수 없도록 끓어올라 쉽게 진정하기는 이미 걸렀다.

그렇게 추악한 성질을 부리면서

구력이 실력인데 차이를 인정해야지 왜? 모욕을 주느냐?

뛰지 않아서가 아니라 뛰어도 느린 것을 어쩌란 말이냐? “

젊은 파트너에게 할 말 다하고 운동장을 나설 때쯤은 화가 이미 풀렸다. 마치 나의 분노는 나이든 사람의 당연한 성깔이기라도 한 듯, 동료들에게는 과격한 행동을 보여 미안했다는 정중한 사과까지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60대 중반의 나이에 이렇게 열정적으로 화를 냈다는 게 되레 짜릿하리만큼 속이 후련하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대인관계에서는 항상 인내하고, 양보하고, 겸손해야 한다는 자세를 견지하며 살아왔는데 모처럼 내 본성대로 소리 지르고 파괴하는 야만적 행위로 나를 망가트리니 마음이 오히려 가뿐했다.

카타르시스란 바로 이렇게 폭발하여 발산하는 에너지인가 싶다.

차이는 인정하고 차별은 없어야 하는 인간관계에서

나는 애초에 체력이 따르지 못하니 승부욕도 없었고 이기겠다는 의지도 없이 웃으며 즐기는 하루를 보내는 것으로 만족했고 시합도 그러했는데 젊은 파트너와 상대방은 게임에는 이겨야 한다는 강한 열정이 있었다. 어쩌면 당연한 열정이고 욕망이었는데, 그네들의 일반적 가치관을 나는 집착으로 치부하며 사람의 품격에만 가치를 부여한 것이라면, 내 안의 들보는 괜찮고 남의 티끌은 탓하는 우를 범한 것은 아닌지, 나만의 아집과 신념에만 집착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기겠다는 사람은 이기는데 집중하고, 즐기겠다는 사람은 즐기는데 집중하면 사달 날 일도 없으련만 관점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주관적 옳고 그름으로 사람을 판단하려 했으니 그 역시 차별이었고 동호인과의 관계는 풍비박산 나기밖에 더 하겠는가! 게임은 게임일 뿐인데...

다행인 점은 젊은 파트너에게서 먼저 문자가 왔다. “자신의 거친 말과 행동으로 결례를 범했음을 백배 사과합니다.”그는 나 보다 맑은 사람이고 오히려 나를 부끄럽게 한 선생이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었는가?

카타르시스를 경험했지만 품격과 신뢰를 잃었다! 얻은 것 보다 잃은 게 더 많다.

아상지화 아상지화( 我上之火 兒上之火) 내 발등의 불을 먼저 꺼야 자식 발등의 불도 끈다는데 내 발등 불도 끄지 못한 채 세속적 이기적 내 행동을 합리적 분노라 핑계하는 허접한 나는 무엇을 얻었는가!

 

2018. 8. 31. 

by 마음 | 2018/09/04 15:47 | 삶의 향기 | 트랙백 | 덧글(1)
제주도 관광

예멘 난민을 역사적 관점으로 본다.

 

8월 여름휴가를 해외여행이 아니라면 제주도에서 함께 지내면 어떻겠느냐는 제주도에 있는 지인의 제의를 받았을 때, 제주도도 해외이니 그렇게 하자며 쉽게 승낙하고, 집에 와서 아내의 동의를 구하였다. 그런데 당연히 반색할 줄 알았던 아내의 태도가 시큰둥하다.

지인의 집이 호텔보다 못할 것도 없는데 왜 그러냐는 반문에 의외의 답이 돌아온다. 제주도가 너무 복잡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관광보다 외국인, 특히 중국인과 예멘 난민도 있어 마뜩찮다는 이유다.

요즘 뉴스에 많이 거론된 예멘 난민의 문제를 휴가지 거부의 핑계로 삼는 아내의 태도에 이번엔 내 부아가 슬슬 치민다.

 

난민이 있고 중국인들이 많이 찾는다 하여 아름다운 관광지의 명성이 퇴색된다는, 뭔가 잘못된 인식이 아내 및 일반 대중들에게 이미 만연되어 있는 듯 하다. 중국인들이야 돈 들고 찾아와 관광이 끝나면 돌아 갈 사람들이니 그렇다 치고, 돈도 없이 목숨을 걸면서 살 길을 찾아 제주도에 와 난민을 신청한 예멘인들에 대한 인식은 또 왜 이렇게 부정적인가!

 

물론 제주도민의 입장에서 거부감을 표시하는 상황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제주도민도 아닌 아내는 왜 관광을 기피하리만큼 싫어하는가?

답은 그 사람들의 종교가 무슬림 이어서 싫다는 것이다. 어휴! 모태부터 신앙의 기반이 기독교인 아내에게는 무슬림에 대한 적의가 깃든 것이다.

 

그들이 그들의 조국을 탈출할 수밖에 없는 사유로 정치적, 종교적, 인간적 박해를 피해 난민으로나마 살기 위해 온 것은 한마디로 생존을 위해 온 것인데 세계 각처에서 모두 기피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그들은 어쩌란 말인가! 야만적 정치를 피해 문명국을 찾아 목숨을 건 탈출을 한 생명들인데 그들은 어쩌란 말인가!

 

우리나라는 반 세기전 자유 우방국의 도움과 원조로 오늘의 번영을 이룬 나라다. 6.25 전쟁, 1.4. 후태 때 북에서 남으로 살길을 찾아 내려온 실향민들이나 빈곤에 찌들었던 우리 국민에게 우방국의 도움이 없었다면 어떻게 오늘과 같은 번영이 있었는가!

예멘에서 살 길을 찾아 이 땅에 온 사람들도 그렇게 이해해야 된다.

다만 목적지가 동족의 땅이 아닌 이족의 땅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런 그들에게 이질적 민족성, 종교의 다름, 자국인 일자리 잠식, 도시의 안전과 미관을 해한다하여 그들을 떠나라고만 하면 우리나라의 인권 존중은 얼마나 후진적인가!

실례로 우리나라도 난민의 역사는 일제 강점기부터 있어왔다. 그 무렵 우리의 선조들은 자유와 목숨을 부지하려 중남미로 하와이로 난민처럼 떠나지 않았는가! 물론 그 나라에서 인력이 필요하여 받아주는 조건이 지금과는 같지 않았지만

 

또한 우리나라의 난민구호의 역사에서 보면

1975430일 베트남이 패망하자 사이공(. 호치민)이 함락되기 전후 우리나라가 구출한 베트남 피난민은 보트피플 포함 약 3,000명 정도였다. 그러자 정부는 1977년 부산시 해운대구 재송동에적십자 난민보호소를 설립하여 이들을 보호한 적이 있다. 그들 중 2357명을 미국, 뉴질랜드등 17개국에 재정착하게 하였고 587명은 국내 정착을 시킨 뒤 적십자난민보호소를 1993년 폐쇄한 사례가 있다. (한국적십자운동 100년사 인용)

현재 세계 경제대국 10위권이라는 우리나라의 글로벌 위상으로도 제주도에 온 난민신청인을 범법자로 적대시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일단 사람목숨 살게 해주며 시간을 들여 그들이 정착할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 OECD 가입한 선진문명국인 우리나라의 인도적 국격으로 보나 국제인권규범으로 보나 맞다고 본다.

결국 내전에 시달리는 그들의 나라가 안정되고 문화와 풍습이 상이하여 우리나라에 정착이 어렵다고 느끼면 그들 중 대다수는 돌아갈 사람들이다.

국내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한편, 한국은 무역으로 먹고 살며 성공한 나라다. 이들 이슬람문화권 사람들이 지금은 난민 신세로 지내지만 역사의 흐름이 바뀌어 이들의 도움으로 이슬람문화권과 더 큰 교류가 형성되고 상호 무역으로의 교역국이 될런지 알 수가 없잖은가!

제주도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자연유산을 간직한 특별한 지역이고, 우리나라의 자랑스런 관광지이다. 조금만 여유롭고 긍증적으로 관점을 넓힌다면 그들 난민이 머무는 동안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서 삶의 터전이라도 마련해주는 대한민국의 인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하긴 이런 담론보다 아내를 먼저 설득시키는 내 지혜가 우선이다. 올 여름 너무덥다!

 

2018. 7. 20.

by 마음 | 2018/07/20 12:21 | 隨想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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