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희 교수 Message


제목:“알 수 없는 추억의 흔적!”

부제: 장영희 교수님을 그리워 하며,

From : <cyoungh@sogang.ac.kr>

To : "김영석"<ys5308@lycos.co.kr>

Date : 2007/07/31 화요일 오전 2:22:45

Subject : Re: 많이 덥지요!


안녕하세요? 메시지 감사드려요.

그런데 제가 몸이 조금 나빠져서 지금 병원 입원 중이라 새 책을 8월 중에 출간하는게 좀 힘들게 되었네요.

몸좀 추스리고 하면 이번 겨울에나... 죄송해요. 선생님이 구입하시는 것과는 별개로, 책이 나오면 꼭 서명해서 선생님께 선물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From : <cyoungh@sogang.ac.kr>

To : <cyoungh@sogang.ac.kr>

Date : 2007/08/26 일요일 오후 5:11:14

Subject :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께서 보내 주신 귀한 선물 잘 받았습니다.

요즈음 항암치료를받으며 그런대로 잘 견뎌내고 있습니다. 주위 분들의 관심과 사랑 덕분이지요.

책을 내는 것은 내년 봄으로 연기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장영희 드림


2009. 5. 10. 07:10

아침등산을 마치고 아파트입구의 신문에서 “57세 문학소녀, 떠나다” 라는 서강대 장영희 교수의 별세 타이틀을 보는 순간 그동안 행여 쾌유소식만을 기다리든 내겐 충격과 가슴이 저미는 슬픔이 꽉 차오름을 견딜 수 없어 목욕실에 들어가 눈물을 흘리면서 샤워하고 세수하며 또 울었다. 결국 위의 글이 장영희 교수님한테 받은 마지막 Original Message였다니...

참으로 쾌유를 빌며 교수님의 의지는 하늘의 감동으로 라도 기적이 있으리라 믿었건만

장영희교수를 알게 된 것은 2007년 5월 신문에 실린 장교수의 글을 보면서 부터다! 도대체 남의 글엔 감동을 잘 못 받는 나의 무덤덤함이 장교수의 컬럼을 읽고는 여지없이 무너졌고, 또 내 기억속에 잠재한 연인의 그림자가 장교수와 너무 흡사하여 나는 과감한 글을 장교수에게 보냈다.

장영희 교수님께!

4월 27일자 골목길, 친구들 그리고 세상 5월 21일 “낮은 사람” 이 높은 세상을 살아 가기란 ~ " 장교수님의 동아광장에 실린 글을 읽으면서 저의 심층심리 밑바닥에 웅크린 아픈 추억이 고개 들고 일어남을 감출수가 없어 용기를 내어 글월 드립니다.

이토록 인지도 높으신 교수님이라는 사실도, 강인한 정신력으로 어려움을 극복하시고 강단에 다시 서셨음을 안 것도, 인터넷 인물검색에 교수님에 대한 소개를 읽고야 알게 되었습니다.

생면부지(生面不知)의 교수님이 저와 무슨 상관이 있다고 이런 글을 드리는지 저로서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제게는 언젠가, 누구에겐가, 고백해야할 젊은 날, 저의 개인적인 소회(所懷)가 있기 때문으로 교수님께 결례(缺禮)가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20여년 넘게 법원공무원으로서 공직생활을 마치고 경남 마산에서 法務士를 개업하고 있는 金永石입니다.

화려하지도, 초라하지도 않게 54 여년의 세월 동안 꿈을 가지기도 하였고, 잃기도 하며 살아 왔지만 저에게는 1973년 어느 날 이후, 가위눌림과도 같은 비몽 하나가 35년 동안 지속되어 왔고 지금도 가끔씩 반복되는 꿈속에서 만의 연정이 있습니다. 30여년을 같이 살아온 아내에게도 아빠의 과거를 재미있게 들어주는 미국에 있는 딸에게도 이 꿈 애기만큼은 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았지만 교수님의 사진을 보고 글을 읽는 동안 전 1973년으로 회귀하여 그때의 정서를 정리 하고픈 충동이 결국 교수님께 이 글을 올리게 된 所以입니다.

1973년 봄으로 기억합니다. 전 강원도 원주에서 중앙고속버스를 타고 밤늦은 시간에 당시의 동대문 고속터미널에 도착하였습니다. 원주에서 고속버스에 올랐을 때 앞에서 3칸의 왼쪽 바퀴위의 좌석이 저의 자리였는데 창가에 아담한 체구의 숙녀가 앉아있었습니다.

눈이 서글하고 知的표정을 지녔던 여성이라고 기억하는데 3시간쯤 서울로 오는 동안 참으로 재미있는 대화를 나누며 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저는 그때 너무 철없고 시건방진 청년이어서 잘난 척하는 말을 많이 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유행하는 Pop Song 을 얘기했고 조금 읽은 문학류의 책을 많이 읽은 듯 거들먹거렸는데 신기 한 것은 옆에 앉은 숙녀분이 너무도 진지하고 재미있게 제 얘기를 듣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순간적으로 느끼기에도 그 숙녀분은 저보다 월등 지성적이셨고 제게는 어렵게만 보이는 두꺼운 Science영문책자를 들고 계시기도 했는데 말이죠!

저로서는 처음인 그 숙녀와의 대화가 얼마나 좋았는지요! 서울에 도착할 때 쯤엔 그 숙녀를 사귀고 싶다는 젊은 본능이 저를 들뜨게 하였습니다.

저는 고속버스가 도착한 다음에 다른 사람들이 모두 내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제가 숙녀의 짐을 들어 드리겠다고 제안 하였습니다.

그런데 너무도 의외로 그 숙녀분은 저의 제안을 일언지하로 거절하시며 무심히 말하더군요! 먼저 가시라고, 자신은 마중 나올 사람이 있어 그렇게 할 수 없노라고~~~

순간, 저와 비슷한 연배라고 생각했고 공감대가 형성되었기에 거절은 예상조차 못한 채 자부심을 가졌던 저로서는 부끄러운 마음에 도망치듯 내려왔습니다. 그러나 당시 동대문 고속터미널의 조도는 너무 어두웠고 제가 타고 왔던 버스는 막차였던 관계로 한참을 걸어 나와도 그 숙녀분을 기다리는 사람으로는 아무도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길 건너 장위동으로 가는 버스를 몇 대 보내면서 혹시 그 숙녀분이 나올 길을 응시 하였지만 그 숙녀는 나오지를 않았습니다. 저는 혹시 그 숙녀분을 마중 나올 사람이 안 나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쳐 그렇다면 어두운 길에서 버스타는 곳까지 짐이라도 들어주는 것이 도리 일 것 같아 다시 고속버스 터미널로 향했습니다. 어둑한 고속버스 광장으로 뛰어갔을 때 짐을 든 숙녀가 혼자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저와 딱 마주치는 순간! 그 숙녀의 눈빛은 제 평생 잊을 수 없는 당황한 눈빛이었습니다. 저는 그 숙녀에게 다시 돌아가지 말아야 했습니다. 그 숙녀분은 자신의 절뚝거리는 걸음걸이를 제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것인데... 그 난감해 하는 숙녀를 두고 철딱서니 없는 저는 돌아 섰습니다.

아!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미안하다는 얘기를 했어야 함에도, 저는 그 숙녀를 당혹스럽고 아프게 한 채, 그냥 돌아 왔습니다.

35년이 지난 지금도 저를 쳐다보며 원망하듯 애처로운 그 숙녀의 커다란 눈망울을 가끔 만납니다. 꿈속이나마 저는 그 숙녀에게 사과하고 위로하기 위한 노력을 기우리지만 촉촉한 그 여인의 눈빛은 저를 외면하여 늘 가위눌림으로 끝나곤 합니다.

장영희 교수님!

정말 미안 합니다. 이렇듯 개인적 소회를 교수님과 연관이라도 있는 듯 마구 적고 있습니다. 당시 읽었던 루이제 린저의 “生의 한가운데” 마지막 구절에 ‘삶’이란 말하지 않고 다만 느끼는 것일 뿐!" 이라는 결어가 평생 저의 뇌리에 각인이 되어 가슴을 저미는 아련함이 계속되고 있고요.

새싹 돋아나는 사과나무 한 잎 같이 상긋한 표정과 서글한 눈망울로 저의 얘기를 너무도 다정스레 들어 주든 그 조그마한 숙녀에 대하여 저의 사려 깊지 못했던 행동에 대한 과오와 그 숙녀를 잊지 못하는 연민으로 저의 참회는 지금도 은밀한 진행형입니다.

그 숙녀는 내 마음바닥 어느 곳에 깊은 웅그림으로 자리하여 추억으로, 화롯불 같은 불씨로 항상 남아있습니다. 지금은 민원인의 법률상담, 어려운 사람들의 넋두리를 듣는 법무사의 일상으로 소도시에서 소시민으로 살고 있음이 제 존재의 전부이지만 교수님의 글은 건강한 몸을 가진 저를 많이 부끄럽게 하였고 또한 과거를 그립게 하였고 알 수 없는 추억의 흔적을 더듬게 하였습니다. 다시금, 무례를 용서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교수님의 저서와 글을 모두 찾아 읽으며 나름대로의 감사생활을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부디 오래오래 건강 유지하시고 좋은 글 많이 발표 하십시요!

2007. 5. 21.

김 영 석 드림

이렇게 무례로 시작한 나의 대화는 장교수의 응답으로 이어져 몇 차례 이-메일을 주고 받으며 교감을 나눴건만,

새싹 돋는 사과나무처럼 신선한 장교수의 글을 더 이상 읽을 수 없다는 상실감은 나를 슬프게만 한다. 서강대 장례미사 시간과 천안 공원묘지의 도착시간도 확인하였으니 연인을 보내듯 나는 가리라! 담담하게 이별도 하리라!

부디 천국에서라도 건강한 모습으로 활보하기를 빌리라!

From : "김영석"<ys5308@lycos.co.kr>

To : "장영희"<cyoungh@sogang.ac.kr>

Date : 2007/07/30 월요일 오후 6:27:32

Subject : 많이 덥지요!

장교수님 !

안녕 하신지요?

바람이 불고, 폭우가 쏟아지고 그러다 아무런 일도 없었던듯 맑은 얼굴로 달이 떠 오르고 자연현상은 사소한 것처럼 보이지만 느끼는 감상은 변덕의 연속입니다.

폭풍속에서는 교수님의 건강이 폭우처럼 걱정스럽다가 맑은 아침에 산에 오르면서는 강한 장교수님은 투병을 무난히 마쳤을 것이란 기대로 안위하고 제 기대가 맞을 것이라 스스로 확신합니다! 성원하는 마음엔 그 어떤 부유도 없습니다. 건강을 회복하셔서 한가위 밝은 달처럼 지내십시요!

김 영석 드림

2007. 8. 29.

다시 보내주신 메세지가 참 고맙습니다.

안 보내 주셔도 알 수는 있지만 받았다는 확인은 반가움이 몇 배가 되는군요! 아니, 연락이 궁금해서가 아니라 교수님의 병세가 힘드신 상황일지도 모른다는 우려로 마음이 무겁기만 했습니다.

안타까움의 세포가 있다면 저도 조기진단을 받아야 할 지 모릅니다.

힘든 투병을 하시는 교수님을 우롱하는 말이 될까보아 감히 전하지는 못하겠습니다만, 아침마다 산을 오르며 생각의 대부분이 장교수님께 가 있습니다. 제 영혼의 무게는 제 무력함으로 인해 21그람 보다 무겁고,

제가 부족해서 기도한다는 말씀을 드릴 수는 없지만, 장교수님을 열렬히 성원하고 있으니 꼭 쾌유하십시요!

김 영석 드림

몹시 더운데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학생들이 방학동안 읽을 필독도서에 서강대 총장님은 장교수님의 책을 추천하셨더군요! 축하드리구요

저 역시 동감입니다. 좋은 책으로 당연히 추천해야지요.

제 책상엔 항상 "축복"이란 시집이 법전과 함께 놓여 있습니다. 틈만 나면 그냥 읽어요. 법률 상담중 특히 자신의 불행을 호소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 분들의 주된 삶의 고민은 물론 가정적 괴로움(주로 이혼문제)이지만 세상이 자기에게만 너무 불공평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넌지시 교수님의 축복을 읽어보도록 권합니다.

젊었을 때 감동적으로 읽었던 '제인에어'의 브론테 작가가 "인생"이란 시를 남긴 것도 교수님의 책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8월에 예정된 수필집이 몹시 기다려 집니다.

그러나 교수님께 선물로 그냥 받고 싶지는 않습니다. 출판사만 알려 주시면 무조건 10 여권 주문해서 제 좋은 사람들에게 나눠 줄 것입니다.

이 나이에 뭔가 기대를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제겐 좋은 변화입니다. 장교수님이 조금 덜 바쁘고 조금 더 건강하시기를, 마음으로 전하니 피곤해 하지 마십시요!

김 영석 드림

지난 5월 이후 장교수님의 저서를 대강 다 읽었습니다.

특히 교수님의 책들 가운데 번역서가 아닌 <문학의 숲을 거닐다>와 <내 생에 단 한번> 은 장교수님의 수수함이 그대로 나타나 참으로 많은 정감을 느꼈습니다.

사람마다 인격이 다르고, 창작소설이 아닌 수필집에는 그 사람의 품격이 스며 있음이 사실일진데 위 책들을 읽으면서 모처럼 가식 없이 꾸며진 글로 인해 독서의 기쁨을 맛보았고 깊이 공감하였습니다.

남의 칭찬에 좀 인색한 편인 아내도 교수님의 책 내용이 좋다는데 동의하였습니다. 저희 부부에게는 좋은 책은 반드시 자녀에게도 읽게 한다는 원칙이 있습니다. 때문에 뉴-헤이븐에 있는 딸과, 사위에게도 교수님의 책을 모두 보냈습니다.

지난번에 저의 개인적 소회를 마구(?) 써서 보낸 글이 왠지 미안하다는 말씀도 드려야 할 것 같고 바쁘시고 힘드시더라도 좋은 글은 많이 발표해 주시기를 당부 드리겠습니다.

김 영석 드림

--- Original Message ---

From : "김영석"<ys5308@lycos.co.kr>

To : <cyoungh@sogang.ac.kr>

Date : 2007/07/03 화요일 오전 11:25:02

Subject : 바쁘시지요!

안녕하세요? 숨가쁜 한 학기를 보내고 막 방학을 시작했습니다.

메시지 감사드려요. 아, 제 책이 해외여행을 하게 되었네요.

8월 중에 수필집 한 권이 더 나오거든요. 8월 말경쯤 연락 주시면 한 권 선물해 드리고 싶습니다.

Mrs.Kim 에게도 감사전해 주십시오. 장영희 드림

2008. 4. 1.

김영석법무사입니다.

제가 "폭풍의 언덕"을 읽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40여년 전 학교생활의 좌절로 모든 희망을 잃었을 때였습니다. 저는 지금도 내 평생 가장 감동적으로 읽은 책이 뭐냐고 묻는 다면 그 당시에 읽었던 "르네의 슬픔'과 폭풍의 언덕 이라고 말합니다.

도서관에 쳐 박혀서 1년 동안 한국문학전집, 노벨문학상전집, 러시아문학, 등 미친듯이 섭렵했었는데 웃기는 것은 어느 하나 생각나는 스토리가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영문도 없이 수 십년간 폭풍의 언덕 주인공인 '히스크리프'는 나와 같다는 동질감(?)이 뇌리에서 떠나지를 않았습니다.

참 묘한 일입니다! 장교수님이 조선일보 토,일 섹션에 처음으로 실은 '문학속 명구'에 그 작가, 그 제목 그 주인공이라는게,

하긴, 이러한 감동은 저만이 아니겠지요! 장교수님은 어쨌거나 여러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분이니까! 출장으로 3월 29일자 신문을 4월1일 오늘에야 읽으면서 게재된 교수님의 글이 너무도 반갑습니다.

건강하십시요!

2007. 8. 7

장 교수님 !

그동안 제가 남을 위해서 조금이라도 한일이 있었다면(헌혈, 봉사, 구제) 지극히 작고, 가벼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최소한의 종교적 소양이었겠지만 그것도 결국은 저의 위로가 되든가, 自慢의 발로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교수님은 너무 큰 산이기 때문에 감히 제가 자만을 지닐 여지는 없습니다.

마음이 움직이는대로 해드리는 것 뿐입니다.

저는 오랫동안의 법원근무와 가사, 민사, 형사 사건의 재판과정을 통해 사람됨의 속성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고 세상을 Cynical 하다고 보는 편인데 장교수님의 글을 접하고, 상황을 알게 된 후 충격이라 할 만큼 장교수님을 아끼는 사람으로 변화됨을 제 스스로도 기이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치료에 혹시 도움이 될까싶어 "GOOD HEALTH" 라는 자연식품을 보내드리면서 서두가 심각해서 미안합니다만 정말 교수님에게 단어만큼이나 좋은 효과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서강대 영문과사무실로 지금 발송하였습니다.)

만약에라도 저의 변화가 “알 수 없는 추억의 흔적?”때문이라면 교수님께서 모른척해 주십시요. 부디 힘 내시고 활발하게 움직이세요!

김 영 석 드림

2010. 5. 9.

<장 영희 교수 추도 일주년에 장 교수를 잊고싶지 않아서 이 글을 올린다.>

* 장영희교수의 장례절차인 천안공원묘지에 가서 장교수와 마지막 작별을 하였다.

가족이거나 학교관계자도 아닌, 참석자는 나 뿐인 것같다. 취재기자와 장교수의 펜클럽사람들이 다수였지만 나의 참석은 장교수에 대한 나만의 약속이었으므로 아무도 나를 주시하지 않아도 괞찮다.

장례절차가 예상보다 몇시간 지연되는 바람에 마산까지 가야하는 나로서는 몹시 지쳤다.

새벽에 열차를 타고 택시로 갈아타고 또 걸어서 장지에 도착은 했지만 지금까지 한마디 말도 한모금의 물도 마시지 못하였음을 몸이 먼저 아는 모양이다.

하관과 장례절차가 끝난 뒤에 실질적 상주로 보이는 장교수의 오빠에게 가서 부의금을 전하자 상주는 부의금은 받지 않겠노라며 한사코 거부한다.

할 수없이 사정을 얘기하였다. 부의금이 아니라 장교수의 책이 나오면 사기로 했던 약속으로 가져온 것이니 받아달라고, 그리고 허전한 마음으로 돌아왔고 모든 기억을 잊으려 했다.

그런데 장교수의 오빠인 장 병우님께서 친서를 보내왔다. "살아 온 기적 살아 갈 기적"이라는 장교수의 책자와 함께.

아래 글은 그 내용이다.

<김영석 법무사님>

장 영희 교수 오래비 장 병우 입니다.

이제야 글을 드리게 되어 저의 게으름에 송구스럽고 또 영희도 하늘나라에서 감사한 마음을 이제야 전하느냐고 투정할 것 같습니다.

그간 법무사님의 뜻에 따라 책을 구입하여 차일피일 주변정리 한다고 늦어져 오늘에서야 구두로는 설명을 드리고 천주교 사목위원회를 통해 교정 시설에 20권의'- 기적 -'책을 전달하였습니다.(기증확인서 유첨)

토마스 신부(위원장)께는 감사하게도 장지까지 오셔서 평소 장교수와 약속을 지키신 김영석법무사 말씀도 드렸습니다.

영희와 약속은 지키신 겁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항상 행복 하시길

또 영희 위해 계속 기도 부탁합니다.

2009. 9. 1. 장 병우


 

 

 

by 마음 | 2009/05/11 16:26 | 隨想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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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들꽃 at 2009/06/16 13:19
글 잘 보고 갑니다. 따듯한 맘의 온기가 여기까지 느껴집니다.
Commented by 윤수용 at 2010/07/25 10:53
생각이 깊으신 분이군요.
글 잘 보았습니다.
호주 퍼쓰 오시는 기회가 있으면 꼭 저에게 연락주십시오.
따뜻한 차 한잔 대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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