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에서 겪은 일

재송망정< 裁 松 望 亭 >

살아오면서 내가 터득한 경험과 지혜로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

첫째, 모르는 것을 아는 척 하는 것,
둘째, 조금 안다고 자만하는 것, 
셋째, 무엇보다도 모르는 사실 자체를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 것! 등이다.

논어에 나오는 ‘不知爲不知’ 도 그런 뜻이겠고, 성현들의 잠언에도 나오는 얘기겠지만, 위의 경구는 내 스스로 깨달은 바가 더욱 크다.

그러나 이런 경계의 자세를 곧 잘 망각하여 후회를 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후회는 결국 나 자신의 지적결여(知的缺如)가 되므로 남에게 피해주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아 다행이지만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불신으로 이어진다. 그러니 살면서 정말 경계해야 할 일은 내가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신뢰를 잃지 않는 일이 무엇보다 으뜸이다. 그 실천을 위한 나의 다짐은 이렇다.

첫째, 그 누구와도 원수지지 않아야 한다.
둘째, 물질이 궁핍하여도 비굴하지 않아야 한다.
셋째, 내 몸 관리를 소홀히 하여 주변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일이 없어야 한다!’
이러한 목표를 꼭 지키려함이 내 삶의 중요 요소가 아닌가 한다. 물론, 이 보다 더 크고 거창한 신앙적 덕목이 있겠지만 내가 최소한 지키려고 한 생활의 신조라면 위의 세 가지이다.  

다행히 50 후반이 된 지금까지 직장생활과 사회생활을 하면서 내가 지키려 노력했던 만큼 그런데로 잘 버티어 준 것 같다!

40여년 교제하며 변함없이 우정을 나누는 친구도 몇 명 있고, 비록 작지만 교육공무원 30년 한 아내와 사는 동안 받을 연금이 조금 있고, 지금까지는 심각한 질병으로 병원신세 지지 않고 즐기는 등산을 꾸준히 하며 건강은 유지했던 편이니 말이다!

그러나 이런 외형 조건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엄중한 현실을 경험하였다. 내가 내 삶을 좌우 하는 게 아님은 작년 '사량도'에서의 위기로 응급실로 후송되었을 때 깨달은 바 있지만 그 보다도 더 크게 상심하며 살아온 인생이 참으로 무의미했음을 깨닫는 계기가 최근에 있었다.

국내에서는 법원에 근무한 사람으로 제법 아쉬움 없이 남에게 도움을 주는 입장으로 살아왔고 가슴에 품은 한은 있지만 그렇다고 초라 할 것도 없이 평범한 가운데 평온하게 살아 온 것 같았는데

언어가 통하지 않는 해외에 나가보니 나의 자긍심은 무용지물의 허세에 불과하고 난 언어 장애를 지닌 벙어리에 불과했다. 그동안 딸이 있는 뉴욕에도 여러 번 갔고 해외 여행하면서 필요한 물건도 사며 다소의 아쉬움은 느꼈어도 짧은 영어로 묻고 답하는 정도로 불편을 해소하는 것으로 자족하였는데

금번 설 을 전후하여 동부독일을 비롯한 체코 및 유럽 6개국을 여행하는 10여 일 동안 삶의 새로운 도전을 받았다.

동유럽의 장미라고 불리는 헝가리(HUNGARY) 부다페스트에서 다뉴브 강의 야경을 관광하고 오스트리아(AUSTRIA)의 짤즈 부르크와 쇤부른궁전의 코스를 마치고 폴란드(POLAND)의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 유산인 비엘리치카 소금광산으로 향하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발생한 일이었다.

동행한 일행 중 한명인 박 선생이 휴게소 화장실에서 뇌출혈로 쓰러졌다.
다른 일행들은 모두 투어버스에 타고 있고 나만 박 선생이 화장실에서 나오기를 기다리는 중 발생한 일이었다.
불의의 사고가 발생하자 나는 화장실에서 일어난 일을 누군가에게 설명하고 도움을 구해야 했는데,

당황한 나의 입에서는 “Helf me!" "Ambulance call" 만 나 올 뿐, 주변의 사람들에게 설명 할 방도를 알지 못했다. 아니 설명 할 영어 실력이 없었다.
상황이 급하여 쓰러진 박 선생을 화장실 밖으로 안고나와 투어버스를 가리키며 “Any one call" 을 반복하는 것이 내 언어의 전부였다.

나는 무력했고 언어는 막막했다. 더구나 이곳은 게르만 종족의 주 언어인 독일어를 구사하는 동유럽 아닌가! 시간대는 깜깜한 야간이었고 투어버스와 거리도 300m가 족히 넘었다.

투어버스가 1시간 정도 머물기로 한 이유도 타코메타에 하루에 허용된 주행거리와 운행시간을 법규에 맞추기 위함이었으므로 가이드와 다른 일행은 모두 곤한 잠에 떨어졌을 때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나는 환자를 부여안고 주변의 외국인들에게 “Helf me!" "Ambulance call" 라고만 외칠 뿐! 상황설명 할 언어를 구사하지 못했다.

더구나 냉담하기로 잘 알려진 동유럽 사람들이 보기에는 쓰러진 박 선생이 잠을 자는 듯 너무나 고요한 표정이니 환자라는 인식이 있을 리도 없어 그들은 그냥 무심했다.

나의 무력함이 참담하고 무능한 언어 소통이 참담했던 몇 분이 몇 시간인 듯 한 착각이 들만큼 나는 참으로 보잘 것 없는 존재였다.

다행히 나의 목소리가 큰 탓에 마트주인이 긴급히 911에 전화하여 엠블란스가 출동한 후에야 소동을 눈치 챈 일행들이 달려와 위기의 순간은 넘겼지만 그동안 이 세상 사는데 별 불편 없었다고 자부하든 내 신조는 큰 상처를 입었다.

글로벌 화된 세계 속에 살면서 위급한 상황에서 언어하나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고 벙어리처럼 우물속의 개구리로 살아온 게 부끄럽고 자존심 상하기만 했다.

귀국 후
새벽등산 때 어린 학생들이 귀에 꼽고 다니는 이어폰을 나도 꼽고 다닌다!
“MP-3“ 라는 것이 이렇게 많은 양의 CD를 담고 다니는 줄 몰랐다!
문법부터 어휘력까지 영어가 귀에 들리고 말이 터일 때 까지 어떤 해외여행도 가지 않으리라! 다짐해 본다.(내 의지가 아닌 아내의 성화로 장담은 못하지만...)

난 그 동안 지적 결여자임을 모른 채 자만했고, 법무사라는 전문직이 대단한 지식인이기라도 되는 듯 배움에 거만했는지도 모른다.

지금부터라도 자중하자! 나는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했든 속 빈 강정 같은 존재였음을 부끄러워하며 남은 人生을 경계해야만 한다.

裁松望亭<재송망정>이라 하였다.
지금까지는 이제 배워봐야 언제 써 먹겠느냐며 간과했든 영어회화였고, 자녀들이 영어권에서 살므로 그들과 있는 동안 불편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러한 방만함이 나를 얼마나 퇴보 시켰는가!

지금처럼 시간 있고 건강 있을 때 배우지 않으면 언제 또 막급한 후회의 날이 올는지 알 수 없지 않은가! 5년 후, 아니 10년 후를 후회하지 않기 위해 지금부터라도 몸으로 부딪치며 배우자! 입에서 단 내가 날 때까지 시도해 보자! 비록 裁松望亭<재송망정> 일지언정 아는 것만큼 세상을 넓게 볼 수 있는 날이 다시 오리라...           

裁松望亭<재송망정>이란,

소나무를 심어 정자(亭子)를 바란다는 말로 짧은 인생에서 효과를 얻기는 까마득하며 또 앞날의 성공이 아득하여 이루기가 어렵다는 松南雜識<송남잡지> 출전의 故事

        

                               2009.   3.                               
                    

by 마음 | 2009/05/26 11:41 | 隨想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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