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지신(尾生之信)


미생지신(尾生之信)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 사람이 쓸데없이 그럴듯한 명목에 구애된 나머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답답함을 비유하는 말이 미생지신(尾生之信)이다.
전국시대인 노(魯)나라에 미생(尾生)이라는 아주 단순한 사람이 있었다.남하고 약속을 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지키고야 마는 그런 인물이었는데 그 사나이가 어느 날 개울다리 밑에서 연인을 만나기로 약속을 하였다. 
여인의 속 마음은 모르고 당연히 약속을 지키리라 믿은 미생(尾生)약속장소인 개울다리 밑에 나갔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여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에 밀물로 인해 개울물이 불어서 그의 몸은 점점 물에 잠기게 된다. 발에서 무릎, 무릎에서 가슴으로 물은 계속 불어가는데도 그는 단념하지 않았다. 나중에는 물이 머리 위까지 올라와 교각에 매달렸으나 피신하지 않고 끝내 여인을 기다리다 그 곳에서 미생은 익사해 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어찌보면 한번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생명마져 버린 절의의 사나이 같지만 과연 그러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 놓을 만한 일이었는지 역사는 결국
미생지신(尾生之信)이란 고사(古事)만 남겼다.
전국시대의 유세가(遊說家)로서 유명한 소진(蘇秦)은 연왕(燕王)을 만나 자기 설을 말했을 때 미생(尾生)의 이야기를 꼬집어 신의가 두터운 사나이의 보기로 삼으려 하였고

같은 전국 시대의 철학자인 장자(莊子)는 그의 특색있는 우언(寓言)에서 공자와 이름 높은 도적 도척(盜跖)의 대화 속에서 도척을 통해 미생(尾生)의 이야기를 비평하고 있다. 

“이런 인간들은 책형(磔刑)을 당한 개, 물에 떠내려가는 돼지, 또는 쪼그라진 깡통을 한 손에 든 비렁뱅이와 같이 쓸데없는 명목(名目)에 구애되어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아끼지 않는 자들로, 진정한 삶의 길을 모르는 패거리이다.”로 결론지었다.

우린 미생지신(尾生之信)에 옳고 그름을 논할 수 없다. 그냥 고사성어를 읽을 뿐이다. 

그러나 이런류의 사람이 중국의 사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작금 대한민국의 국회의원들 가운데도 적지않게 많음에 국민은 답답하고 한심하여 또 다시 정치인에 대한 신의를 묻고 싶다. 

사교육 범람을 막기위해 外高를 폐지하든가, 자율고로 전환하자는 주장을 하는 일부정치인들과,
정운찬총리가 말하는 세종시 원안수정안이 바로 그 대상이다.

대한민국 경제성장의 원동력은 인적자원이 전부였음은 우리 국민은 물론 세계인 누구도 부인 할 수 없음이 상식이고 정설인데 부존자원 없는 이 나라에서 글로벌 인재의 양성을 취지로 설립된 외고의 순기능적 특성은 무시한 채 외고의 입학경쟁력이 사교육을 부축인다는 역기능의 이유만으로 인재의 양성을 중단시키라는 어처구니 없는 발상이 과연 이 나라 정치의 현주소인지 묻고 싶고 세종시문제도 또한 만약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해서 반드시 세종시 원안을 수정해야 함에도 현 대통령이 2007년 대선에서 추진하겠다는 약속 때문에 우물거리는 것이라면 미생지신과 다를 바 없는 어리석은 행동이 아닐 수 없다.

국가와 국민을 영도하는 대통령의 안목으로 잘못된 법안이라면 과감하게 바로잡아야 함이 옳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을 설득하고 이해시키기 위한 대통령 자신의 반성이 선행되어야 한다.
대선 당시에 이미 세종시추진이 잘못됨을 알았음에도 원안추진을 약속했다면 그 잘못을 겸손하게 시인하고, 대통령이 된 후에 보니 국가전체로 봐서 원안수정이 불가피하다면 늦게 알게 된 자신의 무능에 대해서 국민에게 사죄하는 수 밖에 없다.
누군가
"정치는 사실의 게임이 아니라 인식의 게임이라고 한다.

옳은 것이 이기는 게 아니라 이긴 것이 옳게 되는 게 정치라고 하니 정치에서의 신뢰란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 노무현 전대통령이 국가의 균형발전이란 이름으로 세종시 건설을 약속하여 선거에서 이긴 사례가 그것을 대변한다,

그리고 노대통령 임기말에 사석에서 “세종시문제로 재미좀 봤다!”고 까지 한 얘기가 세상에 회자되기도 하지 않았는가!

결국, 정치란 게임에서는 정의가 절대적일 수 없다는 얘기도 된다.
강하고 틀린 것이 약하고 옳은 것을 이길 수도 있으니, 强한 사람이 좋은 사람을 이기고

合目的的인 사람이 合理的인 사람을 이기는 현실이 정치이기도 하니 정치인의 말은 더 이상 믿을 근거가 없는 미증유의 불신만 남는다.
결국, 국민의 의식수준과 민도가 높아져야만 바른정치가 가능할 수 밖에 없음에 정치인에게는 현실의 난제를 푸는 슬기가 필요하다. 분명한 것은 외고문제든 세종시 문제든 먼 훗날에 나라의 발전에 걸림돌이 되었는지, 초석이 되었는지 역사적 평가를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자면 정치인은 사심없이 국가의 발전이라는 청사진을 제시하고 선택하여 국민을 설득하고 민심을 회유하는 치열한 가시밭길을 걸을 수 밖에 없다.
미생지신(尾生之信)을 누가 원하겠는가!

                            2009. 11. 2.

                      
                                   

by 마음 | 2009/11/02 11:42 | 隨想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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