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과 사위


<人生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 입니다!>

 

제한속도가 80km 였지만 난 이미 90km 이상을 달리고 있었다.

2009년 12월 31일의 흐린 날씨에 오후 3시가 넘었으니 밝을 때 구경이라도 하려면 빨리 도착하는 수 밖에 없음이 과속의 핑계지만 사실은 아내의 잔소리를 중단 시키려면 목적지인 낙안읍성에 빨리 도착하는게 제일 좋기 때문이다.

 

며칠 전 미국에 있는 사위로부터 학회세미나 참석차 한국에 나가면 2박3일정도 마산에 들릴 것 같다는 전화를 받은 아내의 얼굴은 21살 처녀 때 나를 만나든 표정보다 더 밝아 보였다.

그 날 이후부터 집안의 구석구석이 윤기를 내기 시작하더니 어랍쇼! 탁상의 우리부부 사진조차 밑으로 내려가고 몇 년 전 여행 때 사위와 함께찍은 사진들만 전시 되는게 아닌가!

또 식단과 1박2일의 남도여행 일정을 잡는 계획표를 보니 어쭈, 마치 국빈 의전행사라도 하는 듯이 보였다.

 

우습기도 하고 신경도 살짝 쓰여 너무 심한 것 아냐? 라고 태클을 걸었더니 돌아 온 대답은 당분간 거실 화장실 사용을 금한다는 출입제한 통보를 하는게 아닌가! 깨끗이 윤기를 낸 곳에 지저분한 내가 도움이 안될게 뻔하다나

어휴! 젊은 사위 온다니까 60도 되기전의 나는 이미 골방신세를 지라는 얘기다.

그래도 어쩔것인가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가사권(家事權)을 가진 아내의 위세에 이미 주눅이 든 내가... ...!!!

하긴, 평생 일류로 살아보지 못한 나와는 비교도 안되게 사위는 이미 30대초반에 명문대 교수라는 타이틀까지 가졌으니 아내가 귀하게 여길 수밖에...

더구나 한국에서 살기는 했지만 서울에서만 거주하다 떠난지 12년이 넘은 사위가 제대로된 한국의 정취도 느낄 겨를없이 학구생활에만 묻혀오다 모처럼 2박3일이라는 시간을 내었다니 잘 해주어야한다 는데는 이의가 있을 수 없다.

그런 사위에게 장인장모가 해줄 대접은 국내여행이 적격일 것 같아 집에서 멀지 않은 남도 여행을 시작한 것인데 왜 하필 날씨는 이리도 차가우며 눈까지 쌓여 일정을 더디게만 하는지...

보성 녹차밭을 처음 가본 사위는 T.V광고로만 본 낭만적 현장에 감탄을 자아내고 다음 일정이 조정래작가 태백산맥의 소설배경인 선암사와 낙안읍성을 둘러본다는 설명에 천진하리만큼 좋아하는지라 우리 내외도 여간 신나지가 않았다.

바쁜일정 때문에 함께오지 못한 딸에 대한 아쉬움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런데 나의 무딘 방향감각 때문에 항상 다투는 우리부부 습관적 고질병이 기어이 사위앞에서도 시작되고 만 것이다.

뒷자리에 앉은 아내는 주위를 두리번 거리드니 방향이 틀리다고 연신 잔소리를 시작하였고, 운전중인 나는 내비게이션에서 지시하는 방향으로 잘가고 있는데 무슨 소리냐고 아내에게 퉁을 놓고 있으니

짧은 순간이나마 사위는 난감한 모양이다. 남도의 지리도 방향도 모르는 사위입장에서는 어느 누가 맞는지 알 턱이 없으니

“아버님, 천천히 가도 될 것 같은데요!”라고 내게 얘기하고는 이내 아내에게도 “어머니 시간 충분하니까 조금 둘러가도 되겠지요!” 라며

중재 아닌 중재를 한다.

그 모습이 귀여운지 아내는 그래, “저이는 항상 둘러가길 좋아 한단다.”

라고 말은 맺으면서도 기어이 뒷자리에 꽂혀있는 지도를 꺼내 들었다.

 

그런 후 우리가 향하고 있는 국도며 지명을 가리키며 내가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사위에게 은근히 동의를 구하는 것이 아닌가!

 

가만히 지도를 보든 사위 역시 아내편이 되어 “아버님! 지도상으로는 아닌 것 같은데 가까운 휴게소에 잠시 쉬시는게 좋을 것 같아요!”

나는 속으로 에이 녀석, 장모를 더 믿고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길 찾고 방향 잡는데는 거의 동물적 감각을 지닌 아내에게 이긴 적이 없는지라 못이기는체 “내비게이션은 원래 지름길로 안내 하는데 이상하군!” 하며 국도변 빈 공간을 찾아 차를 멈췄다.

아내의 말인즉 낙안읍성은 방향이 벌교 쪽이어야 하는데 우리는 지금 강진으로 향한다는 것이다.

그 참!, 분명 내비게이션 입력시 목적지를 “낙안마을”로 했는데 하는 순간... “낙안마을” 과 “낙안읍성 민속마을“ 은 별개임이 생각났다!

 

피식 웃는 아내에게 낙안마을로 목적지 지시한 사람이 누구였지?...하며 쑥스러운 변명은 하면서도... 젠장, 오늘도 졌다!

재미있다는 듯이 우리를 번갈아 보는 사위에게 내친김에 한마디 했다.

 

“김서방! 人生도 마찬가지야! 속도가 중요한게 아니라 방향이 중요한 거야!

자네는 학자로서 항상 학자의 바른 길로만 가야하네... 알았지!

아내와의 말다툼엔 늘 그렇듯이 나의 완패지만 오늘은 그래도 무게는 잡았다!

                                                     2010. 1.

  법무사회지 2010. 4월호 게재   

by 마음 | 2010/01/22 11:50 | 隨想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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