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의 초상


<행운의 날>

봄비가 사납게 내리는 일요일 늦은 오후

(), ()경계에서 멀지 않은 내 아파트 20층에서 보이는 함안군 칠원면 황룡산(일명 작대산)’ 일대는 완만한 능선과 그다지 높지 않은 봉우리가 한폭의 동양화처럼 운무에 둘러싸인 모습으로 신비의 멋을 내고 있다.

봄물을 맞아 검은 때가 씻긴 바위며 움추렸던 동면의 몸을 풀고 하늘 높은 곳을 향해 돌진하려는 나무들의 생기는 보고만 있을 수 없는 유혹이 되어,

나를 25층의 아파트 숲에서 나오게 하였고 젖은 땅을 밟으며 를 벗어나 으로 이어지는 작대산 비포장 길을 걷게 한다. 비에 젖은 풀을 밟자 겨우내 움츠렸던 생활로 무기력해진 나를 위로하듯 생명의 신선함으로 채워진 산중의 공기는 청량한 그대로 가슴에 파고든다.

이 좋은 자연을 누가 값으로 따질 것인가 마는, 사람들은 자신이 사는 지역에 값을 매기기를 좋아한다. 작대산에 오르면서 내려다 본 은 도로와 하천을 중심으로, 아파트단지 군락을 달리 하는데 같은 고층으로 머리를 맞대고 있지만 함안군 지역의 최근 지어진 정리 잘된 대단위 아파트는 에 속한 이유로 가격이 낮게 평가 되고, 내가 사는 아파트는 다소 오래 되었지만 통합창원시에 속한 이유로 가격이 높다고 소문난 사실을 떠 올렸다. 도로 하나 사이지만 의 위상은 그렇게 콧대의 높이가 다르단다.

그러한 경계를 일소하듯, 창원과 함안을 아우르며 시와 군의 아파트 사이로 흐르는 광려천 넓은 물이 오늘은 제법 소리도 낸다. 그깟 가격이나 따지는 얄팍한 인간들이 가소롭다고...

한가로움에 출발한 걸음이지만 걷다 보니 빗줄기 사나운 산길을 무작정 들어 갈수는 없고, 어둠도 촘촘히 내려앉으며 좁은 오솔길을 감추려 하지만 몸이 기왕 젖은김에 더 가자며 돌아서기를 거부한다.

빗발 굵고, 바람도 부는 길을 홀로 걷는다는 게 허전도 하고 청승스레 보이기도 하지만 운무가 정겹고, 물 흐르는 소리가 흥에 겨워, 어둠이 와도 좋다는 무모함 때문이리라.

산중에 얼마나 들어섰는가...

발바닥의 열기가 머리까지 올라오니 내 얼굴은 봄 산이 되어 붉은 꽃도 피고 모락모락 안개도 지펴진다. 이제, 올만큼 온 것 같아 돌아가야 하는데,

불현듯! 목적도 없이, 생각도 없이 어둠이 깔릴 때까지 걸어온 오늘의 이 노정이 마치 내 인생도 어쩌면 이렇게 무작정 살아온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솟구친다. 그렇다면 무신경 하게 이대로 돌아 설 것이 아니라 억지로라도 길을 나선 명분을 찾고 싶었다. 여자들이 같은 아파트 단지 내에 무연히 살면서도 명분으로 값을 매기는 까닭에는 이런 심리가 작용 하는지도 모른다

우격으로 생각한 것은 새 아파트 상가에 마트가 있으니 내려가는 길에 마누라 입막음용 주전부리나 사가자! 우유라도 하나 사면 될 것 같다. 억지로라도 목적이 정해지자 걸음이 조금은 가벼워지고 더 빨라지고 세찬 봄비를 맞는 것도 구차하지가 않았다.

아파트입구에 도착하여 보니 새 상가건물에 ‘00사우나간판이 걸려있어 마음엔 또 한 번의 갈등이 생긴다. 기왕 왔으니 목욕까지...? 그러나 젖은 옷을 벗고 목욕을 한 들, 돌아가는 길에 옷과 몸이 다시 젖을텐데...

갈등은 갈등을 낳고, 혼선은 혼선을 낳고, 올망졸망한 나를 꾸짖는 자아(自我)가 부릅뜨여 돌아서려는 내게 번쩍 행운이라는 불빛이 들어온다.

그 마트 이름이다! 그렇다! 오늘의 발걸음은 내게 행운인 것이다.

좋은 공기, 시원한 풍광, 메마른 땅을 젖힌 봄날의 비, 모든 것이 나와 조우되었으니! 분명 행운이리라! 이 느낌과 운치를 뒤로하고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와 현관에서 등산화를 벗자 물이 좌르르 흐른다. 이 모습을 물끄러미 본 아내가 야유인지(?) 걱정인지(?) 모호하게 한마디 한다.산 좋아 하고, 물 좋아 하는 사람 산에서 비까지 맞았으니 얼마나 행운이유--!”

이래저래 오늘의 내 걸음이 행운임이 틀림없는 모양이다!

그리스신화에 의하면

제우스신이 생물의 탄생을 에피메테우스프로메테우스에게 맡겼는데

에피메테우스가 용맹한 동물을 만들자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을 만들 때 동물보다 강하게 하기 위해 똑바로 걷게 해주고 불을 사용하게 하였으니

걷는다는 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태생적 축복임을...

어디, 그 뿐이랴! 나잇살 주제파악도 못하고 비바람 맞고 돌아다녀도 유치한 남자로 보지 않고 때 맞춰 따뜻한 밥 차려주는판도라아닌 무던한 여자와 사는 내가 보통 행운아인가!...

2011. 2. 27.

   




by 마음 | 2011/04/14 10:20 | 隨想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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