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딸의 관계

미국에서의 생활 1.


장기간 여행 일정으로 집을 떠나 텍사스 오스틴에 있는 딸의 집에 머물며 20여일 쯤 지났을 때
아내가 불쑥 이제 그만 한국에 돌아가자는 얘기를 한다.

우리나라 청계천의 롤모델(Roll Model)이 된 리버워크로 유명한 '
샌 안토니오'도 가봤고,
석양이 이름답기로 유명한 오스틴리버에서 사진도 찍었고, 박쥐다리  등 주변의 관광지도 이틀이 멀다하게 돌아 다녔고 Boston에 있는 사위까지 와서 일주일이나 함께 여행 다니며 좋은 것 맛있는 것 죄다 먹었는데

딸이 연주연습으로 집을 비운 사이 우리만 남게 되었을 때 아내는 갑자기 미국에서의 생활이 불안했던 모양이다.

나로서는 틈만 나면 골프레인지에 가고, 레이크를 돌기도 하고 수영도 하는 등 즐길일이 많아 시간이 모자랄 판인데 이 무슨 황당한 소리!!!


그런데 아내의 표정을 가만히 보아하니 정말로 집에 가자는 의도는 아닌 것이 분명하여 모르는 척 그러면 Yellow Stone 관광도 취소하고, 죠지아의 친구집도, 코네티컷에 있는 처제집도 다음에 가겠다는 연락을 한다며 짐짓 전화를 꺼내 들자

화달짝 놀란 아내는 금새 ‘아니 당장 돌아 가자는게 아니라...’며 슬며시 발뺌을 한다.


분명히, 갈 이유가 없는데 가자는 얘기를 하는 게 궁금해서 이유를 물어봤다.

아내는 어제 밤 내가 텍사스 야생너구리인 라쿤(raccoon)을 구경하겠다며 산책 나간 때에

딸의 외식과 낭비를 일삼는 생활태도가 맘에 들지 않아 딸을 앉히고 “네가 연예인도 아닌데 무슨 옷이 그리 많으며...”등등 준엄(?)한 잔소리를 좀 했단다.

그런데 딸의 태도가 너무나 의외로 “엄마는 정말 촌티가 나서 창피 할 정도야!”라며 강경하게 반항하는 통에 자존심 강한 아내는 이 상황을 그냥 참을 수 없어 말도 제대로 못하고 밤새 속앓이만 하다가 당장 딸네집을 떠나고 싶었다니...

한국에서 내핍생활에 익숙한 아내가 보기에 딸은 정말 낭비가 심해 보일 수 밖에 없는 게 사실이다. 거의 하루에 한번 이상은 외식이었고 외출할 때마다 옷이 달랐으니...

그러나 12년을 미국에 살면서 미국생활에 익숙한 딸의 입장에서 보면 집에서 밥 해먹으며 공부하고 연주하고 연습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더구나 사람들과의 접촉빈도가 잦은 딸이 한국의 매운음식으로 냄새를 풍길 수도 없다고 하는데...

나는 딸을 먼저 이해하였지만 아내의 깊은 속도 알 것 같다.
아내는 지금의 생활을 걱정하기 보다는 이제 한국에 돌아와서 살아야 할 딸이므로 한국에서의 생활방식을 미리 알려주자는 취지였든 것 같다.

그렇지만 결혼까지 하여 품안의 자식도 아닌 독립 된 딸에게 옛날의 ‘엄마 겸 선생님’으로 돌아간 아내의 구태는 분명 잘못 되었음을 지적하여야 하는데,

그렇다고 속마음 그대로를 얘기 할 수는 없고 우선 아내의 말에 동조했다. “공부는 공부고 살림은 살림인데...저 녀석이 지가 무슨 갑부의 딸이라고...그치!...”

나마저 딸의 입장을 대변하면 아내는 외로워진다.

(이러한 나의 어물쩍한 변신은 아내에 대한 배려도 배려지만 진짜 고집 부리고 돌아가자고 나서면 나로서는 낭패가 된다. 예정된 여행일정의 절반도 안 채웠는데... 기막힐 일이 아닌가!)

아내와 딸의 관계란 그런 것이고 이제 아내는 현실의 딸이 과거의 딸이 아님을 절로 알 것이다.

사실, 미국에 오자 당장 느낀 것이 “딸이 어른이 되고 아내가 아이가 되었음”을 직감하였다!

우리의 서툰 영어실력으로는 예약이고 여행이고 당장 도로에 나서는 것조차 어리버리 하였는데 도착 즉시 딸은 아내에게 휴대전화부터 구해주며 단축 다이얼

1.딸, 2.사위, 3.이모, 4.조카, 5.친구 순으로 비상시의 연락망을 갖춰 주었고, 언제든 호출하면 차량제공이 가능하도록 기동력을 구성해 준 덕에 안심하고 거리도 쇼핑도 혼자 나갈 수 있도록 해 주었는데
우리가 지금 어른행세 하게 되었느냐고 아내에게 소곤거리자 아내는 한숨으로 수긍한다.

우리 내외는 지금 “아이 어른 밑에서 어른 아이로 사는 것이다!
2011. 5. 21.

by 마음 | 2011/07/06 16:25 | 隨想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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