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쉬> 사람들!

금번 미국에서의 마지막 관광지는 펜실베니아주 랜캐스터 아미쉬(Pennsylvania Lancaster Amish Village)였다.

이곳은 청교도적 신앙생활을 유지하려는 사람들의 마을로 모든 건물 양식과 사는 모습이 마치 고전전인 18세기의 전원풍경 그대로 이다 .

자동차 대신 마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 멜빵을 메고 밀짚모자를 쓰고 트랙터 대신 말을 부리는 농부들, 망토와 앞치마를 입은 여자들...

미국이면서도 미국의 다른 농촌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그리스도인으로서 교회중심으로 살아가는 전통마을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들의 사고 중심에는 교회의 공동체 규칙인 오딩(Ordung)에 따른

절제와 겸손을 미덕으로 여기고,

결혼도 그들끼리만 하는 규범을 지키며 일을 편하게 해주는 기계나 도구를 가능한 피하고 자연과 흙과 사람이 하나 되어 협동하는 공동체의 독특한 문화양식으로 살아가는 곳이다.

그들의 주업은 농사일과 대장일, 목공일이며 여자들만의 일로는 Quilt(조각천 잇기)로 다양한 그들의 수공예 작품을 전시하면서 관광수입도 취한다.
레스토랑운영도 하는데 전통식 코스요리를 한번 주문하려면 8-10명 정도의 양이 나오므로 식사비용이 조금 비싼듯 해서인지 대부분의 관광객은 1가지 요리만을 주문하였지만

우리는 일행이 5명인지라 코스요리를 시키기로 하자 다른 남자 관광객 1명이 꼭 전통코스를 먹고싶으니 우리일행과 1인분의 식비부담으로 합석을 원하여 별방에 함께 하였는데
여자 4명 포함 5사람인 우리의 양만큼을 혼자서 해치운 이 친구의 배짱과 식욕은 참으로 대단했다.

음식에 사용된 각종 과일에도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법으로 재배를 해서인지 모든 게 청량하다.


그들은 교통수단으로 마차를 이용하는 외 이웃을 다닐 때 사용하는 자전거도 안장 없이 발로 밀고 다니는 초보적 기능일 뿐, 편리함을 위한 문명을 오히려 번거롭게 여기는 듯 했다.

옷차림은
여자는 주로 검정색 천으로 만든 원피스 그위에 망토를 걸치고 앞치마를 둘렀고 머리는 자르지 않고 뒤로 묶어서 올리고 그 위에 모자를 썼는데 최근에는 약간의 보라색 파란색 회색 등을 사용하기도 한단다.

남자는 검은색 양복에 깃이 없는 코트, 통 넓은 바지를 입었고 멜빵을 메었다.

장화같은 구두를 신고 밀짚모자를 썼는데 턱 수염을 기른 사람은 기혼자라고 한다. 콧수염 기른 사람이 보이지 않아 물었더니 누구도 콧수염은 기르지 않는다 했다.

교육은 교회에 있는 학교에서 보통 8학년까지만을 가르치는데

미국의 의무교육 기간인 12년과 맞지 않아 소송까지 제기하며 1972년 미대법원에서 아미시교육의 특성을 허용하는 판결까지 받았고

선생님은 모두 기독교리에 투철한 처녀선생님이므로 엄격함 보다는 사랑과 자비로 가르치는 특징을 고수 한다고 한다.

관광객 안내를 맡은 아미쉬의 처녀 역시 화장을 전혀 하지 않았음에도 무척 고운 피부를 지녔고 악세사리도 착용하지 않았지만 예뻤다.

관광객인 우리가 보기에는 애처로움 마저 들어 “사는 방식이 힘들지 않느냐?”고 질문을 하자,

전혀 그렇지 않다고 답을 하면서도 ‘소망이 아미쉬의 남자를 빨리 만나 결혼을 하고 싶은데 마땅한 배우자가 없어 결혼을 못하는 게 좀 힘들다!’는 답을 하여 그들의 모든 면에 진솔함이 배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결혼을 하게 되면 자녀를 많이 낳고 이혼은 하지 않는다 한다.

그렇다고 자녀들에게 결코 아미쉬 신앙을 강제하지는 않으며

자녀나 젊은 청년들 중 문명에 대한 호기심과 교육에 대한 열망이 있을 경우엔 규약대로 마을회의를 하여 아미쉬를 벗어나 공부든 생활이든 외지에 나가 1년 정도는 살게 한다고 한다.

그런 다음 18살이 되면 가족과 어른들 앞에서

“아미쉬로 살것인지? 문명으로 나갈 것 인지?”를 본인의 판단으로 결정을 하게 하는데

이 때 아미쉬로 살겠다는 사람은 평생 아미쉬가 되고

문명으로 살겠다는 사람은 결국 아미쉬를 벗어 날 수 있다고 한다.

단, 아미쉬를 벗어나기로 서언한 사람은 나중에 본인의 마음이 바뀔지라도 결코 아미쉬로 살 수도 없고, 받아들이지도 않는 철칙이 있단다. 결국 그들은 종교적 이단자로 취급되는 것 같았다.

우리는 그러한 아미쉬 마을을 둘러보면서

저렇게 순박하고 자연친화적으로 살아가는 그들만의 세계가, 문명으로 상처받은 인간성이 자연으로 회귀하는 모습이 아닐까 하는 공명이 생겨 신선함으로 받아들여졌다.

아미쉬 사람들이 추구하는 종교적 신념과 생활은 사랑과 평화, 용서와 배려이다.

자녀들의 교육도 그렇게 한다.

그 실례로

2006년 10월 2일, 오전 10시쯤 우유배달 트럭 운전사인 한 남자(32)가 총기를 들고 침입해 여학생 11명을 쏘아 5명을 숨지게 하고 자신도 자살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 남자에게는

9년전 자신의 딸이 출산직후 사망한 게 신의 저주라는 생각에 사로 잡혀 삶과 하나님에 대해 매우 불만을 품고 있었는데 그에 대한 복수를 너무도 신앙적으로 살아가는 아미쉬 학교, 특히 여학생들이 공부하는 곳으로 생각한 것이다.

범인은 학교 교실에 들어가 남학생과 임산부 등 성인 여성을 모두 내보내고 출입구를 봉쇄한 뒤 여학생들의 다리를 묶고 일렬로 칠판 앞에 세워 처형하듯 머리에 총격을 가하려고 하였다.

이 때 그 중 가장 나이가 많았던 13세의 여학생이 “나를 먼저 쏘아요!(Shoot me first)라고 외쳤다. 그 여학생은 아미쉬에서 배운 희생정신으로 자신이 죽으면

다른 동생들을 보호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라 한다.(나중 아미쉬 사람들의 증언)

그 학생이 총을 맞고 쓰러지자, 그 다음으로 나이가 많은 학생이 “이제 나를 쏘아요!”고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결국 이 광적인 남자는 자신도 자살하는 것으로 이 끔찍한 사건은 마무리되었지요.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이 사건 이후 아미쉬 마을 주민들은 범인의 아내에게 그를 용서한다는 편지를 보냈고, 장례에 와 줄 것을 부탁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아미쉬 마을 사람들은 범인의 장례식에 참석해 명복을 빌었는데 조문객 75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아미쉬 마을 주민들이었다는 AP통신의 기사가 지금도 남아있다.

이곳 펜실베이니아 주 랭커스터(Lancaster, Pennsylvania)의 니켈 마인즈(Nickel Mines)에 있는 아미쉬 학교에서 총격사건이후 온 세상 사람들과

전 세계 매스컴은 아름답고 조용한 아미쉬 마을 현장으로 몰려들었고, 경이로운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아미쉬 공동체가 살아가는 방식, 문명을 마다하고 자연과 명상을 통해 신에 대한 경외심을 우선하고 성실과 사랑, 용서(‘Forgiveness)를 미덕으로 여기는 아미쉬 사람들!

세상 사람들은 경악, 또 경악하였습니다.

그들은 사건이후 답지하는 성금을 범인의 유가족에게 먼저 할애 하였고 범인의 부인과 어린 세 자녀를 초청하여 식사를 대접하였다고 합니다.

그들은 농사를 지을 때도 공동체로서의 일을 하기 때문에 아미쉬 사람들이 짓는 농사는 미국에서 단위면적당 최고의 수확량을 지녔다고 한다.

보이는 것이 사람 사는 세상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아미쉬 사람들의 삶의 모습엔 근면과 성실, 그 이상의 종교적 경건이 모든면에 스며있다. 참으로 나도 동참하고 싶은 충동이 온다.

노후에는 자연적 환경을 찾아 귀농으로 평온을 누리고픈 농경민족의 피가 흐르는 나에겐 이 광경이 롤 모델이 될 듯도 하여 나는 여행객이 아니라 선망의 대상으로 그들을 지켜보는 동안

시골 사는 것은‘벌레가 무섭고 청소가 버겁다’며 단독주택으로의 이사조차 싫어하고 아파트 생활만을 고수 하려는 관광객인 아내의 눈빛과 부딪혔다.

아내는 마냥 재미있고 천진한 눈빛으로 웃음을 흘리고 있었으나 금방 내 눈빛에서 나의 속내를 알아차린 모양이다.

의미있게 한 마디 던지는 말! “그냥 구경만 잘하셔!”였다.

도대체 여자들의 눈치는 동물적 본능을 지녔단 말인가!

뚱딴지 같은 생각은 접고 구경만 잘하라니 어이쿠! 아내의 눈빛이 무십다.

아미쉬에서의 또 다른 경험은

“in sight에서 성경을 주제로 하는 뮤지컬”이다.

그 곳은 성경을 주제로 뮤지컬만을 공연하는 입체적 상설무대 인데

규모가 맨하튼의 ‘브로드웨이’와도 손색이 없을 만큼이다.

우리가 예약한 날의 공연은 마침 구약 ‘요셉이야기’였는데 실감 있게 구약시대의 마을처럼 꾸민 무대장식과 실제로 무대까지 말을 타고 드나들며 정말 양을 기르는 목동이 배역으로 나와 놀라기도 하고 감동적인 관람을 하였다.

문명을 거부하지도 문명에 종속당하지도 않으며

신에 대한 인간의 순종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는 청교도적인 생활 모습을 간직한

‘Pennsylvania AMISH’마을의 전원적 평온함은 내 삶에서 욕심없이 사는 지혜를 얻고 구하리라는 다짐으로 이어졌으니 참으로 얻은 게 많은 여행이었다.


참조:
“AMISH”란 개신교 세례파 중 일부이며 17세기이후 종교탄압을 피해서 유럽에서 미대륙으로 이주한 스위스-독일계 이민들로 미국 25개주와 캐나다 온타리오주 에 1600여 교구가 있다고 함.
창시자는 스위스의 종교개혁자 야곱 아망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네델란드어와 펜실베니아식 독일어(Pennsylvania Dutch)이며 영어는 아미쉬가 아닌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만 사용한다고 한다

<출처 : http://blog.naver.com/amishstory>



2011.  6. 

by 마음 | 2011/08/05 17:01 | 隨想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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