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후의 재산

부창부수<夫唱婦隨>

K여사는 결혼생활 35년동안 왠만큼 화가 나도 남편에게 잔소리 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남편 P 역시 자녀와 아내를 끔찍히도 애지중지 하는 기처남이다.

공무원생활 30년 이후 명예퇴직하고 연금을 받으며 인생 3막에 들어선 요즘 이들 부부 사이에는 묘한 기류가 흐른다.

좀처럼 잔소리 없던 K여사가 은근히 남편에게 투덜거리기 시작한 것인데 주 불만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재산이라고 내세울 만한 부동산도 없고 , 통장의 현금도 아슬아슬한데, 시누와 사는 노모에게 공무원생활 시작 때부터 31년 째 보내드리는 생활비며 남편의 집안행사에 지출되는 비용은 버겁도록 많기만 하여 연금 들어오는 족족 지출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는 볼멘소리다.

거기에 K여사가 모처럼 동창 모임에 나가보니 순희는 현금만 20억 이고, 명자는 부동산 50억 부자로 소문이 자자한데, 부자 아닌 사람은 자기뿐이라는 현실에 기가 팍 죽었다.

절친한 친구였던 두 사람 말고도 모일 때 마다 정장 한 벌이 우리 가정의 생활비만큼이나 비싸기로 소문난 유명 브랜드 옷이나 가방을 자기의 브라우스 만큼 자주 바꿔 입고 나타나는 몇몇의 동창으로 인해

괜히 동창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다는 후회 막급의 얘기를 듣는 남편 역시 아내가 나이가 드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그냥 넘기려는 데

오늘 오후에 친구 딸 결혼식에 함께 가자고 하자 입고 갈 정장이 마땅찮아서 갈수 없다고 퉁을 놓는 바람에 그동안 참았던 부아가 한꺼번에 치밀기 시작한 것이다.

한바탕 할 생각으로 아내를 향해 돌아선 순간, 주름진 눈가에 서글픈 눈동자로 자신을 마주보는 아내의 표정을 읽고는!

P는 가슴이 먹먹해진다. 별로 잘나지도 않은 남편 봉급 하나 믿고 평생 내핍생활하며 자기 뒷바라지와 자녀들 교육에만 전력해온 아내에게 남편으로서 해 준 것이 무엇이 있다고 성질 부려가며 큰소리 낼 수 있는가 라는 자괴가 생겼다.

불현듯, 늙어가며 아내에게 상처를 주는 말은 행여라도 하면 안된다는 지각이 생기자 그동안 상투적으로 던진 말 보다는 무언가 진정성 있는 적극적인 행동이 필요할 것만 같아

P는 지갑을 열고 카-드를  내려놓으며 “오케이! 당신 제일 좋은 옷(?) 한벌 해 입고 용돈 마음대로 빼써!”

그리고 비까번쩍 하고 품격 있는 곳에 가서 외식 한번하자!“라며 호기를 부렸다.

사실 살아 오는동안 아내의 이런 볼멘소리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래도 얼마전까지는 “ 옷 보다는 인물(人物)이지!” 한마디 하면 빙긋 웃고 그냥 넘어가던 아내였는데

여자 나이 60쯤 되니 배운 거! 잘난 거! 행세 해봐야 돈 많은만 못하다는 속설이 하나도 안틀린 것 같다.

P가 아내에게 물었다.
“도대체 당신이 친구들 돈 많은 거 어떻게 알어?

그 친구들 공직자라서 재산공개 한 것도 아닌데...“

그러자 아내는 고교동창들 만나서 얘기 들어보면 부부사이 베갯밑 공사까지 훤한데 그까짓 재산정보쯤 뭐가 새롭나며 오히려 어이없다는 표정이다!

“그럼 그 친구들이 우리 재산은 얼마쯤으로 알고 있어? ”
“그네들이 말은 않지만 없다고는 생각지 않는데... 사실 우리 아무것도 없잖아!”

그 소리 듣는 순간 전신의 힘이 싹 빠지는 듯 물끄러미 창밖을 보든 P가 아내에게 말했다.

“참! 당신 재산을 제대로 계산 할 줄 모르네!

날 봐! 건강한 남편, 아침마다 빠짐없이 등산 잘하고 지금까지 병원에 입원 한번 한적 없는 싱싱한 남편! 또 비록 돈은 안되지만 명색이 평생교육원 강사라도 하지!
돈으로 치면 10억도 넘어...“

“그리고 우리 애들 뭐가 빠지는 게 있어? 딸 공부 할만큼 했지, 작은녀석 외국에 마음대로 다니는 직장 확실하지, 그 뿐이야 사위도 엘리트공무원이잖아!
돈으로 치면 20억도 넘어...“

“당신 돈 많은 친구치고 남편 멀쩡한 사람 없고, 과부가 둘이잖아!
자식 반듯하게 키운 사람 몇이나 돼? 말해봐!
우리처럼 행복한 거 돈으로 치면 30억도 넘어!
합치면 자그마치 60억이야 60억 !! 걱정도 팔자다! "하며
슬며시 탁자에 있는 카드를 도로 집어넣는다.

자신감을 찾았다는 듯이 "맞아! 맞아!"하고 맞장구치며 평소 입든 외출복 그대로 입고 따라 나서는 순진한 아내를 보며 P는 깨달았다!   퇴직후에 남은 유일한 재산은 가족이 전부라는 것을 ...
문뜩 아내가 입은 외출복을 자세히 보니 20년 전 막내동생 결혼식 때 혼주로 얻은 옷이 아닌가!  

2012. 7.


by 마음 | 2012/07/13 21:41 | 隨想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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