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과 젊으신! 내가 사는 가까운 곳에 이름난 부곡온천이 있다보니 매주 온천물로 목욕하는 호사를 누린지도 벌써 30년 가까이 된다. 하긴, 농사일로 땀흘린 농부조차 온천욕으로 피로를 풀고, 못자리 끝내거나 농약친 후에도 온천물에 뛰어드는 “부곡면 거문리” 사람들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어쨌던, 습관화된 온천욕 덕분인지 서울 친구들의 모임에 갈때마다 얼굴 등 피부좋다는 소리를 들으며 우쭐한 적도 있었는데 이제 시들해지는 나이에 접하고 보니 그 마저 부질없다. 어제는 친구아들 결혼식에 참석하고 친구들과 늦게까지 미주알 고주알, 신소리, 허튼소리로 밤새우다 유성온천을 찾게 되었다. 인구밀도 높은 수도권과 가깝기 때문인지 아니면 워낙 온천의 효시로 소문난 곳이어서 인지 이 곳 대중탕은 그야말로 대중으로 가득차 평소 한적하게 즐기든 내 지역에서의 온천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그러니 평소처럼 20여분 누워 즐기든 여유는 커녕 앉을 자리조차 찾지 못해 논산훈련병 시절의 샤워 하듯 대강 마치고 나가려다 마침 입구에 앉을 자리가 보여 동작 빠르게 한자리 찾이하여 면도를 하려는 순간이다. 뱃살 넉넉한 중년의 남성이 나의 어깨를 지그시 누르며 ‘어르신! 이곳이 제자리인데요!’ 하는게 아닌가 순간 당황하기도 했지만 그러고 보니 앞에 보이는 세면도구가 이미 놓여 있는 것으로 미루어 그런가 보다하고 일어서려는데 이친구 “어르신! 앉으신 김에 제가 등을 밀어 드리겠습니다.”하면서 때밀이 수건으로 비누칠 슥슥 하더니 목덜미부터 닦아 되는 게 아닌가! 난 평생 내 몸을 때밀이에게 맡긴적이 없는 양서류 개구리 체질의 목욕만을 했다. 온탕 냉탕 왔다갔다 하다가 비누칠 한번으로 끝내는 목욕법이 나의 습관인데 우람한 팔뚝에 문신자국까지 있는 젊으신 이가 내 목덜미부터 등짝을 훑어 내리니 이게 무슨 봉변인가... 불과 2~3분의 시간이었지만 별 생각이 다들었다. 손님이 붐비고 복잡하니까 이렇게 등짝만 밀어주고 돈을 달라고 하는 이 지역에만 있는 내가 정말 노인네처럼 보이니까 어르신한테 좋은 일 한다고 하는건데 내가 오도방정 떠는 것인지, 혹은 효도 못받고 돌아가신 젊으신 아버지 얼굴이 나와 닮기라도 했나 하는 생각 등.... 이 친구 등을 밀면서도 정성스럽게 밀고 '어르신 피부도 좋으십니다!' '자주 오십니까?' '가까운데 사십니까?' 묻는 등 덕담까지 건내며 등을 다 밀고는 “좋은 하루 되십시요!” 하고는 내가 고맙다는 인사할 틈도 없이 대중 속으로 사라지는게 아닌가! 나는 멍한 상태로 잠시 앉아 있다가 내가 정말 어르신이라서 젊으신 이가 내게 친절을 베풀었다고 생각키로 하였는데, 순간 내 팔뚝에 찬 번호표를 보면서 팔뚝까지 밀어줬던 그 젊으신이가 혹시(?)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 했다. “그래! 분명 내 번호표를 봤을테고 나 보다 먼저 나갔으니 어쩌면....”의심의 늪에 그렇게 빠지자 그 친구의 팔뚝 문신도 그렇고 지나치게 친절했던 것도 그렇고 모든 정황이 옷장속의 내 지갑을 노린것만 같다! 혹시, 오늘 “머피의 법칙”이 맞을지도 몰라...나는 후다닥 물을 뒤집어 써고 면도도 하지 않은 채 탈의실로 튀어나왔다. 물론,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이곳의 보안 시스템이 키 없이는 문을 열수 없을 정도로 견고했고 감시카메라와 직원이 많은 것을 보아 공연한 걱정일 뿐, 겸연쩍게 다시 면도 하러 들어가는데 공교롭게 입구에서 이 친구와 또다시 마주쳤다. 영문도 모르는 이 친구! 역시 “어르신 바쁘신 것 같은데 제가 시간을 방해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요! 하는게 아닌가! 난 그제서야 ”정말 고맙습니다“ 인사를 하며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거려 자리를 피하고 말았다. 참으로 나는 졸장부였다! 친절한 사람의 극진한 배려를 의심의 태도로 대응하려 한 나는 천상 필부(匹夫) 아니었든가... “좋은 하루 되십시요!” 젊으신이의 음성이 궛전에 맴도는데 “나는 도대체 뭐야!” 하는 자괴감과 허탈함이 마산으로 내려오는 내내 목뒤와 등짝에서 따끔 거린다. 에그! 젊으신 이가 힘껏 밀어주어 벗겨진 살 껍질은 의심을 품고사는 내 인격과 양심을 씻기 위해 보란듯이 그런 것이리라! 어르신은 고사하고 필부도 못되는 내 옹졸함은 등짝이 화끈 거려도 싸다 싸! 2013.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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