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의 태도

“침묵으로 꾸짖을 수는 없다.!”

돌아온 즉시 군 총무과 감사관실에 전화를 걸었다. 감사관의 직함을 확인한 후 정중하게 내 소개도 했다.

그러고는 잠시 오늘 15:30 부터 16:05 분까지 있었던 민원실에서의 실정을 얘기해야 하니 들어 주시겠느냐고 한껏 품격있는 말로 감사관의 의중을 타진하자, 감사관의 업무영역임을 간파한 담당자는 당연히 “듣겠습니다!”라고 동의하며 전화상의 태도가 신중해졌다.

대화기법에 ‘화가 난 때일수록 평소보다 낮은 목소리로, 천천히 얘기하면 상대방에게 위엄이 선다.’는 말을 기억하며 난 확실히 작은 소리로 또박또박 얘기한 것 같다.

과연 내 얘기를 다 들은 감사관은 더욱 정중히 “좋은 지적을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꼭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는 사무적인 말과 함께 경위(涇渭)를 파악한 후 법무사님께 전화 드리겠습니다. 라는 업무외적으로 과분한 상급자 대우까지 해주는 말에 오늘의 불쾌함이 조금은 보상이라도 받은듯 하다.

어찌 사람이 이리도 간사한지 쯧쯧 ...

내가 00군 민원실에 실거래신고와 등록세납무를 위해 찾아 간 시간은 오후3시쯤으로 조금은 붐비는 시간대였지만 농촌지역의 군 이고 요즘의 경제적 사정이 반영된 탓인지 의외로 민원실은 한산하다.

여직원이 근무하는 1번창구의 민원대로 향하는데 실거래신고를 위해 찾아오는 민원인 대부분은 법무사사무실 젊은사무원 이거나 공인중개사인 경우가 대부분 이어서인지 내가 먼저 밝은 표정으로 인사라도 하려했지만 직원이 나를 쳐다보는 폼새에 공손이나 친절이라곤 보이지 않아 나도 그냥 서류만 내밀었다.

조금이라도 나이로 대접 받겠다는 생각도 없었기에 묻는 말에 자분자분 대답해 줬다. 그런데 담당공무원은 서류를 도로 내밀며 “다시 작성해 오셔야 겠습니다.” 하는 게 아닌가! 그 이유를 물은 즉, 동일한 당사자가 두필지의 토지를 거래하는데 하나의 신고서에 한 필지 첨부로 해야 될 것을 나는 두필지 따로따로 실거래신고를 작성해 왔으니 규정이 안맞다는 것이다. 잠시 당황하기는 했지만 나는 설명했다.

부동산실거래신고는 사실관계에 맞는 것이 중요하고 실제와 일치 되게끔 각 필지당의 가격으로 신고서 작성한 것이 왜 규정에 어긋나는지 모르겠다며 다시한번 검토해 달라고 신고서류를 건냈다 ! 그러면서 한마디 토를 달았다. 서류를 따로 작성해야 한다면 그 근거를 제시해 달라고 ...

담당직원은 내 말에 지극히 화가난 모양이다. 업무 서류철을 거칠게 뒤적뒤적 하더니 다른 사무실에서는 모두 그렇게 작성해 오고 업무원칙도 그렇다며 짜증이 묻은 태도로 나를 응시한다.

20대 후반 앳되어 보이는 부동산실거래 담당 여자공무원은 단정한 외모와는 달리 표정이 몹시 차가왔다. 나는 한마디 더 던지고 싶었지만 일단 침묵을 하고 몇가지 서류를 다시 작성하라하여 그대로 해주자 결국 신청허가서는 발급을 해준다.

그런데 서류를 건내면서 이 공무원은 60세가 된 나를 향해 훈계 하듯, 하대하듯, 아니 정확한 느낌으로는 선생이 학생을 지도하듯 한마디 한다.

“먼데서 왔기 때문에 해주기는 하는데 담당자가 한번 안된다면 안되는 것이고 신청서 고치라면 사무실로 가서 고쳐와야 되는것 아니예요?“라며 잔뜩 불쾌감을 들어내며 신고서류를 내미는 것 아닌가!

그 전에 원칙과 규정을 얘기하며 되니, 안되니 옥신각신 한 것도, 근거가 있니 없니 따졌던 과정도 업무상 있을 수 있는 일이고 그렇게 심하게 감정을 상하게 한 것은 아니었으니

결국 나의 이의를 받아 신청서 2장을 발부해준 게 고맙기도 하여 어떻게 고마움을 표시할까로 고심하던 나는 이 말을 듣는 순간 언뜻 기력을 상실했다!

정말 공무원이 민원인을 상대로 요즘 흔히 말하는 갑,을 관계라서 내게 갑질을 하는 것인지, 젊은사람 특유의 자기할 말 다하는 시대여서 그런 것인지, 똑똑한 20대 후반의 담당공무원은 자기로서는 기분 나쁘다는 표시를 당당히 내게 선포하는 것이다!

그 태도는 마치 ‘나는 젊은 공무원 이고 너는 늙은 민원인 인데 왜 세상물정 모르고 내게 덤비냐'는 투로 들려 참으로 정신이 멍하다.

뭐라 한마디 해야 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을만큼 기가 차고 무력해진 나는 군림 당하듯 그냥 할말을 잃었다. 꾸짖는 고함이라도 치고 싶었지만 공무담당자를 상대로 큰 소리치는 추악한 민원인으로 보일 것 같았다.

나도 한 때 민원실에서 소리 지르는 사람을 “무식한 놈이 행패를 부리는 것이다!”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던 사람이기에 그렇다.

그냥 그 당당한 공무원을 넌저시 쳐다만 보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 “듣고 보니 그 말은 아닌 것 같은데요! 정말 잘못된 신청이면 해주지 말아야 하고, 기왕 담당자 판단으로 일을 해 줬으면 행정재량인 것 아닙니까!” 왜 그렇게 대단해요?“

그러자 즉시 돌아온 답은 싸늘한 한마디 “그냥 가시고 다음부터 조심하세요. 멀리서 오신 것 같아서 해준 거니까!”

애써 태연한 척 돌아서며 별것 아닌일로 여기자고 다짐했다. 무엇보다도 지금 내 일이 급하여 이 당돌한 공무원을 상대하다 시간을 지체하면 등기접수를 그르칠수 있다는 현실적 사정때문에 나는 침묵하며 민원실을 나왔다.

그러나 운전을 하며 돌아오는 동안, '그냥 가시고 다음부터 조심하세요!' 라는 말이 맴돌아  돌팔매라도 당한 것 같은 모욕감으로 심기가 편치 않다.

사실 나는 시간이 없었다. 내 의뢰인에게 법원에 접수시켜 주기로 약속한 시간이 임박하니 마음이 급하기만 한데 이 공무원 말마따나 멀리서 온 사람이라서 해줬다니까 다행으로 생각하면 되는 것 아닐까 라고 나는 나를 위로해 본다.

또 한편으로는 화가 치밈에도 화를 낼 기력이 없고 평소 화끈하게 내 뱉던 조리있는 말을 입속에서만 웅얼거리며 표현하지 못한 순발력 현저히 떨어진 나를 본 것이다.

그래! 이제 이 나이엔 사무실에 찾아오는 민원인만 대하고 현장에 직접 뛰어 다니는 일은 젊은 사무장 맡기는 게 맞는가 보다! 늙음의 표시가 무기력. 무표정. 무관심이라더니 과연...

그러다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 기력이 회복되자 내 본연의 모습이 나를 충동한다. 법정스님의 글 중 “묵언이 나를 깨닫게 할 수는 있지만 침묵으로 남을 꾸짖을 수는 없다.!”고 한 말이 지금의 상황을 설명하는 듯하다.

그래! 명색이 법을 준수하는 법무사이고 세금내고 살아가는 당당한 시민인데, 또 한때는 정의감과 사명감으로 “innovation" 이란 말을 가장 즐겼던 기백있는 나였는데 까짓 어린 공무원에게 들은 훈계성 나무람에 내가 녹초가 되다니...

더구나 안되는 일 해 달라고 무리 한 것도 아니고 그 공무원이 한 장으로 발부 할수 있는 실거래신고서를 두장으로 발부 해주는 수고 조금 끼친것 뿐인데 어른인 내가 버릇없는 젊은이에게 그런 소리 듣고 참다니...

나에 대한 자문자답은 사무실로 돌아오는 동안 끊임없이 반복되며 체념적 나를 질타한다. 그래! 나이가 많다는 것이 결코 권위도 아니고, 도움도 되지 않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2013. 5. 15.  


by 마음 | 2013/05/15 10:17 | 隨想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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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강정우 at 2013/05/16 16:50
충분히 공감이 가는 내용입니다.
많은 관청에서 공무원들을 자리 배치하면서 민원창구에는 노련하고 숙련된 공무원들을 앉혀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하지 않아
자신이 잘못알고 있는 내용을 강요하는 사례가 종종있습디다.
되물어보면 다른 곳에서는 모두 그렇게 해오는데요! 라는 말 가끔씩 듣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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