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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흐린 날의 가출> 요즘의 젊은이들에게 어른이랍시고 훈계의 말을 함부로 했다가 봉변당하는 모습이 심심찮게 뉴스의 가십거리가 되는 이유는 세대차이의 골은 깊지만 세대간의 이해와 배려가 부족한 탓이리라. 아날로그 시대를 산 구세대와, 디지털 문명에 익숙해진 신세대 !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교육으로 어른에 대한 예절을 기본덕목으로 배웠고 장유유서(長幼有序)를 당연시하며 활자체인 독서로 교양을 쌓은 세대와, 태어날 때부터 T.V.프로그램으로 놀이문화를 접하고 동화 보다 만화영화에 익숙해진 세대 SNS,와 인터넷으로 지식을 습득한 세대의 차이라고나 할까! 하긴 뉴스에서 접할 것도 없이 세대 간의 갈등과 분쟁은 언제부터인가 우리집안에서도 심심찮게 일어나는 일이 되었다. 바로 아내와 딸이다. 장로 딸로서 엄격한 규제 속에 성장한 아내는 더구나 교사로서 평생을 살았으니 당연히 구세대의 표본이고 외국에서 살다온 젊은 딸은 사고방식부터 자유 분방하고 거침없는 스타일인데 이 둘의 간극이 아무리 DNA가 같은 모녀지간 이라해도 어떻게 쉽게 융합이 되겠는가! 재작년 오스틴에서 겪었던 아내와 큰딸과의 분쟁에서 이미 엄마와 딸임에도 상호간의 이해가 녹록치 않음을 경험했는데 대학생활, 유학생활로 전형적 SNS세대의 아이콘이 된 둘째딸과 아내사이에는 지극히 사소한 일상에서 예상치 않은 전선이 형성되어 큰 구름, 작은 구름이 부딪치는 뇌성이 발생하고 그 벼락이 내게 떨어진다. 아내가 작은 구름이긴 하지만 나마저 전선에 합류하면 어쩌면 돌풍전선이 형성될지도 몰라 나는 일치감치 한 발짝 물러서기로 작정 했고 그렇게 행동하지만 문제는 이런 무관심이 근본 해결책이 될 것 같지도 않음에 나의 고민이 깊다. 객관자 방관자 노릇은 더 높은 차원의 내공이 필요한데 나 역시 아날로그 시대의 아류 아닌가! 아내는 딸의 버릇없음과 조금 늦은 귀가에도 참지 못하고 훈계를 하려하여 내가 말리려 해도 아내의 고집은‘내가 돈들이고 저들 공부시켰는데’ 이정도 잔소리도 못하느냐며 교육자 집안으로서의 당연함을 앞세우면, 말인즉 틀린 말은 아니니, 설득력도 자존감도 없이 불뚝성만 있는 나는 처마밑에서 눈만 멀뚱멀뚱 굴리는 비 맞은 장닭처럼 사태가 진정되기를 엉거주춤 기다려야 하니 그 모호함 또한 고역이다. 가족 사이엔 논리와 명분이 옳다고 하여 꼭 말을 해야 할 필요는 없고,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도 객관적이지 못하다는 것은 아내와 딸사이 분쟁의 확산을 보고 알았다. 시간이 흘러가면 자연 알게 될 일이련만 현실에서 세상을 보는 가치관이 틀리고, 서로에 대한 감정 표현의 방법이 다른데 분쟁의 원인이 있다. 그 시작은 우선 말이다. 딸은 간섭대신 관용과 배려로 지켜봐 달라는 희망을 피력하지만 아내는 전혀 동의하기 어려운 딸의 태도에 설득을 생략하고 직설적으로 잘못을 지적한다. 특히 평생 선생님으로 살아온 아내의 약점은 말투가 늘 지시적 명령조라는 점이다. 요즘처럼의 교육적 환경이었다면 선생님도 학생들에게 존댓말을 썼을터이나 70년대 초 콩나물 시루같은 교실에서부터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노릇 30년 넘게한 아내의 입엔 늘 지시와 명령, 나무람의 말투가 칭찬과 격려 존중의 말보다 많음이 사실인데, 결혼초창기 내가 아내와 다투었던 일중의 하나도 아내의 말 습관이었다. 남편인 나를 5학년 학생 다루듯, 존칭은 하면서도 이래라 저래라가 나를 거슬리게 하여 어줍짢은 기분일때는 한번씩 나의 자존감이 폭발하였고. 서울에서 친구들과 만나 한잔씩 걸치다가도 경상도 여자말투 귀엽다는 말이라도 나오면 목에 힘을주고는 귀여운지 재미있는지 한번 살아봐라! 마누라고 처제들 모두 경상도 선생이다 보니 여자다운 고운말씨 하나도 없고 왼통 투박하게 하라! 하지마라!는 지시밖에 모른다고 억하심정으로 울분을 토할 때도 있었다. 몇 년간 정과 어투의 차이에 익숙해지고 융합이 될 때까지 본성이 착한 아내는 자신도 잘 모르는 지시적 말투로 인해 불도깨비 방망이로 뒤통수 맞은 듯 어리둥절하여 나를 쳐다보며 눈물을 흘린때도 그 무렵이었다. 오래전에 다 지나간 이런 얘기가 새삼스레 복창되는 이유는 딸을 나무라는 아내의 말투에서 딸이 느낄 거부감에 대한 동질적 연민이 있기 때문이다. 대도시에서의 직장생활이 싫증난다며 갑작스런 심경변화로 작년부터 인근도시로 근무지를 옮겨 집에서 함께 지내게 된 둘째 딸은 실로 15년 넘게 객지생활, 유학생활만 하다보니 그동안 형성된 생활방식과 성격이 아내의 맘에 들리가 없다. 그러니 잔소리가 나오고 딸 역시 엄마의 말투가 직장 상사보다 더 엄하게 지시와 명령으로만 일관한다며 드디어 얽히고 설킨 시한 폭탄이 터진 것이다. 딸은 이미 독립적 인격체로서 순치의 대상이 아님을 엄마에게 선포까지 했을 줄이야. 어제 토요등산으로 늦은시간에 집에 돌아오니 평소엔 품안의 자식인줄 알았던 딸이 한번 도발하기 시작하니 감당이 안된 아내는 저 애가 왜 저렇게 변했나며 나를 붙잡고 호소하고 딸은 딸대로 눈물 그렁그렁, 봉사활동 가서 조금 늦은것 뿐인데 엄마가 너무하다며 울고, 졸지에 세대간 분쟁사건의 재판관 된 내가 양쪽의 항변을 듣고 보니 발단은 역시 아내의 말투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니 아내에게는 당신의 말 습관이 변해야 한다고 설득하고 딸에게는 나도 평생 엄마의 말투를 지금까지 견디고 살아왔고 엄마가 너희들 지극정성으로 키웠는데 이제와서 어떻게 엄마의 말투가 금방 바뀌겠느냐? 서서히 변할테니 그동안 네가 익숙해 지도록 하라고 나무라며 직권 강제조정으로 끝내니 우선은 봉합이 된듯한데 상황은 지뢰밭이다. 큰딸은 결혼도 했고 그나마 이해심도 많은편이었음에도 미국에서 부딪힌 아내와의 분쟁에서 두어달 냉각기를 거쳐 해결된 선례가 있는데, 큰딸보다 훨씬 까탈스럽고 자기주장이 강한 둘째딸은 언제쯤 엄마를 받아들일지 ... 당분간 하루하루 화약고 중동에 근무하는 UN파견 평화군이 된 심정으로 살아야겠지만 그래도 나는 안다. 폭풍이 지나간 뒤의 하늘이 더 맑고 더 푸르듯, 이 고비 넘긴후의 아내와 딸의 사이가 꼭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가와 사와 만사와 (家和萬事成) 그러나 내 기대와는 달리 아내의 간섭과 통제가 싫다는 둘째 딸이 얼마 전, 한 시간 거리의 회사 앞 원룸으로 짐을 옮겼다. 그 이후 딸이 일주일에 한 번씩 오면 아내는 반찬과 간식 먹거리를 분잡을 떨며 준비하고, 딸은 수다를 떨다가 자기방에 가서 곰인형을 안고 잔다. 오히려 함께 있을 때 보다 훨씬 아내와 딸 사이가 좋아 다행이긴 하지만 반찬담은 가방들고 샐쭉 웃으며 살레살레 손 흔들고 떠나는 딸의 뒷모습을 보니 괜스레 눈물이 난다. 내가 늙었나 보다! <어느 흐린 날의 가출>
아내와 딸의 말다툼을 듣다보니 견딜 수 없을 만큼 화는 나는데 누구에게 소리를 질러야 하나! 저 어른의 이해 없음과 아이의 버릇없음이 서로를 향해 날카로움을 퍼붓는데 찔리고 뜯기는 것은 내 마음이다.
귀의 인내가 한계에 이르면 입은 버럭 소리를 질러야 하는데 내 고함으로 인해 상처입을 여심(女心)을 아는지라 조용히 사라질 건 나라고 자책하며 모자를 쓰고 집을 나선다.
이 집구석!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 다짐 다짐하며 행자승 출가하듯 나서기는 했지만 막상, 갈 곳이 마뜩찮다. 산도 멀고, 절도 멀고, 마음 붙일 친구도 없다.
방향없이 터벅터벅 걷다 어둠의 너럭바위 찾아 걸터앉고는 이대로 하염없이 머무르고 싶은데 시간이 흘러 마음이 누그러지니, 한기에 지친 몸이 집으로 가자! 이대로 잠들면 지 몸이 상한다고 협상을 한다.
그래, 다투던 두 사람도 가장의 가출에 어리둥절했을 테지! 미안하고 부끄러워 잠들지도 못했을 테지! 편하게 잠 잘 수 있는 집으로 가자! 몸 상하면 나만 손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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