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혼중매

<중매 소개비>

3년전에 이혼하고 홀로가 된 6촌 동생이 찾아왔다. 말이 동생이지 나이 차이는 스무살 가까이다. 
친지들 결혼할 때와 벌초때 한번씩 만난 외에는 별 교류도 없었는데 곶감 상자 달랑 들고 예고도 없이 방문한 데는 꼭 할 말이 있으리라 짐작하고, 주시하며 귀 기우리기로 하였는데 말꼬리를 자주 흘리는 소극적인 동생의 답답한 태도에 할 수 없이 몇년 보관만 하든 양주를 한잔 부어주며 분위를 띄웠다. 두어 잔 양주가 들어가자 준비라도 한듯
우리 집안은 별로 잘난 것도 없는데 왜 그렇게 양반 가문임을 내 세우는지 이해를 못하겠다는 서두를 꺼내며 주절주절
말을 이어간다.

이혼한 전처와 살아온 내력이 자신의 과실도 많았지만 집안의 반대로 결혼초부터 삐걱거렸던 이유가 더 컸었다면서 마치 집안의 장손인 내게 책임이라도 추궁하는 듯 말을 하여
"됐다 그만 가봐라!" 라며 문밖으로 등 떠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술의 힘인지, 모처럼 토하는 넋두리여서 인지 떠드는 동생의 그늘졌던 얼굴에 생기가 도는 듯 하여 나는 애꿎은 양주잔만 손가락으로 튕기며 끝까지 인내했다.
그러다 이혼의 아픔은 모두 잊었으니 이제 형수님께서 좋은 재혼 중신이나 해달라며 싱긋 웃는 동생의 모습에는 왠지 40이 다된 중년의 외로움이 묻어있어 연민과 안쓰러움이 생긴다.

그렇게 몇 달이 흐른 후, 근무 시간중 아내가 굿 뉴스라며 전화를 걸어온 사연은

우연찮게 동창과 얘기하는 중 자신이 잘 아는 은퇴한 선생님의 막내동생이 6년 전부터 혼자 사는데 요즘에 와서 노후 걱정도 되고 딸아이 하나를 키우기에 자기의 유치원 보모 노릇만으로는 형편이 너무 어려워 딸 공부시키는데 지장 없을만큼의 재산있는 남자만 만나면 재혼을 하고 싶다는 청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일이 어디 맘대로 되는가! 돈좀 있으면 남자 나이가 너무 많고, 조금 젊거나 생활능력 있는 남자는 딸아이 딸린 이혼녀는 상대가 아니라 한다면서 한숨을 쉬는데, 마침 6촌 동생이 원하는 재혼 조건과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지는 것 같으니 빨리 연락을 취하자는 얘기였다.

동생은 군 제대후 15년 넘게 중견기업에 근무하여 연봉도 괜찮고 처음부터 초혼의 여자와 결혼 할 생각은 없고 딸 아이 하나정도 키우는 이혼녀를 소개해 달라고 했으니 그야 말로 연분이 되는 것이다. 더구나 나이도 2살 차이니 금상첨화 아닌가!

그렇게 서로의 조건이 대강 맞는 것 같아 망서릴 것 없이 동생에게 소개받은 이혼녀 연락처를 주며 한 번 만나 얘기해 보라고 통보할 때만 해도, 중매라는 생각 보다 동생의 하소연을 들은 입장에서 의무 비슷한 책임감에서였다.

그런데 소개한지 보름정도 밖에 안됐는데 동생과 이혼녀가 우리집에 인사를 오겠다는 것이다.

당황한 나와 아내는 먼저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부터 만나 뵙고 우리에게는 천천히 오는게 좋겠다며 한사코 말렸는데도 금요일 오후 7시에 벌써 약속을 했으니 그 때 찾아뵙겠다는 들뜬 목소리를 전하니 엉거주춤 승낙을 할 수밖에...

큼지막한 케이크를 들고 찾아 온 동생과 이혼녀는 분위기가 몇 년을 함께한 부부처럼 보였다. 소개받은 다음 날부터 주일 내내 퇴근 후 새벽 2시까지 만나서 얘기를 나눠보니 그렇게 재미있고 서로 통하는 게 많은 사람임을 알게 되었는데 이런 감정은 젊었을 때도 몰랐던 황홀한 감정이고 행운이어서 내게 고마움을 먼저 전하려는게 찾아온 이유란다.

초등학교 3학년인 이혼녀의 딸과도 벌써 두번이나 만나 용돈도 주고 식사도 했다며 오늘도 저녁을 함께 하려고 차안에서 기다리고 있어 빨리 가겠다며 준비한 차가 식기도 전에 일어선다.

정신을 못 차릴만큼 동생이 떠들다 가버린 뒤 우리 부부는 어리둥절하기도 하고 잘 되기는 한 것 같은데 뭔가 너무 빠르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묘한 기분이기도 하고 마치 지난 유럽 여행 때  무제한 고속도로 아우토반에서 급작스런 차량 고장으로 서 있을 때의 아슬아슬한 느낌 같기도 했고 요즘 젊은 세대는 망서림이 없다더니 이런 정도인가 싶다.

하긴 외로움에 찌든 이혼남 이혼녀는 “마음 시린 사람! 정에 굶주린 사람!”이니 조건 맞고 첫눈에 좋으면 뜸들일 시간조차 낭비할 필요는 없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정리했다.

또 한편으로 동생이 자신의 부모님보다 나를 먼저 찾아와서 이혼녀 눈도장을 찍게하고 재혼에 대한 묵시적 동의를 구하는 이유가 따로 있음도 나는 안다. 나와는 당숙인 동생의 부모님은 동생의 말마따나 얼마나 집안 따지고 양반 따지는 고루한 옛사람인지, 우선은 장손인 내가 괜찮다고 해야 통과되는 것을 동생도 잘 알기 때문이리라!

동생이 군 제대무렵에 만나 짧은 교제로 첫 결혼 상대였던 전처는 고향의 이웃마을 박이장 손녀였다. 어쩌다 만나 얘기하다보니 아버지의 고향이 같은 곳이라는 공통점으로 더구나 ‘같은면 같은리’ 까지 이어지니 둘은 짧은 순간에 좋은 관계로 발전하여 결혼까지 약속하고 얼마후에 고향을 찾게 되었는데

이 때 동생은 부모님으로부터 결혼 반대에 부딪힐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하였는데, 두 사람의 결혼은 절대 안된다는 벼락 통보를 받고, 아연실색할 정도로 충격받은 동생은 오기로 혼인신고부터 강행하여 당숙을 졸도하게 만들고 고향집에는 몇 년동안 발길도 끊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결국 당숙 내외는 손주를 핑계로 자식에게 먼저 찾아가서 어찌어찌 무마는 되었다고 들었지만, 그 후 오히려 며느리가 당숙 내외를 촌 사람 무지렁이 취급을 하며 박대를 하는 바람에 파탄은 끊임없이 확산 되고 결국 동생은 아내의 도발적 태도를 참다못해 이혼이라는 파국을 맞았음이 동생의 초혼사인 것이다.
이쯤되면 동생의 결혼 과정에 당숙과 집안에서 처음부터 반대할 수 밖에 없었던 이웃마을 박이장과 우리 할아버지와의 관계를 설명하지않을 수 없다.

60년대 당시 태백산 준령 깊은산골인 고향 땅의 절반정도는 하늘만 보고 농사짓는 천수답이었다.

아랫마을인 우리 큰집과 윗마을인 박이장과는 해마다 천둥지기 논물 때문에 싸움이 잦았다. 특히 가뭄이라도 드는 해는 그 싸움이 마을싸움으로 이어지기도 했는데

산 중턱에 박이장 논이 있고 그 아래쪽에 우리 논이 있어 박이장 논에 물이 채워지면 물꼬를 터 주어야 아랫논은 농사를 잘 지을 수밖에 없는 환경으로 상부상조하는 두렛일로 자연적, 인정적 순리임을 모를리 없는 박 이장이 한번씩 자기 논에 물을 채워도 물꼬를 아랫논에 터 주지 않고 이장 지위를 내세워 아랫논 대신 자기 친척의 다른 논으로 물꼬를 터는 바람에 싸움이 벌어졌다고 늘 할아버지로부터 들었던 얘기다.

박이장 말이 나오는 날은 할아버지는 어김없이 술을 드셨다. 그리고 취중에 하시는 말씀에는 평소 양반의 품격과는 달리 '놈'자를 달고 시작 하신다. "그 놈이 일제 강점기에는 상놈!으로 살았는데 해방후 몇 년 읍내에 나가 소장사로 돈푼이나 벌어 어쩌다 윗논을 차지하는 바람에 분란이란 분란은 다 일으켰다!"면서 이장질 끝내고 도시로 이사 나갈 때까지 마을 훈장인 할아버지 근방에는 얼씬조차 못하게 했다는 것이었다.

그 원성의 대상이었던 집안의 손녀 딸과 동생이 결혼을 하겠다니 당숙 내외는 조상님이 노발대발 할 것이라 안된다며 극구 반대를 했던 것이었지만

그 당시는 이미 할아버지도 박이장도 돌아가신지 꽤 오랜세월 이어서 당사자들이야 아무런 영문도 모르는데 집안 들먹이며 반대를 하니 동생은 동생대로 얼마나 힘든 결혼이었는지는 짐작이 간다.

셰익스피어의 불후의 명작 “로미오과 줄리엣”이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원수진 두 가문의 자녀가 운명적 사랑으로나마 슬픈 감동을 남긴 것은 결국 죽음으로 영원을 함께 했기에 가능했지만 현실의 동생과 박이장의 손녀는 소설속의 주인공이 아니었기에 그들의 결혼생활은 순탄치 못했고 결국 10년 남짓 살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많이 주고 헤어졌던 것이다.

이혼 후 3년동안의 후유증은 대단히 심했다고 들었다. 자녀 문제로 우울증세에 시달리는 동생이 자살 충동으로 혼자 있지를 못해 가족들이 모두 동원되었던 일, 체질에 맞지 않던 술을 폭음하는 바람에 몸이 축나 간병했던 일, 그러다 요즘에야 상처가 아물었는지 새벽에 자전거를 타고 직장에 출근하며 몸과 마음을 추스려 겨우 안정된 생활이 유지되다가 우리 집에도 찾아 오고 재혼을 하겠다며 중신을 부탁까지 했으니 지금 불혹으로 접어든 동생은 인생 이모작을 불같은 열정으로 자신을 태우는 것이리라!

혼사 결정이야 이제 저들이 알아서 하는 것이련만, 재혼은 초혼 보다 더 많은 참을성과 상호의 신뢰가 필요함을, 재혼후에 따를 자녀들의 관계와 재산관계의 어려움은 초혼보다 배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므로 더욱 신중히 결정해야 될 일임을 동생은 알기나 하는 것일까!  
그러나 우리의 그런 걱정도 잠시,
아내에게 이혼녀를 중매했던 친구의 전화는 우리를 더 어안이 없게 만들었다.

“자신이 소개해 줘서 요즘 잘 나가는 두 사람에게 받아야 할 중매 수수료는 재혼이기 때문에 여자는 안 내고 남자측에서 모두 부담해야 한다며 기본이 삼백만원 정도이니 알아서 해!”라는 얘기를 목소리 하나 변하지 않고 일방적 통보를 한다.

재혼중매 수수료가 삼백만원(?), 여자측에서는 안내고 남자만 물어야 한다(?)는, 듣도, 보도 못한 얘기를 거침없이, 아니 너무 당연한 듯이 말하는 동창이라는 저 여자는 '뚜마담' 뺨치는 무서운 '뚜쟁이 할망구'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 고개가 쩔레쩔레 흔들린다.
중매쟁이에게 인사하는 것이야 미풍양속으로 보나 경우로 보나 당연 하지만, 여자측의 부탁으로 중신을 했으면 여자측에서 중매비를 받을 일이지, 여자에게 경제적 여유가 없다고 재혼중매는 남자만 부담해야 한다는 저 할망구의 간교함!

그나저나 지금은 양은냄비처럼 뜨거운 저 동생녀석 혹시라도 맘이 변해 “사네 마네” 하는 날이면 우린 또 어쩌란 말인가!

어휴 중매가 쉬운 게 아닌데.....

2013. 11. 15.









by 마음 | 2013/11/20 11:31 | 隨想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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