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의 사색(아름다운 늙음)

이순(耳順)의 日記

늙음이란 균형 감각을 잃는 것이 아닐까!
60세의 나이를 이순(耳順)이라 하는 이유는 불쾌하고 언짢은 세상 얘기를, 들어도 못들은 척 알아도 모르는 척 하는 겸손으로 나와 생각이 다른 상대방에 대한 감정적 대응을 피하라는 뜻이 아니겠는가!

며칠 전 문상객으로서 서울 목동의 병원에서 친구들과 하룻밤을 지새웠다. 별세하신 분은 옛날 자취집 아저씨로 친구의 장인이기도 해서 장지가 대전 현충원 국립묘지로 정해졌다는 얘기가 어쩌다 정치 얘기로 변질되자, 육,이오, 월남전 등 참전 용사들에게만 국립묘지가 허용되는데 대한 반감을 가진 친구 한명의 좌편향성 발언이 빌미가 되어 각자의 주관적 사고(思考)에 치우친 친구들도 애꿎게 좌,우로 나뉘어 졌고 옳고 그름을 떠나 이놈 저놈 우편향 좌편향 정치인들 싸잡아 성토하는 난장이 벌어지니 춤추는 건 술잔과 젓가락뿐이다.

젊었을 때부터의 40년 지기라서 긴장이 풀리고 감정의 경계가 허물어 졌음인가 양보 없이 다들 육두문자로 거침없는 설전을 벌이는 것을 보니, 그 왕성한 언변은 지식도 열정도 아닌 편견과 아집의 다름 아니다. 우리는 이렇게 취기를 변명삼아 학식과 상식의 균형을 잃고 정치적 여(與)와 야(野)가 되었으니 자아도취적 독선으로 살아온 세월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나이가 들면서 오히려 자기집착에 강하고 상황을 파악하는 지적 균형을 잃는 것이 어디 정신뿐이랴!

내가 새벽에 산에 올라 하는 운동 중에 한 다리를 들고 뒤로 꺾어 올려 대퇴부와 허리 푸는 동작이 있다. 요가에서 균형잡힌 몸매를 만드는 동작과 흡사하고 마치 피겨에서 김연아가 회전을 위해 한 다리를 뒤로 잡고 도는 동작과 같은데

이는 결국 몸의 균형감각을 익히는 연습이고 몸의 밸런스를 유지하는 체조와 같다. 그렇게 스스로 익혀 수십 년 해오든 이 동작이 요즈음 제대로 서지 못하고 비틀 거리다가 곧 잘 넘어질 뻔 하는데 나의 신체적 균형감각에 이상이 생긴 듯하다. 별 이유도 없다. 그냥 내 몸이 그만큼 둔해 졌다는 뜻이고, 반사신경이 느려진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즐기던 줄넘기 3단 뛰기를 수십 회 연속하기를 20대 후반까지 하였는데 어느 날부터 갑자기 3단 뛰기가 안 되는 순간을 맞이했을 때 느꼈던 씁쓸한 기분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균형을 잃는 다는 것!

정신이나 몸이나 세월의 연륜 앞에 별수 없음이겠지만, 내 주장만이 옳은 것으로 착각하고, 내 육신조차 아직 청년의 몸인 줄로 착각하며 허투루 지내온 현실에서 불현듯 나의 노쇠를 인정해야 하니 갑자기쓸쓸해 진다. 주변을 둘러보니 부지불식간에 변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닌 듯하다.

금번 명절에 만난 누님의 얼굴을 보고도 마음이 짠해졌다. 그 미모, 그 곱든 얼굴이 어쩌다 저렇게 수심으로 채워진 옹색한 모습으로 변했는가!

10년 넘게 혼자 살아오면서 부딪힌 세월의 파고가 얼마나 척박하고 빈한했는지를 얼굴은 고스란히 웅변하고 있다.
빅톨 위고는 “주름살도 품위가 갖춰지면 존경과 사랑을 받는다”고 했는데 이혼 후 바뀐 환경과 경제적 여력이 따라주지 못하니 품위와 여유로움, 아름다움이 모두 사라진 누님 얼굴인 것이다.

온 가족이 이혼만은 하지 말라고 만류할 때 왜 좀 더 깊은 생각을 못했을까를 안타깝게 여기지만 그 때의 사정은 누님만이 아실 테니 지금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서글픈 내색도 못하고 누님이 건네주는 털실로 짠 목도리를 받고서 돌아오는 중에 안쓰러운 눈물만 흐른다.

아! 다들 이렇게 변하고 늙는구나!

본인 스스로는 늙음을 인정 하고싶지 않지만 결국 얼굴은 세월을 거스를 수가 없음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작가 “소노 아야꼬”의 ‘아름답게 늙는 지혜“에서

나이를 내세워 대우 받으려 하지 말고,

대화를 할 때에도 ‘내가 옛날에 무엇이었다!’라는 말을 하기보다 잔잔한 미소로 듣기를 즐겨하며 특히 젊은이에게는 양보하라고 하였다. 노인은 어차피 고독하고 외로움을 타는 사람인데 스스로 잘난 체 말것이며 건망증이나 생활의 불편함을 일일이 드러내지도 말고, 언제 죽음을 맞이하여도 친숙해 질 준비를 할 줄 알아야 아름답게 늙는 지혜라고 하였는데 ...

나는 어떤가! 지금까지는 내가 늙었다는 사실을 인지해 본적이 없으니 그런 생각인들 할 리가 없었다. 그러나 어쩌랴! 지금부터라도 변해야 한다. 내 존재의 미약함을 인정하여 스스로 이순(耳順)으로 순응하고 누구에게라도 편견 없는 균형 감각으로 날 서고 까칠한 말은 삼가 해야겠다.

무엇보다도 가장 가까운 가족들에게 상처준 말이나 행동이 있으면 용서를 구해야 하는데, 3년 전 심장마비로 급작스레 하늘나라로 간 막내에게는 정말 형으로서 더 따뜻하게 대해주지 못한 아픔이 절절하다. 결혼하기 전까지의 내 생활에서 잔심부름과 궂은일은 군말없이 도맡아 하던 동생이었는데, 40대 중반에 사업 실패로 손 벌릴 때 나무라기만 하고 도와주지 못했음을, 이제야 통곡으로 후회하지만 무슨 소용 있는가! 동생이 이해하든 않든 내 경제사정이 버거워서 도와줄 수 없었다는 설명이라도 하고 싶지만 영혼의 불이 된 동생에게 말을 할 수도, 용서를 구할 기회조차 없음에 가슴이 애인다.

지금 부터라도 먼저 양보하고, 조금 손해 보는 생활로 더 이상 아픔과 후회를 남기지 않아야 한다. 영혼에 대한 사색이 필요한 나이다.
올 해는 청마의 기가 넘치는 갑오년 말띠이다 그렇지만, 날뛰는 말 보다 더 감각적인 동물로서 황량한 고비 사막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길만을 가는 쌍봉의 낙타처럼 귀가 순하게 살아야겠다.


<이순(耳順)日記>

 

교만은 바람이고, 겸손이 바위라면

고개 숙인 바위로 살아야 하는데

바람만이 수시로 얼굴을 스친다.

 

웃음은 가볍고, ()는 무겁다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눈물은 왜 흐르는가!

청춘은 바람처럼 지나갔고

허송세월은 어느 듯 이순(耳順)이 되었다.

 

이순(耳順)日記를 쓰면

바위를 싣고도 가라앉지 않을 배가 되리라.

비가와도 가라앉지 않을 배가 되리라

가벼운 바람을 안고 달리는 배가 되리라!



2014. 2. 11.


by 마음 | 2014/02/11 15:41 | 隨想 | 트랙백 | 덧글(0)
트랙백 주소 : http://yskim.egloos.com/tb/2132352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