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어린 영혼, 어찌할꼬!)

<물은 물이고, 돌은 돌이다.>

이 말은 내 40년 지기 친구들의 별칭으로

이름 가운데 석(石, 錫)자가 들어가는 친구들은 돌이라 불렀고

수(水, 洙,)가 들어가는 친구들은 물이라 부르면서 우리끼리 시시덕거리다 보니 환갑이 넘은 지금도 ‘야! 돌아’ ‘야! 물아’ 로 호칭하며 만나면 즐겁다.

그런데 우연인가!

친구들과 이런 호칭으로 40년 넘게 지내고 보니

과연 물은 물이고, 돌은 돌이 되었다.

무슨, 불가(佛家) 선사(禪師)의 법언이나 오도송 같은 말로 들리지만

물로 불리어 진 친구는 물처럼 살아왔고, 돌로 불리어 진 친구는 돌처럼 살아 왔다는 뜻이다.

물의 친구는 물의 성분처럼 유하고, 뒤가 없고, 물 흐르듯 그냥 그냥 사는데

돌의 친구는 돌의 성분처럼 야무지고 암팡맞게, 또는 모나게 사는 것을 문득 깨달은 것이다.

물론, 이러한 생각은 나의 즉흥적 느낌일 뿐 일반적 사실은 아닐 것이다. 설사 이 직관이 옳다 하여도 경험적으로 당연히 내 친구들에게만 한정된 일일 것이다!

그 예로 내가 돌(永石)이라도 분별력이 모자란 숙맥 같은 돌이라서 암팡지지도, 별난 것도 없이 무덤덤하게 살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직관은 개념에 선행한다!”고 보면 참으로 신기하고 희한하다. 불리어진 이름에 따라서 그 친구의 인생역정과 성격이 그렇게 형성된 것만 같다.

마치 성명학에서 분류하는 인간의 생사화복이 불리어진 이름에 따라 그대로 되는 것처럼,
단언 할 수는 없지만 대체적으로는 그렇게 인정할 만한 결과가 주변의 친구들에게 나타나고 있음에 놀랍기만 하다.

혹시 착각인 듯 하여 다시금 친구들의 면면을 살펴보니 역시 불리어진 이름대로 물은 물이고 돌은 돌이니 분명 나의 착각은 착각이 아닐 수도 있다.

잘 살고 못 살고의 문제는 아니다. 인성(人性)이 서로를 불러 준대로 형성된 것 같다는 현실이 놀랍다는 것이다.

김춘수 시인의 시(詩)

“꽃”의 구절에서 나오듯

“그의 이름을 꽃 이라 부르기 전에는 하나의 몸짓에 불과했다가

내가 그의 이름을 꽃이라 불러 주니 내게 다가와 꽃이 된 것처럼“

인식에 대한 의미 부여를 하게 되면 부르기에 따라 관념화 되는 것이 사회적 인간인 듯하다.

그렇다고 내가 친구를 돌로 불렀기에 그 친구가 돌처럼 살아 왔고

물 로 불렀기에 물처럼 살아 온 것은 아니지만

사람은 부르기에 따라 성격이 관념적으로 형성되어 존재의 본질도 그 호칭대로 의미가 부여되는 것이라면 우리는 관념과 전혀 다른 호칭을 함부로 부를 수는 없는 것이다.

“선장”이라는 호칭의 사회적 관념은 파도와의 사투에서 다른 사람의 생명을 담보하는 무한 책임과 의무의 대명사이다. 상선이든 여객선이든 하물며 어선일지라도 선장은 바다 위 선박에서는 절대적 권위의 존재여서

배와 운명을 같이 한다는 게 우리의 인식이었는데 이제 우리의 관념은 깨어져야 한다! 그 혼돈의 제공자가 바로 세월호 선장이다.

우리의 인식과 너무도 다른 이 비겁한 인간을 선장이라 부를 수는 없다. 그는 선장이 아니라 남의 생명은 아랑곳 하지 않는 “벌레”라고 호칭해야 한다! 아니 ‘버러지’라고 천박하게 호칭해야 한다. 야만적 인간이고, 인간으로서 자격 없는 한갓 버러지에 불과하다.

자기 목숨이 위험하다고 느낄 순간! 선장이 아닐지라도 최소한 경험적 인간이라면 다른 생명의 구제를 위한 순간의 여분(골든타임)이 있었음에도 어떻게 버러지 같은 제 목숨 건지겠다고 그 어린 수백 명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며 저들만의 안전 통로로 탈출을 감행할 수가 있었단 말인가!

가족이 아니고 혈육이 아니라고 어찌 남의 생명에 그토록 무심했단 말인고...

용서받지 못할 그 버러지 욕을 아무리 해도 아픈 가슴은 먹먹하기만 하고, 눈시울은 자꾸 붉어진다.

아! 꽃 보다 고운 학생들의 어진 혼을 어찌 달랠 것인가! 미안하고 미안한 마음! 나부터 그 생명에 대한 죄인이다. 어른으로서 죄인이고 우리나라 국민으로서 잘못 살아 온 죄인이다. 슬프다는 말로 표현할 수없는 이 고통을 어찌할꼬! 살려는 몸부림으로 손가락 마디마디 골절된 수백 명 그 “어린 영혼”을 어찌할꼬...

<첨언>
이 글은 세월호의 안타까운 현실을 보는 개인의 슬픔과 분노를 삭이기 위한 방편일 뿐, 누구를 질타하기 위한 넘진소리가 아닙니다. 누가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사유 하지도, 성찰 하지도 않고 인내하며 그냥 앉아 있기가 너무 힘듭니다. 공자 말씀에 '말 할수 없다면 알고 있는 것이 아니다'고 하였지만 알려지는 무책임한 공직자, 도덕심이라곤 말라버린 인간들의 행태는 아연실색 할 수밖에 없어, 아예 말 자체를 버리고 묵언수행 이라도 하는 수도승이라면 좋겠습니다.  

<넘진소리: 주제넘게 건방진 소리>
                         
2014. 4. 24.


by 마음 | 2014/04/28 12:23 | 隨想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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