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삼종지의

인간관계론

출근을 위해 지하주차장에서 차를 가지고 올라오는데 주차장 입구에 흰색 경차 한 대가 차를 앞뒤로 움직이며 내 진로를 가로막고 방향을 정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다.

주변의 이동공간이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운전이 서툰 초보자인 듯하여 잠시 기다려 주었음에 이번엔 아예 차를 세워 버리고 한참을 그냥 머무르고 있다.

운전중에 요런 경우가 가장 예민한 자율신경을 촉발하는 순간이다. 경차는 불과 10여초 미만의 머무름이었지만 운전석에 앉은 내 졸갑증은 몇분은 기다려 준듯하여 더는 인내를 못하고 경적을 한번 눌렀다.

‘나 좀 통과하게 어찌 해달라는 신호’였다.

그러자 한번 더 서두르며 방향을 잡으려던 흰색 경차의 운전자가 창문을 내리면서 당황한 표정으로 조금 기다려 달라는 손짓을 한다.

처음에 놀란 것은 젊은 여성의 울 것만 같은 슬픈(?)표정이었지만 자세히 보니 운전석에 앉은 여인의 가슴팍에는 어린아이가 안겨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운전감각이 그렇게 조심스럽고 서툴렀든 모양이다. 그런 사정도 모르고 경적을 울려 여인을 불안하게 했던 내 행동이 너무 미안하여 나 또한 자책감으로 황망하기만 하다.

당장 차에서 내려 무엇 도와드릴 일이 있습니까? 묻고 싶은데, 마음 뿐 몸의 움직임이 무디는 동안 흰 경차는 방향을 잡고 속도를 높여 튀어 나간다.

“저러다 엎어지겠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빠르게 가버린 젊은 여인의 날랜 운전을 보면서 알 수 없는 안쓰러움에 가슴이 먹먹하다.

아침부터 귀여운 자식을 가슴에 안고 운전을 해야하는 엄마는 마음이 얼마나 바빴을까! 옆에 앉힐 수도 없을 만큼 갓난아이였다면 보육원이나 친정집에라도 데려다 주고 출근을 해야 하는 사정이었겠지만 그렇다고 운전자가 애기를 안고 주행을 하면 안전은 어떡하나...

이렇게 육아를 병행하기가 팍팍한 현실이니 직장생활을 하는 가임여성은 출산을 기피 할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오늘 비로소 목도한 것이다. 요즘 젊은 여성의 심리 저변엔 ‘꼭 결혼을 할 필요가 있는가! 결혼 후에도 꼭 자녀를 낳아야 할 필요가 있는가! 에 대한 의문부호를 가진 여성이 많다는 결혼관에 관한 최근의 젊은세대 설문조사 기사를 읽은 내용이 맴돈다.

결론은 여성들이 사회활동 영역이 확대됨으로 인해 결혼에 대한 동기부여가 축소된 게 확실하다.

그러니 남자든 여자든 결혼은 꼭 해야 하고, 결혼을 하면 자녀를 갖는 게 당연시 됐던 나의 사고도 벌써 봉건시대의 잔재여서 결혼한 내 딸에게조차 나는 구닥다리 아빠다.

궁상맞은 우리 세대의 걱정과는 달리 시대를 초월하여 진정한 여성의 힘은 일단 자녀를 갖게 되면 사정이 확 달라진다. 자녀 양육에 대한 모성의 근본은 변하지 않았을 뿐더러 자녀에 대한 애착은 오히려 더 커졌기 때문이다. 위험한 줄 알면서도 갓난애를 가슴에 안고 운전하는 저 여성이 현실적 모성을 웅변하고 있지 않은가!

사회생활의 기본은 인간관계의 시작이고 “人生의 실마리는 인간관계의 설정에 있다”고 누누이 듣던 말의 의미로 보면 결혼 후 자녀를 낳는것은 가장 최초이고 소중한 인간관계의 설정이다. 침묵과 눈빛만으로 상대의 마음을 열게 하는 연애과정을 거치고, 그 마음을 움직이는 신뢰의 원천이 사랑임을 알았으니 인간관계의 가장 좋은 만남은 결혼일 것이고, 더 신비로운 관계는 자녀의 출산 일 것이다. 그래서 "여성은 인류 최초의 가장 위대한 교육자"라는 모파상의 말이 틀리지 않는다.

그러나 모파상의 예측보다 요즘 여성의 힘은 더 막강하다. 

과거 이조시대, 아니 우리 할머니 어머니 세대까지는 여자가 지켜야 할 세 가지 도리로 삼종지덕(三從之德)이 있어 여자는 자랄 때 아버지를 따르고, 혼인 후에는 남편을 따르고, 남편 사후에는 아들을 따른다 하였지만 이 말을 요즘의 여성들에게 적용했다가는 결코 용서받지 못할 남자가 되고만다.

물론 디지털 시대인 요즘에도 삼종지덕(三從之德)은 존재한다. 다만 대상이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란 점이다. 아들은 태어나서 학교졸업, 결혼시까지 엄마가 좌우하고, 결혼해서의 생활은 아내가 좌우하고, 늙어서는 아들보다 며느리나 딸이 좌우하는 현실을 우리가 지금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늘 날을 살아가는 남성들의 삼종지의(三從之義)가 아니라 할 수 있는가!

마침 오늘이 어버이 날임에 이순의 나는 80세인 어머니를 용돈으로 모셔야 하고, 아내는 눈치껏 대접해야 하는데, 딸 자식들에게는 늙은이 대접 받음이 싫어 카네이션 꽃은 보내지도 말라고 미리 전화하며 여행으로 출국 한다는 큰 딸에게는 잘 다녀오라고 웃으주고, 멀리서 문자로 인사하는 둘째 딸에게는 "고맙다!"라고 말해야 하니 지금의 내 꼬락서니도 영낙없는 삼종지의(三從之義)다. 내 존재감을 모두 내려놓아야 최소한 대접받고 가정 평화가 유지됨을 내 두뇌는 이미 학습된 셈이다. 

어쨌거나 오늘을 사는 남성들이 여성의 눈칫밥을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도록 사회 구조와 의식이 바뀌었으니 나라고 예외일수 없음은 당연지사 이겠지만

그래도 인간관계의 소통은 언어라고만 인식되어 온 내게 오늘은 젊은 여성이 큰 가르침을 주었다. 소통의 유일한 통로가 말이 아니고 그렇다고 물질도 아니며 침묵! 가냘픈 손짓! 연민의 표정! 으로도 가능함을 일깨워 준 점이다, 저 갓난애를 가슴에 안고 운전해야 하는 젊은 새댁의 위험천만한 운전 이유가 새댁의 남편이 혈소암으로 현재 병원에 입원 중이고 밤새워 간병한 시어머니와 교대를 위해 가는 길이라는 경비아저씨의 얘기를 듣고보니 여성의 존재감이 더 아프게 가슴에 스민다.

나이 핑계로 버릇없는 젊은이를 경원했던 내 의식을 깊이 반성하고 구직난의 어려움에 지친 젊은 세대에게 좀 더 따뜻한 위로의 언어로 소통하는 어른이 될 것을 다짐하는 어버날로 삼으려 한다.

2014. 5. 8.


by 마음 | 2014/05/09 11:54 | 삶의 향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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