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여재산 철회


 <거룩한 모정>

살다보면 좋은 일 하고도 한번 씩 욕 듣는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막상 직접 당하고 보니 그 속상함은 며칠 밥맛을 잃게 한다.

얼굴에 고생한 이력이 역력하고 거무튀튀한 왕주름이 많이 잡힌 촌부의 여자 “구수댁” 을 만난 것은 얼추 5년 前 쯤 인 것으로 기억이 된다.

당시 농사철이기도 했지만 법무사 사무실을 찾아온 구수댁은 그야말로 흙이 묻은 통바지에 검은 고무신을 신고 농사일 하다 그대로 온 작업차림이었다.

자신의 호적상 이름은‘박끝순’이지만 주변 사람들이 자기를 ‘구수댁’이라 부르고 자기도 그 이름으로 사니 그냥 그렇게 불러 달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평생 농사꾼으로 살다보니 60이 넘도록 화장한번 안해 봤다는 말로 사무실을 찾는 미안함을 얘기하므로 난 오히려 소박한 농부의 모습이 좋기만 하여 한껏 친절하게 상담을 해 드렸다.

당시 자신의 농사짓던 땅이 도로공사에 수용되어 토지보상금으로 집을 장만 하였는데, 농사꾼에게는 농토가 목숨인지라 농지를 다시 매입하려니까 취득세 감면인 대토로 하면 된다고 해서 나를 찾았다는 것이다. 그동안은 마을 이장이 일을 해줬지만 면직원이 이장에게만 맡기지 말고 법률사무소를 찾으라 해서 내게 온 것이다.

그 때 나와의 상담으로 현금도 분산시켜 통장 관리하고 대토도 적절하게 매수하여 농사짓는데 한결 수월해졌다며 그 해 가을 수확한 농작물(감, 밤)도 잔뜩 갖다 준 순박하고 어진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 후에 다시 찾아왔을 때는 인생 상담 이었다.

자신의 기구했던 과거를 얘기하여 산촌마을에서 자란 처녀시절 이웃 마을의 유지였던 기혼자에게 속아 혼인식 한번 치르지 못하고 그 사람 자식을 가지게 된 사실, 그 자식이 태어나면서 미숙아임을 알게 된 유지가 자신과 피붙이를 버려두고 도시로 가버린 뒤 자신의 운명인 자식을 키우기 위해 험한 노동과 농사일로 40년을 지금의 마을에서 살아왔다며

모진세상 등지고 목숨 끊으려 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는데 그때마다 걸리는 게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고 온종일 저만 쳐다보고 있는 피붙이인 자식이 걸려 죽지 못해 살았다는 얘기였다.

그렁저렁 세월 살아 이제 내 몸 늙고 자식 나이 40되고 보니 내 죽는 건 괜찮은데 저 놈 돌볼 사람 없는 게 기가 막혀 자식돌볼 사람을 궁리궁리 찾는 중에 마을사람 몇이서 권하길 구수댁 앞으로 된 집하고 땅을 장애자식 앞으로 해주면 그 재산을 보고라도 여자가 와서 살림을 해주지 않겠느냐 해서 자신의 재산을 모두 자식에게 주겠다는 것이다.

그런 동네 사람들의 참견만으로 재산 모두를 자식에게 주겠다는 구수댁에게 요즘 세상 어느 여자가 재산보고 와서 자기 평생을 받쳐 장애남편을 돌볼 것이며 혹시 그런 여자가 있어 온다 해도 재산만 노리지 누가 생모인 구수댁처럼 돌봐주겠냐고 한사코 말렸다.

그런데 이미 결심을 굳히고 나를 찾아온 구수댁은 그래도 좋으니 사지(四肢)가 멀쩡한 자식인데 장가라도 한번 들게 해주는 게 자신의 도리가 아니냐며 막무가내 고집을 부리는데 정말 모정인지 집착인지 나의 설득이 전혀 먹히질 않았다.

겨우겨우 달래 그럼 재산을 넘기되 우선 절반만 넘기자. 그 정도만 해도 시골에서는 큰 재산 아니냐는 달램으로 집과 땅의 절반만 장애아들 앞으로 넘겼다. 그 이후 구수댁은 내게 ‘참 고마운 소장님’이라며 농산물도 몇 번 같다 주고는 했는데 그게 벌써 3년전 이었다.

지난 해 한창 더운 8월 말쯤, 함안 외곽도로를 지나치는데 머리에 무거운 바구니를 이고 논길을 걷는 촌부를 보았다. 태양 볕에 새까맣게 그을린 그 촌부의 총총 걸음을 보면서 함께 간 아내와 저렇게 힘든 농사를 짓는 나이 든 촌부가 안쓰러워

농촌마다 젊은 사람들은 없고 노인들만 남은 현실이 저런 거 아니겠느냐며 걱정스런 대화로 아낙의 모습을 자세히 보니 바로 그 구수댁이 아닌가!

짧은 순간이었지만 뭉클한 연민으로 가슴이 얼마나 얼얼하였는지 모른다. 그런 일이 있고 얼마 후 구수댁이 다시 사무실로 찾아왔다. 이유인즉 장애자식 앞으로 된 재산을 다시 자기 앞으로 돌려놔 달라는 것이다.

재산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재혼의 여자가 오긴 했는데 불과 몇 달 만에 사채업자에게 집을 저당 잡히고 돈만 챙겨서 달아났다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국가에서 매월 주는 장애인 생활지원 기금이 있는데 자식 앞으로 재산이 있다 하여 그마져 지급대상이 아니라서 못타 먹는다며 그것도 억울해서 원래대로 환원하겠다는 것이다.

세상물정 모르기로서니 이 또한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지난번에 재산 넘기면서 취,등록세에다 증여세까지 지출한 것이 얼마인데 또 다시 그 부담을 안으려 하니 안타까운 마음에 구수댁을 말렸다. 그 일로 내는 세금만 해도 생활지원비 보다 훨씬 많으니 차라리 지원금 포기하고 지금처럼 열심히 사시라고 …….

그러나 구수댁은 고집이 센 촌부다.

곧 50이 다 되는 저 벙어리 자식 놈을 밤낮 지킬 수도 없는데, 자식 앞으로 땅이 있으니 못된 맘 가진 일가들 중에서 장애자식을 차에 태우고 면에 가서 인감증명서를 발급받아 땅을 처분하려는 짓들을 해서 구수댁은 자식의 주민등록증과 인감도장을 자신의 허리춤에 찬 복주머니에 넣어 항상 보관하고 있는데 그 짓도 못하겠고 그냥 자기 앞으로 다시 돌려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증여 보다는 매매로 하는 게 비용이 싸게 든다는 말까지 한다.

순간, 내가 놀란 것은 증여니 매매니 벌써 계산을 하고 왔다는 것이고 누구인가 구수댁을 뒤에서 봐 주든가 조종을 한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여러 상황을 에둘러 물어 보니 구수댁이 이 일에 집착하는 이유가 굿당에서 알게 된 모 보살이 이래저래 시킨다는 사실을 파악하였다.

참 답답한 일이지만 구수댁은 속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재산을 도로 가져오겠다면 매매나 증여가 아니고 증여의사 철회를 원인으로 소유권말소를 해야 할 일인데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 조정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구수댁이 그 보살의 얘기에 너무 의존하고 있다. 아무리 설명해도 미안한 말이지만 무지렁이 특유의 막무가내 고집을 내세우니 나도 지쳤다. 그래서 꼭 증여나 매매로 되돌리려면 세금도 생각해야 하니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우리사무실과 거래하는 세무사까지 소개시키고 설명을 마쳤다. 그게 1년 전쯤의 일이었다.

오늘 아침에 출근하자 구수댁과 다른 여인 한명이 사무실에서 담배를 피우며 웅크린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놀라기도 하였지만 기본적으로 사무실에서는 누구도 담배를 피우면 안 되는데 담배연기를 물씬 맡게 되자 짜증이 나왔다.

그러니 애꿎은 직원에게만 언성을 높이는 화살이 돌아갔다.

그러자 함께 온 여인이 대뜸 구수 댁에게 “저 법무사에게 돈 달라 그래!”

그 앙칼진 소리는 너무 크게 들렸고 날카롭게 신경을 자극한다.

무슨 돈을 말입니까?

그 때 여인이 늘어놓는 얘기는 내가 일자무식인 구수댁을 꼬드겨 증여로 등기를 하게 하여 등기비용만 받아먹고 일은 제대로 해 주지 않아 세무서에서 증여세를 내라며 미신고 과태료까지 포함한 천만 원이 넘는 세금 통지가 날라 왔는데 그 비용을 나더러 내 놓으라는 것이다.

기가 막힌 일이지만 일단, 당사자가 아닌 여인은 호통을 쳐서 내 사무실에서 나가게 하고는

구수댁을 통해 들은 구체적 전후 사정은, 함께 온 여인은 자기와 아들을 돌봐주는 보살님인데 작년에 구수댁 앞으로 된 작은 평수의 땅을 굿당으로 시주를 하면서 모든 비용을 굿당에서 대고 농아인 자식을 한평생 돌봐 주기로 약속하여 옮겼는데 구수댁의 땅만 가지고는 자식을 돌보기 어려우니 자식 명의로 된 땅마저 옮기라고 해서 작년 내게 왔던 것인데, 일부는 증여로 했는데, 나머지를 증여의사 철회를 원인으로 구수댁으로 다시 넘기는 바람에 큰 굿도 못하게 되었고 세금도 나왔다며 그 책임을 모두 내게 떠넘기라 해서 같이 왔다는 것이다. 그러니 증여로 받아간 구수댁의 땅 외에, 다시 구수댁 앞으로 된 땅을 차지하려다가 세금 체납이 있어 미수에 그친 것이다.

나는 지금 구수댁 같이 순진한 사람을 사이비 종교를 빙자하며 미혹하는 사악한 인간을 만난 것이다. 그러니 이 보살이라는 여자는 구수댁을 내세우며 자신은 교묘하게 뒷전에 나앉아 있는데 구수댁이란 이 촌부는 매구 같은 그 신당 보살의 말을 더 믿는 것 같으니 나로서는 한숨도 나오고 화가 치밀어 오르기만 한다.

내가 연결했든 세무사에게 자초지종을 듣고 보니, 세무신고를 위해 전화를 하자 구수댁이 강경하게 그 돈은 안내도 되는 돈이고, 내더라도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연락조차 하지 말라고 해서 끝났다는 것이다.

할 수 없이 다음 날 내가 직접 구수댁의 주소를 확인하여 집을 찾아갔다.

그러고 나는 구수댁에게 그 굿당 보살이 있는 데를 같이 가자! 만약 그 보살이 모두 시켰다면 경찰에 신고하여 처벌을 받게해야 한다며 어름장도 놓고 화가 난 음성으로 다그치니, 그때서야 구수댁은 모든게 자기가 아들을 돌볼 수 없어 그랬다며 자기의 잘못이라며 울기만 한다.

무지가 죄는 아니지만 나는 그 보살의 간교함으로 구수댁이 피해자라고만 생각했는데 구수댁은 지금 모든게 자기의 잘못이라 하고 그 보살님은 산 속 신당에 가 있기 때문에 만날 수도 없다며 한사코 나를 만류한다.

재산을 잃고도 모든 잘못은 자신의 탓이라고 눈물만 흘리는 구수댁을 보노라니 어느 신앙인들 이보다 더 거룩하랴 싶다. 애오라지 자식만을 생각하는 이 모정앞에 누가 누구를 정죄 하겠는가! 내 눈가에도 눈물이 핑 돈다. 췌장암 수술로 병원에 계시는 어머니가 문득 보고싶다. 


2009.   9.


by 마음 | 2014/11/29 19:58 | 삶의 향기 | 트랙백 | 덧글(0)
트랙백 주소 : http://yskim.egloos.com/tb/2169345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