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선교

<빈약한 후원자>

아내가 키득키득 웃으면서 카카오톡 문자를 내게 보여준다.

“수신:청와대,
  내용: 김영석님을 국무총리 후보로 추천하니 승낙해 주십시오.”
  나는 기가차서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는 지라

“누구야 도대체?”라고 물으니 미국 조지아 주에 있는 이 목사가 보낸 거란다. 물론 장난스레 보낸 줄은 알지만 아내는 목사님께 뭐라고 답해야 되느냐고 하니 또 한 번 헛웃음을 칠 수밖에…….

“답은 무슨 답이야 그냥 웃고 말지!”
“목사님은 오늘이 만우절인줄 착각한 거 아냐?”로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 저녁운동을 나가려는데 아내는 재촉을 한다. 그래도 뭔가 답장을 보내야 되니 한 말씀(?)해 달란다.

그럼 “이 목사님이 대통령 당선되면 승낙하겠습니다.” 로 보내라고 말하며 아내와 한바탕 웃으니 저녁 산책길의 발걸음이 한결 가볍기만 하다.

유머가 사람을 즐겁게 하는 긍정의 바이러스라더니 맞는 것 같다.

미국에서 40년 넘게 미국 시민권자로 사시면서도 조국의 소식에 관심이 많으신 이 목사님 보기에도 이번 성완종 사건과 이완구 국무총리 사임은 적잖은 충격이었나 보다.

“목회나 신경 쓰시지 목사님이 정치에 관심을 왜 갖나!” 라고 투덜거리면서도 나는 국무총리 후보로 추천하겠다는 그 장난스런 발상에 한편 좋은 관계로 유지되어온 사람끼리는 신뢰를 이렇게 표현하는 방법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95년도 처음 미국에 갔을 때 만난 목사님의 별명을 나는 “부처”라 지었다. 아내와 처제가 펄쩍 뛰면서 그 무슨 망령스런 별명이냐 했지만 당시에는 늦깍이 신학대 재학 중으로 목사자격을 갖추기 전이라,

목회활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교회 집사로서 세탁소 경영을 하면서 이민생활이 어려운 교민들을 묵묵히 도와주는 심성이 너무 듬직해 보여 정말 좋은 뜻으로 그렇게 칭했다. 당시 영적이든 정신적이든 위로랍시고 강단에서 신도들에게 입 바른 소리만 하며 행세하는 목사 보다 훨씬 좋은 분이셨다.

신앙적 태도 여부를 떠나, 몸으로 봉사하고 조금이나마 물질로 남을 도우며 한마디의 설교도 없이 생활에서 그냥 모범적 시민으로 사시는 그 분의 태도가 얼마나 거룩하든지, 내가 최고의 찬사로 붙인 별명이 ‘부처’였던 것이다. 배타적 종교관을 가진 속 좁은 사람이었다면 우격다짐으로 따지기라도 하련만, 대범하고 활달한 성격이신 목사님은 “기독교인이 부처도 되니 얼마나 좋은 별명”이냐고 내가 우겼더니 파안대소를 하며 함께 보낸 며칠은 평생 그 분과의 교분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 목사님이 늦게나마 목회를 하시기로 작정하신 각별한 사연은 뉴욕과 커네티컷을 떠나 조지아 주 브린스윅 타운의 외진 한국인들 몇 사람이 사는 곳에 다녀오시고 부터다. 미국이라 해도 주거환경이 열악하고 척박한 빈민굴 같은 흑인 주거 지역이 더러 있는데, 한국 여인들중에 이런 곳에 사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60년대 70년대 주한 미군부대 근무하던 흑인사병과 결혼하여 미국의 남부지역에 오기는 했지만 흑인 거주 지역에서의 편견과 차별로 환경에 적응 할 수가 없어 암담한 삶을 살아야 했고 그러다 못견디면 인생을 자포자기하고 결국엔 이혼을 하는 게 선택의 전부였다. 

미국의 프로풋볼 선수로 한국 혼혈아의 영웅인 ‘하인즈 워드’의 어머니인 ‘김영희’여사 같은 특별한 여인을 제외하면 그들의 생활은 참담하기만 하다.

그 실상은 술과 마약으로 만신창이인 여인들인지라 이틀이 멀다하고 길에서 쓰러지고 주위의 사람들로부터 눈총을 받으면서도 영어가 짧으니 어디 하소연도 못하며 구원 없이 사는 모습들이었다.

목사님은 이들에게 도움을 주려면 함께 살면서 돌보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시고 세탁소를 처분한 돈으로 타운에 작은 교회 하나 얻고 집을 장만하면서 목회를 시작하신 분이다.

그 여인들 중 한국에 사는 친척을 찾아 달라는 목사님의 부탁으로 두어 번 인적사항과 호적을 뒤져 형제나 삼촌을 찾아 준적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친척을 찾아도 인생 실패자인 여인임을 알게 되면 형제임에도 만나기 싫다며 거부하는 경우를 보아온지라, 목사님은 그들에게 유일한 친척이고 구세주였다.

아프리카나 오지의 선교만이 선교가 아니고 도시의 빈민가 사람들에 대한 돌봄이 더 큰 기독교 사랑의 실천이라며, 목회와 설교를 시작하신 이 목사님에게 나는 한국에서 의 조그만 후원자이다. 정말 크게도 못 도와드리고 지극히 빈약한 후원자일 뿐이다.

그런 막연한 인연으로 서로에게 편안한 사이다 보니, 오늘처럼 황당한 문자를 보내 큰 소리로 웃는 교제도 하지만, 부족한 후원으로는 목사님의 목회를 도와드리지 못함에 마음이 늘 짠하다. 정말 좋은 기회라도 얻어 통 큰 후원을 한번 했으면 좋겠다! 만우절 같은 문자로 나마...

2015.  4.  27.

  

by 마음 | 2015/04/28 17:25 | 삶의 향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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