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의 옷

가볍게 벗자.

지인의 결혼식 참석 후 공직 근무시 함께했던 후배들과 합석하여 식사를 하였다. 그 중 경찰간부인 어느 후배의 얼굴표정이 많이 어두워 보여 그 연유를 묻자 한숨 소리와 함께 털어놓는 후배의 넋두린즉 자기도 내년에 정년인데 퇴직 전에 딸 결혼을 시키고 싶었는데 그마저도 제대로 되질 않는 게 심란해서란다.

현직에 있을 때의 자식 혼사와 퇴직 후의 혼사에는 하객 수와 축의금 액수가 엄청나게 다르다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남의 혼사에 와서 자기 계산에 빠진 후배가 은근히 밉상스러워 이젠 김영란 법이 곧 시행되는데 오히려 퇴직 후가 더 안 좋겠느냐며 돌직구를 날리니 합석한 일행들의 웃음으로 지나치긴 했지만, 오랫동안 공직에 있었던 사람 특유의 기득권을 방증하는 소리를 듣는 게 개운치는 않았다.

공무원에게 퇴직은 조직이란 큰 울타리에서 어둡고 황량한 사막으로 걸어가는 듯한 막막함이 뒤 따르는 인생의 내리막 길 이란 생각이 드는 것이리라!

더구나 제복을 입고 근무하는 군인, 경찰공무원일 경우엔 제복의 권위와 무궁화의 상징에 대한 자긍심이 하늘의 별 인양 빛났을 터인데 제복을 벗어야 하는 그 암담함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이렇듯 인생의 기로에서 누구나 퇴직을 하고 명예와 긍지의옷을 벗는다!’특히 관직에 있던 공직자의 퇴직은 정말 옷을 벗는다!’라는 말의 표현이 더 실감난다.

예로부터 관복은 벼슬이고 출세이고 논두렁 정기라도 타고 난 양반가문의 도리라고 생각한 유교의 관습이 남은 탓에 요즘도 공직자들은

퇴직을 하든, 사직을 하든 그만둔다는 뜻으로 옷을 벗는다.”고 말하면 결단과 비장함이 서려있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정년을 채운 퇴직이어도 옷을 벗는 것은 서글픈 일이겠지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 중간에 옷을 벗기라도 하면 그 암담함은 세상 끝에 선 느낌이다.

굳이 공직이 아니라도 기업이든 금융이든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둘 때 통상적으로 던지는 말이기도 하지만 자의적으로옷을 벗는다.”가 아닌 지금 우리의 경제적 어려움과 기업의 구조조정으로 원하지 않게 옷을 벗겨지는 사람들의 사정은 정말 심각한 아픔이다.

마침 19대 국회의원의 임기도 끝나는 달이다. 국회의원의 위세는 뺏지에서 나온다니 옷을 벗는다보다 뺏지를 땐다는 말이 맞는지도 모르지만, 그동안 원래 제 것이 아닌 벼슬로 국민의 혈세를 과분하게 받다가 그 명예와 권세를 잃게 되니 아쉬움이 많은 듯하지만 국회의원 경우는 달리 잃은 것 없이 본래의 자리로 돌아오는 것일 뿐임에도 인생의 벼랑길에 서 있는 공직자의 퇴직이기라도 한 것처럼 번민과 아쉬움을 표하며 의원직을 내려놓는다는 일부 의원의 태도에 은근히 부아가 치민다. 내 부아가 아니라도 국민들은 그동안 국회의원은 가치에 비해 너무 과하게 신분이 높았고 직무유기를 하면서도 세비만 타 먹은 반감으로 그들을 보는 눈길이 곱지는 않다는 사실을 알기는 하는 걸까!

솔직히 그들의 뒷모습은 초라하지도 옹색하지도 않다. 오히려 시원하다고까지 말하고 싶다. 떠난 자의 자리가 아름다워 보이기가 쉽지 않겠지만 19대 국회 회기 마지막 날 가볍게 옷을 벗을 준비를 하지 못한 우매한 목민을 보며 씁쓸함을 감출 수 없음의 연유다.

 정약용의 목민심서(牧民心書) 해관(解官) 6조 중 1조 체대(遞代), 에 보면

관필유체(官必有遞) , 체이불경(遞而不驚) 하고, 실이불련(失而不戀) 이면, 민사경지의 (民斯敬之矣) 니라

관직은 반드시 물러감이 있으니 물러갈 때 놀라거나 자리에 연연하지 않아야 백성들이 공경할 것이다. 라고 하여 물러 갈 때 자리에 연연하지 말라는 경구는

내가 개인적으로 정년이 10년 남짓 남았음에도 법원 근무를 청산하고 옷을 벗었을 때 가장 위로 받았던 글이기도 하다.

당시 내가 가볍게 옷을 벗었는지 무겁게 벗었는지 가늠하기 어렵지만

위장된 정의로 승진을 선별하는, 숨막히는 조직생활에 머리가 짓눌려 오른 쪽 마음이 무심하게 옷을 벗자고 속삭이니 피곤을 느끼던 왼 쪽 마음이 그래 벗자! “고 동의해서 법원을 상징하던 신분증과 입회복을 반납하고 옷을 벗은지도 벌써 10년이 넘었다.

집에 와서 사표를 냈다고 얘기하자, 놀라운 눈빛으로 망연히 나를 바라보던 아내와 딸의 표정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나는 찹찹함과 무력감으로 그냥 떠날 때가 된 것 같아 아침에 결정하고 떠나는 자의 서신이란 글 하나 남기고 오후에 사표를 내서 퇴근 전에 가방 들고 집에 온 게 전부였는데...

그 때 무슨 퇴직 후의 생활을 계획하거나, 자식 혼사를 생각 할 겨를이나 있었는가! 그냥 법무사 자격이 있으니 남들보다 좀 쉽게 결정한 것 뿐 머리에 계산이라곤 전혀 없었다. 나중에 총무과 동료가 퇴직금을 일시불로 타겠느냐 연봉으로 하겠느냐 물어서 연봉으로 처리해 달라는 부탁을 하고는 곧장 미국에 건너가서 몇 달 동안 하염없이 서부여행을 한 것이 생각난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분명 그 때가 내 인생의 갈림길이었다. 시련이 있었다 해서 인생 31막을 가족에게 예고도 없이 무심하게 결정하여 가족들의 충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인생의 황금기에 계획 없는 길을 간다는 게 어찌 무심하기만 했겠는가,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 영혼은 자유를 찾아 천국에도 갔었고 증오의 감정으로 지옥에도 가면서 외로움을 털어내기까지 번뇌도 많았었다. 다만 지금 생각해 봐도 그 때 미련없이 옷을 벗은 것은 옳은 판단이었고 분명, 자리에 연연하여 무겁게 옷을 벗지는 않았다는 안도가 자리 잡고 있다. 만약 우유부단한 태도로 법원이란 안정된 울타리에 집착을 했다면 나의 속성도 공직의 기득권자와 별반 다르지 않았으리라!

최근에는 당시 함께 근무하던 동료들이 공직의 옷을 거의 벗었다. 강압적으로 옷이 벗겨진 것도

선택으로 옷을 벗은 것도 아닌 정해진 퇴직으로 당연히 벗어야 할 옷을 벗었음에도 그들 중 일부는 허허벌판의 세상 끝에 서 있는 듯 혼돈과 좌절을 겪는 것을 보기도 하니 후배의 힘없던 목소리가 더 안쓰럽게 여겨진다.

옷을 벗는다!’는 것은 공직의 기득권을 망서림 없이 던지는 행위이고 인생의 엄숙한 갈림 길에서 마음을 비우는 결단임이 분명하다. 공직의 연륜이 많을수록 연연함 없이 가볍게 옷을 벗기가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남은 세월 생의 화두를 찾아 기왕 벗을 옷, 가볍게 옷을 벗어야 세상이 더 자유롭다.는 말을 갈등하는 후배에게 꼭 전하고 싶다.

 

2016. 5. 30.


by 마음 | 2016/05/31 12:02 | 隨想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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