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사원

<뭣이 중헌디? >

사무실에서의 오전시간은 온전한 내 시간이다.

상담전화도 어쩌다이고 찾아오는 민원인도 한두 명 있을까해서 조용한 분위기로 책을 읽고 있는데 11시쯤 말쑥하게 차려입은 청년 두 사람이 사무실에 들어와 90도 배꼽인사를 하며 우렁찬 목소리로 시간 좀 내 주십시오!” 한다.

얼핏 봐도 어느 직장의 인턴사원임이 감지되어 그냥 가라는 손짓은 차마 못하고 그래 5분만 서로 시간내자!”며 자리를 권하고 냉장고의 음료수를 꺼내 권하자 황송해 하는 젊은이들의 표정이 귀엽고 싱그럽다.


그러고 곧 시작된 젊은이들의 자사제품 홍보를 듣다보니 내겐 해당 없는듯하여 설명에 열중하는 젊은이에게 힘을 낭비시키지 않으려 자네들의 열정만으로도 앞으로 회사의 주인 자격이 있다는 덕담과 격려를 하고 그래도 혹시 모르니 명함은 보관하겠다며 자네들도 법률상담이 필요하면 내게 연락하게!”하며 내 명함도 건네주고 7분정도의 젊은 사람들과의 대화를 마쳤다.

무언가 신선하고 대견하기까지 한 저들이 꼭 정직원이 될 때까지 용기를 잃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그들을 보냈지만 팍팍한 현실을 사는 젊은이들에 대한 연민과 안쓰러움도 있었다.

그로부터 얼마쯤 지나 밖에 나갈 일이 있어 엘리베이터를 타려다가 복도에 종이 한 장이 떨어져 있어 무심코 줍고 보니,

아뿔싸! 좀 전의 인턴사원들에게 건넸던 내 명함 아닌가! 순간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나로서는 잘해준다고 했음에도 젊은이에게 내가 무시당했구나! 하는 얼떨떨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혹시 실수로 흘린 게 아닐까하는 너그러운 생각도 했지만 분명 음료수 병을 치우면서 자기의 바인더 북에 끼우는 것을 목격했으니 실수는 아닌 것 같다. 아니 실수로 흘렸을지도 모르지만 부모 연배의 어른과 명함을 주고받았으면 조금은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하는 것 아닌가! &*#$%$#

 

존재감 없는 사람으로 취급 받은 기시감에 은근히 얼굴도 달아오른다.

그러나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보기로 했다.

그들은 하루하루의 실적을 인정받아야만 살아남는 불안한 신분이므로 내가 실적에 도움 되지 않을 사람이라면 얼른 포기하고 부지런히 다른 사람이라도 더 찾아가야 했었는데 막상 제품 설명도 끝나기 전에 내가 음료수까지 권하며 훈시적 발언을 했다고 받아들인 것은 아닐까!


혹시 그렇게 보였다면 그들 눈엔 내가 어른행세나 하려는 기성세대인 꼰대의 전형으로 보이지 않았겠는가!

거기에다 법률상담 할일 있으면 연락하라며 명함까지 건낸 것은 분명 내 경솔함의 소치였다. 요즘처럼 인터넷 SNS로 정보의 홍수 속에 사는 젊은이들에게 모르는 게 있으면 내게 물어봐!” 라는 말이 가당키나 하는가.


그들은 인턴사원이어서 지금은 마음 비우고 몸 낮추는 오체투지 각오로 현장실습을 하지만 근육질 왕성한 자신감만은 누구에게도 허용치 않는 요즘의 젊은이다!

실적이 중요한 것이지 생존이 절박한 인생도 아닌데 그들이 느끼기에 배부른 기성세대인 나의 덕담이나 훈계 따위가 먹히기나 했겠는가! 오히려 사대육신 과시하는 거드름으로 보았던 모양이다.

그러니 그 감정의 표출로 사무실을 나가자마자 영화 곡성에서의 대사이듯

'도대체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헌지도 모르면서 지럴이여.' 라며 명함을 던지고 갔을 텐데, 에그! 그런 젊은이를 탓하지는 말자!


오늘의 오해는 겸손을 미덕으로 보고 윤리나 따지는 아날로그 시대를 산 내 쪼잔한 마음밭 때문이리라! 어쨌거나 깨끗하게 회수된 명함이니 필요한 사람에게 한 번 더 사용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기기로 했다.


2016.  7.  1.

 

by 마음 | 2016/07/01 16:33 | 삶의 향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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