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락친 날

<벼락의 의미>

 바다와 하늘을 연결하는 수평선에 돛배가 흐르고, 산과 바다를 이어주는 길은 바람 길이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대화가 되도록 공간을 연결해주는 통로 역시 바람이다.

공기라고 이름 하지만 공기의 흐름이 구름을 이동 시킬 정도로 불면 센 바람이고, 바다가 넘치도록 몰고 다니면 폭풍이다. 산을 울리고 나무를 뽑아낼 만큼 힘이 좋으면 태풍이 된다바람으로 구름과 구름이 부딪치며 소리내는 아우성은 천둥이고, 그 마찰로 불이나면 번개이다. 그 번개 와 천둥이 동시에 떨어지면 벼락이 된다.

  벼락이 치면 인간은 원죄가 있든 없든 두려움을 느낀다. 하긴 벼락 앞에 죄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천둥과 벼락이 폭포 같은 물줄기와 함께 치는데 죄 없다 할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 공포의 벼락이 내가 사는 아파트에 떨어졌다!

2016. 8. 8. 인근 도시 창녕의 최고 기온 39.2인 날! 검은 구름 속에서 폭우와 함께 벼락이 떨어졌다. 그 벼락(낙뢰)을 맞고 아파트가 정전되었고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누굴 탓하랴! 정전은 곧 자가발전으로 해결되었는데 엘리베이터는 수리를 해야만 해서 몇 시간 운행이 정지된다는 관리소장의 전언이다. 하필 내가 사는 동만 그렇다!

며칠 전 내가 아내한테 만나면 재수 없는 사람이 우리 동에 살고 있다는 얘기를 하면서, 이렇게 사람을 미워하면 벼락 맞을 일이라는 말을 해서 그런가보다.

그 재수 없는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지만 그 사람이 내가 사는 아파트로 이사를 왔고 더구나 새벽 운동시간에 동선이 나와 같아서 피할 수가 없는 노릇이다.

이 기막힌 사람을 몇 달 전 처음만난 장소는 아침 출근길에서다. 좁은 엘리베이터를 타자 콤콤 썩는 냄새가 심하게 나는데, 보아하니 음식쓰레기를 봉지에 들고 문 앞에 떡 버티고 서있는 사람! 조심스럽게 탔지만 그 사람이 든 음식쓰레기 봉지가 내 가방을 스쳤는데도 가타부타 표정이 없이 뚱하다.

웬만하면 아침에는 쓰레기, 더구나 음식쓰레기를 버리지 않음이 주민의 기본예절이어서 미안해야 할 상황이건만 이런저런 반응이 전혀 없으니 역겨운 냄새를 참으며 말 한마디 못하고 내릴 때까지 불쾌함을 견디어야 했다. 그래서 첫 만남이 재수 없는 만남이었다.

그쯤에서 더 이상 만나지 않았더라면 좋으련만 새벽 등산길에 또 만났다.

요즘 산에 올라 야호라고 고함치면 다른 사람에게 결례가 된다는 사실쯤은 불문가지인지라 어느 산이든 야호이야니 자기 폐활량 꺼지도록 소리치는 70년대 등산하던 사람들 모두 자연사 하고 없는 판에, 아침운동으로 야트막한 뒷산에 올라 이야 이 야호!”를 세 번 외치는 사람이 그 사람이었다.

어떤 표정도 없이 고함치는 것도 모자라 굵은 소나무 한 그루에다 등을 되고 텅텅거리다가 다음엔 배를 탕탕 부딪치니 참으로 보기가 좋지 않았다. 그 꼴 볼견의 사람이 여자이기 때문이다. 여자가 어디 굵은 나무에 아랫배와 사타구니를 텅텅 부비니 이 무슨 저질스런 행동인가! 내가 재수 없다고 단정한 이유 이기도 하다.

피하고 싶어도 같은 동, 같은 라인에 살며 하필 운동시간대와 동선조차 같으니 피할 수가 없다. 피할 길을 찾느라 오르는 코스를 변경했지만 동산의 꼭대기가 뻔하니 올라와서 만나는 게 고역이 되어 언짢은 마음에 왕재수를 만났다고 아내에게 얼마나 투정을 했던가

아내 역시 몇 번을 부딪쳤는데 뚱하니 말이 없어 웬만하면 피해 다닌단다. 그 것만이 아니었다. 가끔씩 주차장 입구를 6인용 SUV 차량이 곧잘 주차를 하는데 사이드 키를 풀지 않아 출근하는 사람들이 동동 그리며 관리소 아저씨를 닦달하여 연락하고 보니 그 왕재수집 차량이었다. 한두 번도 아니다 보니 아예 관리소 아저씨가 그 차량이 주차장 입구에 있으면 미리 연락하여 임시로 이동을 시키는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며 짜증 섞인 푸념을 하지만 그는 입주자이고 관리소 아저씨는 고용된 사람인지라 입만 불퉁 나올 뿐 달리 대책도 없단다. "동 대표는 반상회를 왜 안 여는지 모르겠다."는 게 아저씨들 불만표시의 전부였다.

아파트에 살면 누구에게나 권리 의무가 동등 하지만, 기본 예절은 사람마다 다르니 내가 그 사람의 교양과 공중질서 없음을 지적 할 수는 없고, 또 그럴 입장도 아니어서 그 여자를 왕재수라며 기피만 했다. 그러다보니 오늘 같은 벼락이 친 것으로 보는 게 내 생각이다. 하늘도 정확하게 우리 동을 맞힌 것만 봐도 틀림없잖은가!

그러나 그 사람 때문이 아니라 내가 그 사람을 너무 미워했기 때문에 벼락이 친 것이다. 그 사람의 그런 행동거지에는 분명 무언가의 원인이 있을 텐데 내 기준만으로 교양과 예의가 없다고 단정하며 남의 인격을 폄훼하였고 비록 아내에게 이지만 왕재수라는 푸념을 수차 하였으니 그 말에 대한 징벌로 벼락이 떨어진 것이고 엘리베이터가 운행되지 않아 무더운 삼복에 고층의 집을 올라가야 하는 벌을 내가 받는 것이다.

20여층의 계단은 운동 삼아 걸어서 되는 정도가 아니었다. 하필 두꺼운 책 한권과 노트북을 담은 가방을 들고 39도나 되는 날 계단을 오르려니 고층 아파트의 대란이 이런 것임을 실감하였다. 다른 고층의 사람들은 엘리베이터가 수리 되는 동안 아예 출입을 포기한 듯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그동안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만난 사람들의 표정은 전부 무표정, 무관심이었는데 계단을 오르면서 사람을 만나니 표정들이 모두 다정하다. 전혀 인사라고는 하지 않던 중간층의 젊은 아낙이 터벅터벅 올라오는 나를 향해 인사를 하여 놀랐고, 10년을 넘게 살던 곳인지라 아는 얼굴임에도 눈인사조차 제대로 하지 않던 윗층의 아저씨도 조금만 더 힘내세요!” 라는 친절한 말도 한다

그렇구나! 벼락의 의미는 이것 이었구나 편안하게 엘리베이터만 타던 이웃들의 삭막함에 인간관계 회복을 하라는 뜻으로 벼락을 쳐서 나를 걷게 만들었구나!

그 왕재수를 만나면 내가 먼저 다정한 말로 인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번쩍든다. 벼락이 무서워서라도!  

2016. 8. 8. 벼락 친 날

 


by 마음 | 2016/08/24 11:42 | 隨想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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