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기념일(39회)

 시월 첫 주 연휴, 순천만 갈대숲은 자연 그대로의 늪지대인지라 구름낀 하늘과 잘 어울리는 환경이었다.

촉촉한 물길이 있는 늪에는 뽀글뽀글 구멍이 뚫린 곳마다 칠게가 느릿느릿 여유있는 산보를 하여 보는 재미를 더한다. 초딩의 아이들은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던지 게를 잡겠다고 바닥에 배를 대고 낚시를 하고 있는데 나 역시 즐기는 맛이 밋밋하여 내 나이도 잊고 아이들 따라 가는 갈대를 하나 뽑아 게를 잡으려 난간에 서니 낚시의 자세로는 엎드리든가 쪼그려 앉아야 하는데 복장이 여간 불편하지 않다.

그렇지만 기왕 잡기로 작정한 거 윗옷을 하나 벗어젖히고 시작하니 아내는 한심한 듯 쳐다보지만 둘째딸은 어린아이처럼 마냥 좋아하니 내가 누구를 더 기쁘게 해야 하는지 목적이 분명해졌다.

요량껏 잡겠다고 하였지만 에그! 낚시가 그리 쉬운가! 겨우 한 마리 낚아 살살 끌어 올리다가 마지막 순간에 놓치기를 수차례,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기어이 칠게 한 마리 낚아 올리니 얼굴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그런데 즐거운 순간도 잠깐, 이 게가 동작 빠르게 기어 달아나려하여 막는다고 툭 쳤는데 그 놈이 하필 큰딸의 팔뚝에 떨어지는 사단이 났다. 처음에는 그 게가 어디로 떨어졌는지조차 몰랐는데 으악!’하는, 나로서는 평생 처음으로 딸의 비명을 들어야 했다. 큰소리로 지르는 딸의 놀람으로 오늘의 칠게 잡이는 엉망진창이 되었고 순간적이나마 딸도 어이없었고 나도 어이없었다.

게가 팔에 떨어진 일이 왜 이렇게 기겁할 일인지를 설명하는 딸의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마치 30년도 넘은 과거의 장난에 대해 심판을 받는 꼴이 되었다. 딸도 황당했던 자신의 비명을 설명하다가 눈물까지 글썽이며 나에 대한 원망을 쏟아 놓는데 딸은 어렸을 때도 아빠가 자기를 놀라게 하는 장난이 너무도 싫었다는 것이다.

 그 내력인즉, 내가 딸에게 마루에 있는 신문을 들고 오라고 하여 딸이 무심코 신문을 들면 그 밑에 개구리 한 마리가 튀어 올라 기절을 한 적이 있었고, 부엌에서 컵을 가져오게 하여 컵을 든 순간 컵에 눌려있던 바퀴벌레가 기어 나와 놀란 기억이 평생의 트라우마가 되어 꿈틀거리는 곤충만 보면 기겁을 한다는 것이다.

사실 그런 장난은 나 보다 학교에서 늦게 퇴근하는 엄마를 상대로 한 것이었는데, 애꿎은 네가 당한 것이었다고 변명해봐야 허사이고, 그 일로 어른이 된 지금도 딸은 벌레에 대한 두려움, 내 짓궂은 장난에 대한 상흔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랬었구나! 나의 아름다운 추억이었던 과거가 딸에게는 상처였고, 그래서  그 기억의 아픔이 칠게에 대한 놀라움으로 나타 난 것이로구나!  내게는 너무도 사랑스런 딸이어서 귀하게 보호했고, 자신이 좋아하는 예능 소질을 전적으로 믿고 힘든 유학비도 감당하며 애비 역할 다 했다고 여겼는데, 지금 생각하니 내가 너무 가부장적이었고  대화와 소통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애비였음을 가슴으로 느낀다. 그러니 아빠에 대한 좋은 추억은 망각의 저 편으로 넘어갔고  남은 기억의 조각들은 정작 두려움이 아니었겠는가!  얘기를 듣는 중 비록 옛 일이지만 어린 딸이 그토록 놀랐다니 안쓰러움으로 가슴이 먹먹하다

그럼에도 그 딸이 엄마 아빠 결혼  기념일에 맞춰 내려와 가족여행을 주선했으니 참으로 고맙고 착하기만 하다. 나는 딸의 마음을 달래주려 딸이 좋아하는 냉면을 사 주겠노라며 진주 국도로 방향을 잡았다알 수없는 허전함, 후회, 아니 서글픔같은 편린들이 운전중에도 지그시 마음을 누른다.

 인생은 다 그런 것이리라! 우리 부모님들 세대의 아픔을 내가 몰랐듯, 지금 들판에 흐드러지게 널린 야생의 꽃과 억세풀만 보아도 아련한 추억으로 회상에 젖는  나의 정서와, 엄마, 아빠를 사랑하지만 시대를 달리하여 첨단 문명에서 생활하는 30대인 딸의 정서는 세월이 흐르고 이 계절이 바뀐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그 세대의 간극, 미묘한 정은 지식으로 무장하여도 느낄 수 없는 생물적 현상이리라!  차를 잠시 멈추고 철길에 무리지어 핀 코스모스를 바라본다. 딸들은 환호를 하며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오랫동안 각자의 생활에 바빠 가족만이 모인 게 얼마만인가!

애비란 자식에게 무한한 사랑을 주고, 마음을 모두 비우고 가야하는 가시나무새와 같은 숙명적 존재임을 자각한 오늘! 그냥 이대로가 좋다!

 

  

살살이꽃

누구에게나 살랑대며 웃음을 팔아도

계절의 자존감은 팔지 않는,


난폭한 바람 앞에 뿌리는 뽑히어도

결코 허리는 꺾이지 않는, 

 

청명한 하늘 아래

아무 곳에서 아무렇게 피어도

남실남실 제 목숨 챙기는 야생


하얀 미소 머금고

분홍빛 그리움에 흔들리지만

무서리 내릴 때면 스스로 제몸 떨굴줄 아는 

그런 혜안으로

이 땅의 자식을 키운

어머니 손주름 같은 코스모스!

 

2016. 10

 

 

 

by 마음 | 2016/10/05 17:55 | 隨想 | 트랙백 | 덧글(0)
트랙백 주소 : http://yskim.egloos.com/tb/2210202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