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사건 탄원서

<벌금, 범칙금>

법원 형사과 근무하던 시절, 벌금으로 약식 기소된 피고인이 벌금액이 많다며 정식재판으로 다투는 광경을 기억한다.

형법 제41조의 형의 종류로 보면 비교적 가벼운 죄로 볼 수 있는 벌금형이지만 경제적 형편이 여의치 않은 피고인에게는 차라리 무거운 징역형에 대한 집행유예가 된다면 벌금형 선고 대신 징역형 선고를 받는게 낫다는 절박한 진정서를 재판부에 올린다. 하지만 이러한 탄원은 형벌의 엄중함인 인신구속이나 징역형의 심각함을 모르는 법의 무지에서 비롯됨이고 또 진정을 한다고 하여 법원에서의 양형기준이 크게 달라질 수도 없는게 현실이어서 당시 피고인의 절박함을 읽는 접수담당인 나로서는 답답하기만 했었다.

때로는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경제사범 혹은 폭력 사건일 때 자신의 행위가 징역형 선고를 받을 지경에 이르면 재판장께 올리는 장문의 글로 선처를 구하면서 선택형으로의 벌금은 얼마라도 이의 않겠으니 징역형에 대한 집행유예보다도 벌금으로 선고해 달라고 탄원서를 올리는 피고인도 있다. 주로 경제사범이거나 사회적 지위를 가진 자의 행태다.

이런 접수문건을 정리할 때마다 내 리걸 마인드(Legal mind)가 부족해서인지 죄형 법정주의 원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다면 정말 경제사정이 딱한 사람들에게는 벌금형 대신 징역형, 혹은 금고형이 훨씬 낫고, 돈 많은 사람들에게는 징역형에 대한 집행유예보다는 벌금을 많이 부과 시키면 국가 형벌권도 살리고 개인의 경제적 균형도 맞추는 형벌이 되지않겠나 하는 온정주의(patemalism)에 치우칠 때가 많았다.

  그러나 내가 경험한 대부분의 형사 재판장들은 꼿꼿이 죄와 벌의 양형 원칙대로만 선고하는 냉정을 가진 사람들이어서 그 또한 무거운 마음이었다. 물론 재판장인들 인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형사재판은 국가로부터 부여받은 형벌권의 집행으로 개인의 형편과 사정에 따라 선고를 달리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지난달 지방출장 다녀오는 중 신호위반을 하게 되어 범칙금 고지를 통보받았다 그런데 분명 내가 신호위반을 했음이 사진판독으로 나왔음에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억울한 위반이었다.

앞에 가는 대형트럭의 높이가 내 시야를 방해하여 나로서는 차간거리를 유지했음에도 신호를 늦게 발견하여 급정지를 하였지만 바퀴가 정지 차선을 넘은 것으로 판독된 사진이었기 때문이다. 도로교통법에 따른 범칙금이 벌금은 아니지만 결국 지속적으로 버티면 나중에는 즉결심판에 회부되어 벌금으로 바뀌게 됨을 아는 내 입장에서 이내 포기하고 세금 좀 더 낸다는 마음으로 바로 납부는 했지만 약간의 불쾌함은 남는다.

한적한 도로이고 횡단하는 사람조차 없는 곳에서 급정거까지 했음에도 법규위반에다 벌점까지 부과되다니, 하여간 벌금이든 범칙금이든 내 잘못을 인정하기가 이렇게 쉽지 않음은사람마다 마음이 있고 마음마다 견해가 다르기 때문이다(人各有心, 心各有見)”

그러니 모호한 법 위반으로 범칙금이 아닌 벌금형까지 선고 받으면 승복은 더 쉽지 않음이다. 몇년 전의 일이다. 당숙모 돌아 가시고 고향에 혼자 계시며 선산 관리하시던 당숙 어른이 어느 날 경찰에 잡혀 갔다는 서울 삼촌의 연락을 받았다.

법을 아는 나더러 알아보고 해결하라는 취지였는데 사고인즉, 밭에서 일하시던 당숙이 밭두렁 태우기를 하다가 잘못하여 불이 났고 산림이 조금 훼손된 실화로 경찰조사를 받은 것이다. 다행히 큰 불도 아니고 소방차 출동도 없었으므로 훈방 정도라 생각 했는데

문제는 피해자의 고소가 있었던 것이다. 잡목에 불이 번지면서 다른 조상의 산소를 불태웠던 게 화근이 되어 그 묘소의 후손 중 한 명이 손해를 청구하면서 시비가 된 사건이었다.

동네 인심으로 치면 그 정도 산소 그을린 것은 떼작업 해주면 해결될 일이었는데 놀라기도 하고 돈이라곤 없는 당숙 입장에서 한잔하시고 그 후손에게 인심 사납다고 말싸움을 하시는 바람에 그 후손이 경찰에 고소를 한 사건이었다.

결국 장손인 내가 이웃하던 후손에게 정중히 사과하고 봄에 좋은 떼를 입혀 주겠다고 하여 해결을 하였고, 고소도 취하하기로 하였으므로 그 결과를 삼촌에게도 알려드리자 장손이 큰일 해결했다는 칭찬도 듣고 그냥 잊어버리고 말았는데, 두어달 후 검찰에서 당숙에게 과실방화로 벌금 약식기소를 통보한 것이다. 자그마치 벌금이 백여만 원이나 되었다.

이때 내가 생각한 꾀가 당숙에게 검찰에 가서 벌금낼 돈이 없으니 차라리 징역형이든 금고형이든 선고를 받겠다고 하면 과실범이고 아무런 전과도 없는 당숙에게 법원에서는 집행유예를 해주지 않겠나하는 기대를 하였지만 검찰과 법원에서는 원칙대로 벌금형을 확정하였고, 기간 내 벌금 납부가 없으면 40일 가량 교도소 구금될 지경이 된 것이다. 집안에서는 장손이 일을 잘 봐서 모든게 해결되었다고 알고 있는데, 이런 황당한 일이 발생하면 모든 게 도루묵이 되는지라 변명의 여지도 없이 당숙의 벌금을 대신 납부해야만 했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 했던가!

법원 근무시 무심하게 여겼던 탄원서를 내가 대필해주는 우를 범한 것이다. 그러니 피고인들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벌금형 선고에 대한 하소연을 하던 그 아픔이 더 절절하게 느껴진다. 산골에 사는 70넘은 노인이 무슨 돈이 있다고 그렇게 야속한 벌금형을 선고했단 말인가!

조카가 벌금 대납한 것을 미안해 하시든 당숙은 불과 몇 달 후 돌아 가시고 말았다. 당신을 고소한 이웃에 대한 홧병 이었을까! 알콜중독 이었을까!

2016. 11. 20. 

 

by 마음 | 2016/11/22 14:31 | 삶의 향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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