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문답(山中問答) 멍때리다.

소이부답(笑而不答)

언제부턴가 등산로 입구 약간 경사진 잡종지에 ○○농원이라는 표지석이 세워지고 매화, 단감나무 등 유실수의 무성한 경작이 이뤄지더니 드디어는 보관창고 건물까지 묵직하게 자리 잡았다. 경작하는 농원의 터가 족히 삼천 평은 될 정도로 넓다.

그린벨트구역의 등산로 입구이다 보니 오르고 내리며 보지 않을 수 없는 그 잡종지의 변천을 10년 넘게 지켜본 셈이다. 창고건물 앞에는 농원에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배기량 높은 외제 차량이 경작을 하는 소유주의 자본이 넉넉함을 과시하듯 자주 세워져 있다.

미국 서부지역에서나 본 듯한 왜건, SUV 차량도 한번씩 눈에 띄어 퇴직 후 별 경제력도 없이 산에나 오르고 내리는 평범한 한직들에겐 저런 농원이 요원한 선망 대상이기도 하다.

하여오를 수 없는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랬다고 나와는 삶의 차원이 달라 눈도 마주친 적 없이 스포츠 모자를 눌러쓴 그 농원주의 거무튀튀한 얼굴을 알고 싶지도 않았지만, 몇 년의 왕랫길로 흘깃 흘깃 보다보니 이제 익숙한 얼굴이 되었다. 나는 이렇게 그의 얼굴과 차량의 번호도 알지만 그가 나를 알리는 없다. 고 생각함은 그 입구를 통한 등산객의 수가 매일 수 십명은 될 것이고, 그 중의 한명인 내게 무슨 관심이 있을 텐가!

오늘. 국민이라면 경건한 마음으로 조국을 지킨 선열을 추념해야 하는 현충일이지만 법정공휴일로 정해진 덕분에 아침 느긋한 시간에 한가로이 등산로 입구에 들어선다. 평소처럼 산행전의 내 보폭대로 멍 하니 걷는데 갑자기 바로 뒤에서 빠방!”하는 자동차의 크락션 소리에 간담이 서늘해질 정도로 놀라 반사적 신경질로 뒤를 돌아보니 썬팅된 농원주의 외제차량이 내 뒤를 따르다 길 가운데로 걷는 나를 걸리적스럽다고 생각해서 누른 크락션이었다.

군말없이 얼른 비켜주기는 했지만 놀란 가슴에다 불과 십여 미터만가면 농원 앞이어서 조금 천천히 운행하면 될 일을 크락션까지 눌러되는 운전자에 대한 불쾌감이 생겼지만

내게 익숙한 그 남자의 차인지라 지레 참을 마음이었다. 그런데 막상 농원입구에서 내리는 운전자는  의외로 30대 후반정도의 여성이다. 농원주의 딸인가? 그나저나 저 젊은 여자가 늙은 나를 놀라게 하다니, 그 무례한 상대에 대한 반감이 발동하여 한마디 안 할 수가 없다.

젊은 분이 왜 그렇게 교양이 없어요?”내 딴에는 최대한 절제된 음성이었는데

조금도 미안하지 않은 표정의 콧대 높은 여성의 대답은 길 가운데로 걷는 아저씨는 뭘 잘하셨는데요크락션 소리가 그렇게 커지도 않았는데...

내가 놀랄것을 예상못했다는 말은 사과 일 수도 있겠지! 얼른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좋은 날, 평화로운 산행을 앞두고 이런 시빗거리로 기분 상할 수는 없다. 잠시 여성을 향했던 언짢은 기색을 거두고 그냥 돌아선다.

밤꽃 냄새 향긋한 6월의 산을 오르면서 순간이나마 울근 불근했던 내 마음을 스스로 들여다 본다. 농원주의 소유일지도 모를 진입로를 느릿느릿하게 걷기 때문에 크락션을 눌렀다는 그 젊은 여성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사실 내 동작은 멍 때리는 걸음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놀란 이유만으로 삼강오륜(三綱五倫)이나 따지는 구닥다리 아제처럼 한마디 했으니 결국 더 민망한 신세대의 당돌한 소리를 듣지 않았나! 그냥 비켜준 바에야 차창으로 그 운전자가 쳐다 볼 때 말없이 그윽한 미소만 지어 보였다면 오히려 졸갑스레 크락션을 눌렀던 젊은 여성에게 확실한 시위가 되었을 텐데…….

에그, 때로는 소이부답(笑而不答)이 더 큰 울림을 주는 것을 왜 몰랐던가!

시선(詩仙)으로 칭송되는 당()나라 시인 이태백(李太白)의 칠언절구 시() 山中問答(산중문답)을 기억에서 꺼내본다.

問余何事棲碧山(문여하사서벽산)

그대 푸른 산에 왜 사느냐고 묻지만

笑而不答心自閑(소이부답심자한)

웃을 뿐, 답이 없는 내 마음 한가롭다

桃花流水妙然去(도화유수묘연거)

복사꽃 흐르는 물에 띄우니 아득히 멀어지누나

別有天地非人間(별유천지비인간)

천지간 이 곳은 인간세상 아니라네.

산행을 한다는 것은 일상에서의 피정 아닌가, 억지로라도 나를 정화하여 마음의 근육을 더 강하게 하여 살고싶다!

 

2017. 6. 6.

 

by 마음 | 2017/06/09 10:29 | 삶의 향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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