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장례식

  어머니 장례식은 가족들만으로 고향 선산에서 조용히 치르고 문상객을 받지 않기로 결정하기까지 괴로움은 많았지만 차라리 홀가분했다.

췌장암 수술 후 8년을 투병하시는 동안 간병을 위해 병원을 드나드는 일은 아무리 골육지친 이라해도 참으로 힘드는 일임을 알았고 생존율이 없음에도 호스로 코를 통해 영양제를 투입하며 연명치료를 1년 넘게 하는 현 의료체계에 지치다 보니 달리 효자도 없고 효부도 없는, 자식으로의 책임과 도리의 무게만을 현실적으로 느꼈을 때 나는 이미 불경스런 아들이었다.

그러니 어머니 세상 뜨셨음을 알리고 친지와 문상객으로부터 위로와 격려를 받는다는 건 아무리 미풍양속이라 해도 관례적 형식일 뿐, 불효자였던 내 자신에 대한 위선만 같아 양심이 허락되지 않는다. 더구나 이 추운 날, 이 먼곳까지 힘들게 문상객을 찾아오게 하는게 나로서는 너무 부담스럽기만 하였다.  

하여, 가족 외 누구에게도 부고를 띄우지 않기로 하였는데 형제라도 내 맘 같지 않은 동생 한 명이 반란을 하듯 자기의 연고자에게 장례절차를 알리는 통에 배달된 화환과 조위금을 사과를 하며 돌려보내야 했고 또 몇 문상객에게는 상주노릇도 해야했다.

어머니 화장한 유골은 고향 선산 봉분을 열고 아버지 곁에 합장시켜 드리고 기왕에 있던 망부석 상석에 부모님 묘비석만 세우고 평장으로 산소정리를 하고나니 항상 염려했던  어머니 장례에 대한 무거운 짐을 벗은 것 같다.

그렇게 간소한 장례를 마친 후 형제들과 헤어지고 집에 들어오니 허망한 생각으로 갑자기 술이 먹고 싶어진다. 다른 술도 아닌 예전에 고향에서 마시던 막걸리가 먹고 싶다. 장례기간동안 제부와 동생들 포커레인 기사와 인부들이 쭉쭉 들이키던 그 막걸리! “마음에 그렸기 때문에 그리움이라 했던가 내가 막걸리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당장 마트로 가서 막걸리를 골랐는데 고향의 맛을 느낄 수 있는 도수가 7`~ 8`되는 막걸리는 두 종류뿐이어서 모두 사와 쓸쓸함을 안주삼아 술술 들이키니 내가 왜 막걸리를 원했는지 아득한 19살의 추억이 눈에 보이듯 살아난다.

1972, 당시 고향의 설은 그냥 설이 아니었다. 서울, 부산, 대구 등 대도시로 살기위해 떠났던 고향 사람들이 명절에 귀향하여 몇 날 동안 밤마다 끼리끼리 모여 집집마다 담군 동동주를 마시는 시음행사였다. 술 마시면 당연히 노래가 흐르고 꽹과리치고 장구치며 윷판을 던지고 고향의 온기가 도는 산골의 축제이기도 했다.

고향에서 태어났지만 한 달 만에 읍내 집으로 나왔고 그러다 4. 19.혁명 후 서울로 와서 학교 다니면서 방학때나 찾던 이 곳을 처음으로 겨울 농한기 설 대목에 할아버지 계시던 고향을 찾았으니 긴장도 풀리고 체면 경계도 풀렸으리라!

아무런 가식도 없는 순진한 아지메, 당숙모들이 사발로 건네주는 막걸리를 주는대로 받아먹고 무슨 정신에 할아버지 기거하시던 글방에 숨어들어 잠을 잤는지 깨어보면 아침이고, 할머니가 차려주는 밥상으로 해장하고 다시 아랫마을로 어슬렁거리며 노는 장소를 찾아다니던 그 며칠은 내 생애 최초의 해방구였고 겨울 고향의 세시풍속이었다.

지신밟기 함께하고 소지 올리는 구경하고 밤이면 내 또래가 없어 당숙들 총각 처자들 노는데 끼어 젓가락 장단으로 황성옛터 옛노래를 고래고래 따라하며 서울도령망가지는 자리! 그곳에는 막걸리가 있었다. 발그레한 얼굴로 내게 눈웃음을 주던 순자가 있었고, 독일 간호사로 떠날 상기된 정희누이도 있었다. 베트남전쟁 참전했던 윤식이 형도 있었다.

그 옛 정취는 사라지고 펜션으로 관광객이 오는 고향은 이미 종산이 아니라며 당숙들이 그토록 아버지 산소를 읍내로 이장하자던 강권을 뿌리치고 어머니 시집오셔서 새댁으로 사셨던 그 마을 선산에 합장시켜드린 것으로 고향에 대한 순정, 부모님에 대한 아들의 마지막 도리를 겨우 마친것 같아 마음의 짐은 들었는데 이 목마름은 무엇인가!

 다시 한 잔 울컥울컥 마시는데 아내가 어머니 장례 잘 치렀으니 그만 우세요!’라며 내 어깨를 다독인다. 아! 고향이 울었던가! 추억이 울었던가!

  2017.  1 .    .

<1월에 작성하고 잊은 글인데, 헌 책 버리는 갈피에서 찾았다.>


<요양병원에서 영면하신 어머니>

  

()인지 사()인지도 모르고

입술이 타는

미수(米壽)의 세월을

흰 벽면 침대에 누워만 계시던 어머니

 

지금은

여름의 숲과 언덕

가을의 절벽을 지나

가문 겨울

마름의 때가 되었습니다.

 

더는 목마르다 하셔도

더는 보고싶다 하셔도

바늘로 몸을 찌르고

코를 통해 호스로 공급하는 영양제도 없습니다.

 

이제

어머니도, 딸도, 며느리조차

모든 진액이 말랐습니다.

 

고향집 대청마루 문풍지를 바르러

돌아가자, 돌아가자 3년을 재촉 하시던

어머니 숨결이 멈추었는데

 

입만 열면 보고 싶다던

아버님 만나러 가신다며

뿌리가 흔들리는 자식들 버리셨는데

 

무엇이 서러운지도 모르는 천치같은 아들은

천둥처럼 소리소리 울지만

지친 그리움의 비도 말랐습니다.

 

티끌이 날리는 날!

피부 얼고 속살 따뜻한 선산(先山)을 열어

화장(火葬)으로 가벼워진 한 줌의 넋을

아버님 곁에 모십니다.

이제

지상의 병고에서 자유로우시고

별나라 달나라로 훨훨 나시며

꿈마다 꿈꾸던 아버님 뵈러 가십시오.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께서 2017. 1. 9. 영면 하셨습니다.>

 


 

 

by 마음 | 2017/08/01 11:58 | 隨想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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