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실패

<꿈꾸는 자의 승리(勝利) >

 

이 나라는, 백인의 나라도, 흑인의 나라도, 아니며 부자의 나라도, 가난한 자의 나라도, 아닌 오직 국민의 나라이며 하나의 조국입니다!

미국은 파란국가(blue state. 민주당상징)

빨간국가(red state. 공화당상징)도 아닌 미합중국일 뿐입니다!

이 말은

미국 제44대 대령통으로 당선된 버럭 오바마(Barack obama) 당선자의 연설의 요지다! 정말 전율을 느낄만큼의 감동적 연설이고 축제의 장이 아닌가!

불현듯 통치의 역사는 축제의 歷史여야 한다!”고 장엄하게 선언한

수년 세계적 Best seller ‘Ramses'의 마지막 구절이 생각난다.

 

선거에 패배한 매케인의 기품 또한 너무 아름다웠다. 도전의 실패를 시인하고 즉시견해차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어려운 시기에 도전하는 차기 대통령을 위해 우리 열과 성을 다해 도와야 합니다.” 라는 패배인정연설(concession speech)은 연마된 인격의 소유자가 아니면 힘들지 않겠는가!

더구나 아쉬운 격정으로 울고 있는 지지자들 앞에서 감정을 추서리며 진정성 있는 연설을 하는 이 신사를 누가 패배자라 하겠는가! 미국을 선호하고 아니하고 이런 정치는 정말 가슴 후련하다는 느낌이 아니들 수가 없다.

 

우리 근대사의 統治엔 과연 비극과 혼돈의 시작 외에 이러한 축제의 역사가 있었는가에 대한 회의가 묻어나는 요즘이다. 신문에도, TV에도 뉴스라고 나오는 것은 속 시원한 경제소식은 없고, 잃어버린 10년이 어떠니, 좌편향이니 우편향이니 모두 국민의 마음을 혼돈시키고 국정감사에서도 이전투구하는 정치꾼들의 俗惡한 폭로와, 자기도취적 발언뿐이니 어찌 편안한 마음으로 뉴스를 경청할 수 있겠는가!

 

그래도 현실을 살아가면서 뉴스를 접하긴 해야 하므로 Headline의 정치뉴스는 작고 하찮은 것으로 치부하고 경제와 문화 스포츠 뉴스정도가 내가 시청하는 뉴스의 양이다.

그런데 근간 사회면의 소식 또한 심각하기 이를데 없다. 유명인들의 자살에 이은 '젊은이들의 자살소식이다. 이런 충격적인 사회현상 앞에 '생명경시''삶에 유약한 세태'니 한숨이나 짓고 있기에는 우울증에 시달리는 젊은이의 삶이 너무 안타깝기만 하다.

특히 막막한 상황에서 자살을 시도하려는 젊은 사람에게 어떠한 충고나 타이름이 도움이 될까마는 참으로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기에도 유한한 인생의 기간은 너무 짧기만 한데, 직장 없고 희망 없는 젊은이들은 pessimism에 빠져 쉽게 좌절하고 삶을 포기하는 자살에 유혹을 더 느낀다니...

 

요 근래 신문마다 이러한 젊은이들에게 사설논조로 너무 흔한 죽음”"너무 흔한 삶의 포기"에 대한 우려의 글을 싣고는 있지만 읽고 그 공감의 정도는 지면의 시공을 초월한다.

자살이라는 말처럼 무책임하고 비극적인 말이 있겠는가! 적의 침공에 대항하기 위해 폭탄을 지고 장렬히 산화를 한 젊은 군인의 죽음이 아니고, 구 한말(舊 韓末) 나라를 뺏긴 국치(國恥)에 통분하여 매천 황현같은 우국지사의 명분 있는 죽음이 아닐 바에야 어찌 스스로의 삶을 포기하는 자살을 미화하고 동정하고, 이해해야만 하는가!

참으로 망연(茫然)한 사건이고 가족과 직장과 사회에 대한 무책임의 다름 아니다.

물론 지고(至高)한 자존심을 지닌 특별한 분들의 죽음 앞에 함께 고뇌하며 탄식은 못할망정 비난을 하려는 우를 범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 영향으로 젊은이들의 자살이 유행이듯 번짐에 대한 우려가 워낙 크기에 그러하다.

 

중국사기(中國史記)의 저자인 사마천의 一生을 보면 삶과 生命의 부지가 얼마만큼 숭고하며 가치 있는 것인지를 대변한다. 자기의 정치적 소신과, 正義를 굽히지 않고 친구인 이릉장군을 변호하다 한무제에게 목숨을 잃어야 하는 순간에도 절의 때문에 죽는 것보다는 살아서 史記의 저술을 완성해야 한다는 목표와 선친(사마담)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서 사나이로서 차마 치욕적인 목숨을 구걸하였고, 그 대신 궁형의 벌을 택하여 자신의 남근이 잘리는 참혹한 일을 당하면서도 방대한 중국 史記를 완성하고야 역사적 을 마감하지 않았는가!

이것이 目的있는 삶을 사는 人間의 위대함이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人倫이니, 생명의 존엄이니, 숭고함이니따위의 얘기가 무슨 설득력이 있겠는가! 현실을 견딜 수 없을 만큼 정신이 피폐해진 사람들의 자조 앞에 또 어떤 理念과 종교적 설교가 필요하겠는가!

다만 극단적으로 고립되고 외로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겐 사람의 따뜻한 대화만이 유일한 해결이 될 것이다. 조금만 더 배려하고, 조금만 더 다정해서 극단적 상황에서 삶을 포기하려는 젊은이들의 자살만큼은 막아야하지 않는가!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사람의 곡절 많은 사유를 당사자가 아닌 남이 어찌 알 수있을까마는 분명한 것은 죽음보다 어려운 살음으로 目的있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더 옳다는 사실을 이 시대의 政治가 이시대의 社會가 밝혀 줘야 함에도 혼돈의 정치로 혼비(魂飛)한 우리 사회는 아무런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애석할 뿐이다.

 

헛된 죽음인 자살을 남의 일로 치부하지 말자! 또 어떤 명분으로든 미화하지도 말자! 함께 사는 건강한 사회를 위해 주변의 외로운 사람들과 정감(情感)있는 대화를 나누는 작은 실천이라도 해야만 한다! 꿈꾸는 자는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을 위해 ...

(2008. 11. 쓴 글입니다만, 최근 지인의 자녀가 자살한 소식을 접하고 비통함으로 올립니다.)


2018.  5.  29.

 

 

by 마음 | 2018/05/29 18:20 | 隨想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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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춘기 at 2018/06/11 14:52
10년 전의 글이라니...번뜩이는 대단한 필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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