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을 꿈꾸었던 추억

한 때 시인을 꿈꾸었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아내의 교사 봉급만으론 살기 어려워 호구지책으로 법원에 입사 했습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란 옛 말이 그대로 적용된 삶이었지요!
법원 근무하면서도 꿈을 잃기 싫어 85년부터 한번씩  글을 썼는데 우연히 제 글을 읽은 어느 판사님의  권유로 법률신문에 '판결문 타자기'란 제 글이 처음 실렸습니다. 1990년도로 기억합니다. 당시 법률신문은 판,검사 변호사 중에서도 묵직한 중견 법조인의 글만 싣던 시절이지요!
일반직의 한계는 미미하기만 했지만 저의 넋두리 글은 꾸준히 실렸습니다. 처음부터 갈무리를 잘 했어야 했는데 미관말직이던 몇 년간은 발표된 시조차 잊고 지내야 할만큼 업무에만 시달리던 때이기도 했습니다.  우연찮케 제 글을 읽었던 옛 사람이 제 글 중 몇 편을 지금도 기억한다며 안부를 전해왔습니다. 평론지에 실린 사실도 늦게야 알았습니다. 그 중에 몇 편 입니다. 



<어느 헛된 죽음 >

 

살아 非情 알았더면

죽어 섧지 않을 것을

 

옳아! 세상은

살아, 필요한 사람

만나야 하는 것을

 

살아서 보석되고

죽어서 비석되면

덧 없이 살다간 뿐!

 

옳아, 세상은 죽어 寶石

되어야 한는 것을

 

이악 할수록

虛妄한 세상살이

슬픔조차 헛되지만

 

그래도 믿음으로

담담하게 살아야지

 

옳아! 저승보다 어진세상

둥글둥글 살아야지!

 

 

동료의 죽음을 보고 1991. 3. 11.자 법률신문 발표

 

金 永 石 <마산지방법원>

 

<詩評>

法律新聞 91.3.11자에 실린 金 永石 詩人<어느, 헛된죽음>은 시상이 너무 급박하게 전개된다. 삶과 죽음이란 양극점에서 抒情的 自我는 세계와의 조화를 획득해 내고 있음을 읽어낼 수 있다. 그러나 그 조화로운 삶의 구축은 쉽게 무너져 내릴 허술함을 동반하고 있다.

 

왜 이 시에서 이러한 문제가 발생 했는지 진단해 보고자 한다.

<어느, 헛된죽음>7연으로 구성되어 있다.

1연은 시의 도입부에 해당되며 하나의 觀念的 命題提示한다. “삶은 비정하며 그 비정함이 삶의 본질 이기에 죽음은 슬픔일 수 없다.”는 허무주의자의 일반적 認識의 진술이다.

 

2연은 삶에서 필요한 사람을 만나면, 삶은 비정일 수 없다.”1연의 전제에 대한 깨달음의 역설적 진술이다.

 

3연은 보석비석으로 대변되는 일반적 삶의 무상성을 들어 다시 2연의 진술을 부정한다. 4연은 다시 깨달음의 진술이다. 3연의 일상적 삶의 형태를 부정하여야 보석같은 그런 삶을 살수 있다는 것이다.

5연은 그러나 삶은허망하다는 것이다. 4연까지가 자기틀에서의 삶과 죽음의 파악이라면, 5연은 인간관계 속에서의 세계인식이다. 왜냐하면 이악이야기인데 이것은 기본적으로 상대자가 있을 때 가능한 화법이기 때문이다. 6연은 다시 5연의 진술을 뒤 엎는다. 7연은 다시 깨달음의 진술이다. 그래도 사는 것이 죽는 것 보다 낫다는 일반적인 인간의 진술이다.

 

이 시는 逆說論理를 갖고 있다. 삶에 대한 서정적 자아의 인식은 否定-肯定-否定-肯定의 형태를 띠고 있다.

하나의 인식에 대한 부정과 긍정은 본질적으로 전행된 인식단계 보다 더 높은 인식이 있을 때 가능해진다. 이 시에서는 그러한 인식단계의 상승을 보여주는 어구로 옳아라는 감탄사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상투화 된 비유(비석,보석)와 관념어(비정,필요한 사람,허망,슬픔,믿음,어진세상)로 서정적 자아가 갈구한 어진세상은 하나의 공염물에 지나지 않는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어진세상을 서정적 자아뿐만 아니라 독자에게까지 공감하게 만들 수 있으려면 , ’어진세상이니 믿음이니 하는 동어반복으로는 어림도 없다.

어진지살만한 세상인지 구체적인 진술과 아울러 그 구체적 진술을 작자 자신만의 언어 (참신한 언어)로 표상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이 시가 리듬의 급박함을 보여주는 것은 죽음과 삶이란 문제를 극단으로 처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형식논리학에서 AA , BB 라는 식으로 하나의 명제를 단선적으로 처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 A 이면서 B일 수 있다는 가정은 왜 못하는가?

 

그럼에도 이 가 시사 하는바는 일반인의 접근성이 어려운 법조라는 영역에서 인간적 따스함을 지닌 법률가 시인의 공감각에 울림이 있기 때문이다. 형식을 떠나 죽음이 곧 삶일 수 있다는 전제를 설정하고 동료의 죽음을 인식했다면, 좀 더 좋은 시가 될 수 있었을 아쉬움이 남는다.

 

< 시문학회 평론회보 3월의 問題詩 에서 발췌 >

 

 

<어 머 니>

 

팔베개 하나로

삼년을 키우시고

 

기도와 念願으로

평생을 먹이신

 

이제는

늙고, 외로워진 어머니!

 

겨울바람

차가울 때

가슴으로 덮으시고

 

여름살림

어려울 때

별빛보며 우시더니

 

이제는,

들고 衰弱해진 어머니!

 

세월을 등에 업고

자식위해 懇求하며

 

청청 하시던

빨래힘 어디가고

 

수저를 잡으실 때

손가락 떠시나니-

孤寂한 여생

먼 산만 응시하며

주름이 고우신

哀痛하신 어머니!

 

1991. 5. 9.자 법률신문 발표

 

金 永 石<마산지방법원>

 

 

<떠 난 자 리>

 

진종일

헛된 마음

달래 보려고

그럴사한

노래 찾아

불러도 보고

까닭없이

전화기도

들어보지만

댕그랑-

댕그랑-

時間

외롭기만 합니다.

 

터 잡아

사노라면

어디고

이 있고

으로

사노라면

어디고

내 터인데

 

거침없이

오가던

터 잡은 그 자리가

오늘은

황량스레

主人이 없습니다.

 

참소리

허튼소리

캐묵은 밀담으로

歲月

까먹던

오붓한 그 자리엔

 

가루처럼 바스라진

孤寂만이 쌓입니다.

 

1991.년도 일자 불확실. 발표

 

金 永 石<마산지방법원>

 

 

< 맛 잃은 세상 >

 

하늘이

거대한 입을 열어

말을 한다면

사랑하라!”

고작

이 뿐이겠습니까?

 

파도가

노한 팔을 벌려

춤을 춘다면

이리 휘청 저리 휘청

술취한 아리랑

고작

이 뿐이겠습니까?

 

귀에 담지 않아도

신랄하게 전해주는

인사치레

어떻게 살았니?”

피가 말라버린 이 땅에서-

 

전율이 회오리 치도록

오염된 人間

 

토악질로

등허리가 휘어버린

낙동강 향해

 

사랑하라

이 한마디 남기고

하늘인들

숨을 거두겠습니까?

 

이미

맛을 잃은 강 뚝에서

맛을 잃은 산 위에서

전율만 회오리치는

세상을 향해

 

하늘이 입을 열면

사랑하라!”

어찌

이 뿐이겠습니까?

 

1991. 6 .6.자 법률신문 발표

 

金 永 石<마산지방법원>

 

 

 

 

 


 

 

by 마음 | 2019/06/28 10:35 | 삶의 향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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