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교사(反面敎師)

나를 찾아라

늘 그렇듯이 90분의 아침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니, 식사 준비하는 아내의 표정이 평소보다 밝다. 뭐 좋은 일이 있느냐고 물으니, 나이가 들면서 내가 많이 착해져서 그런단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싶은데,

새벽에 일어나 주방에서 물 한잔 마시고 주섬주섬 등산채비를 하다가 세탁기 옆에 두툼한 쓰레기봉투가 보여 얼핏 어제 버려야 하는 분리수거 쓰레기임이 분명하여 나가는 김에 봉투를 들고 나와 수거함에 버린 것뿐인데, 아내가 저렇게 좋아하다니... 이제부터 더 착하게 살아야겠다!  

생텍쥐페리 소설 어린왕자에서 지구를 찾아 온 어린왕자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좋아야 세상이 아름답고, 올바르게 볼 수 있는 마음이 없다면 좋은 관계는 없다"는 명언을 남겼는데, 결혼 40년이 지난 이제야 아내에게 나를 제대로 보게 한 모양이다.<2020. 8. 26.>

젊은 시절의 나는 이기적 생각으로 말하고 행동을 하여 교만함이 많았다. 그러다가 10년쯤 전에 나를 찾게 한 계기가 있었는데,

그 얘기는 이렇다.

자그마치 2년 가까운 세월, 틈만 나면 on-line 바둑을 두기위해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동안 20년 넘게 기르던 제주 문주란()에 물 뿌리는 정성마저 잃고 말았다정성(精誠)을 잃은 것은 나를 잃은 것이다.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바둑에 빠져 나의 존재가 얼마나 어리석은 지를 시험하는 동안 나는 세상 밖의 시간을 잃었고발전적 사유(思惟)의 시간을 잃었고독서와 글쓰기도 잃었다. 이기겠다는 승부욕은 너그러움으로 채워도 모자랄 평상심도 잃었다.도대체 人生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살펴 볼 겨를도 없이 집에만 오면 내방에 쳐 박혀 바둑을 두고 있는 나를 보는 아내의 눈이 슬픈 빛으로 바뀌었음도 문득 알게 되었다. 아내의 신뢰도 잃었다!

늙어도 진취적 사고(思考)를 배우면서 품위 있게 늙기로 작정했던 다짐은 어디가고 한 순간 이기고 지는데 일희일비(一喜一悲) 하며 내 삶의 질은 무던히 황량해졌다.

그렇다고 바둑을 원망 할 수도 없다. 바둑을 통해 절제를 배웠어야 하고 실력의 차이를 인정하는 자신의 분수를 알았어야 하고 과유불급의 지혜를 얻었어야 하는데 짧은 시간에 많은 묘수를 습득하려 나는 너무 승부에만 집착했던 것 같다. 지나고 보니 다 부질없다!

내 나이에 바둑이란 즐거운 오락이고 적당한 긴장이고 승부를 떠난 마음의 휴식으로 기의 충전을 받는 것이 목적이어야 하는데 승부를 향한 나의 집착은 오히려 정신적 집중력과 마음의 중심을 잃기만 했다.

새벽운동으로 산을 오르며 나를 돌아보니 명분 없이 잃은 것이 시간만은 아니지만 지금이라도 잃은 것을 아쉬워하기보다 오지 않은 시간의 나를 찾아야겠다. 세상에 머무름이 잠깐임을 변명하지 않기 위해 하루하루 정진하고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여 후회가 없는 가벼운 삶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나를 다그치는 나만의 회개(悔改)일 뿐, 진정 바둑의 경지를 아는 다른 기우회원께는 감히 전할 바는 아니다.

다만, 부끄러운 글을 공개함은 나와 같은 몰지각으로 바둑에 빠지는 일부 기우회원들께

승부에 몰입하는 집착을 범하지 말 것을 권유하고, 느긋함과 무장 무장한 느림의 미학이 진정한 노후의 아름다움이란 화두를 제시하자는 것이니 나의 회개를 반면교사(反面敎師), 컴퓨터 게임을 하던 바둑을 두든 신선한 오락의 도()로 즐기시기만 바랍니다."  이 내용이 10년 전 나의 회개였다.

다시금 반성의 글을 꺼냄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아직 내게 미숙함이 많기 때문이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건만 보이는대로 사람을 판단하려는 무지를 반성하며 정성껏 가까운 이웃을 이해하려 노력해야겠다. 어차피 여행도 금지되고 가족들끼리만 부대끼는 코로나 시대에 사는 동안 지극히 작은 행동이라도 마음으로 하면 모든 관계가 좋아질 수 있음이 기회 아니겠는가! 

 

 

by 마음 | 2020/08/26 15:28 | 삶의 향기 | 트랙백 | 덧글(0)
트랙백 주소 : http://yskim.egloos.com/tb/2242855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