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존경

<나의 자화상>

법원 형사과 재직 시, 재판부에 전달하기 위해 자주 접하는 문건중 하나는 재판기일을 목전에 둔 피고인이 범죄 사실을 뉘우치고 가정형편상 자신의 가족을 부양해야하니 선처를 호소하는 진정서이다.

재판을 앞둔 피고인으로서는 오매불망(寤寐不忘) 감형과 석방만이 구원이므로 그 절절함이란 어떠한 순애소설보다 더 가슴을 울릴 사연도 많다. 그런가 하면 피해자로서 피고인에 대한 처벌을 엄하게 해 달라는 탄원 또한 적지 않다.

이에 비해 피고인의 가족이 피고인을 용서해 달라는 진정의 수는 적은 편에 들어간다. 그만큼 가족의 사랑이 없어서가 아니라 진실로, 가족의 사랑을 받는 가장이라면 애초에 범죄를 저지르지 않기 때문으로 분석했고, 가족간의 사랑은 불의와 불법 등 범죄예방에서도 얼마나 위대한 힘을 발휘하는지의 경험을 형사과 재직 중에 한 셈이다.

그런데 진정서 혹은 탄원서, 가족의 편지 서두에 기본적으로 시작하는 어휘나 단어가 미묘하지만 확연한 차이가 있다.

피고인이 교도소에서 작성한 진정서의 첫 문구는 백이면 백 거의 동일하게 존경하는 판사님께로 시작 한다.

작성자 본인의 진위(眞僞)여부는 모르지만, 법의 한계적 재량과 판사의 무한적 재량을 혼동하고 있는 그들로서는 정말 형사재판장에 대하여 언감생심 다른 표현의 단어를 생각조차 못할 만큼 존경의 대상임은 틀림없다.

그런데 피고인의 처벌을 강력히 원하는 피해자의 탄원서에는존경하는 재판장님이란 문구가 생략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냥 판사님이라거나 담당 재판장님이라고 서두를 꺼내기도 하고 때로는 이름을 직접 사용하여 “ooo 판사님이라고 시작하는 경우이다.이때의 탄원인은 그만큼 절실함이 떨어졌고 피고인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과 증오만 남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심지어는 존경의 의미와는 전혀 무관하게 판결결과를 지켜보겠다는 사뭇 으름장의 내용조차 들어있는 문구를 보기도 했다. 사람마다의 형편이 다르니 글의 내용도 그렇게 다르기만 했다.

어쨌거나 존경(尊敬)’이란 단어는 그 대상이 고귀하고 우러러 받들고 싶은 역사적 인물이든가, 형사 재판장처럼 당장의 준엄한 자유 박탈권을 가졌을 때 대상이 되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존경은 다분히 수직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수직적 존경이 요즘의 사회에서는 거의 사라지고 있다. 대신 가장 많이 익숙하며 부적절하게도 사용되는 말이사랑이라는 말인 듯하다.

아니사랑이란 말은 오히려 남용되고 오용되는 일조차 적지 않아 왠지 잘못 사용되는 듯 함에도 누구하나 부정적인 이유를 달지는 않는다. 그만큼 철학적이든 종교적 이념이든 사랑이란 결국 좋은 말이기 때문일 것이다.

졸업을 앞둔 학생들에게 그동안 제일 고마운 분이 누구냐고 묻는 설문에 대부분 부모님, 선생님이라고 대답했고 그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는 설문에 80%정도가 엄마 아빠 사랑해요!” “선생님 사랑해요!” 이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사랑은 표현이고 존경은 마음이기에 틀린 말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왠지 사랑해요!” 라고 말하는 것 보다는 엄마 아빠 고맙습니다!”“선생님 존경합니다!”가 더 적절하지 않을까하는 뒷맛이 남는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고,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사랑하는 것이야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느껴지는데 자식이 부모에게, 학생이 선생님에게 사랑한다!” 라는 말에 다소 갸우뚱해지는 이유는…….내 보수적 사고의 경직성 때문인가? ‘사랑이란 그 대상을 아끼고 위하며 한없이 베푸는 내리사랑이 맞을 것 같고, 또 사랑이란 말의 뜻에는 베푼다는 의미에 조금은 더 무게가 실린 듯하기에 그렇다. 자식이 부모에게 베푼다? 고 할 수는 없으므로, 애틋한 마음의 표현이라면 사랑하는 마음보다 감사하고 존경하는 마음에 무게가 실렸다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나름대로 해 본다.

법원에 접수되는 진정·탄원서의 대상인 판사에게는 사랑하는 판사님!”이란 표현이 전무한 것은 진심이든 아니든 아끼고 베풀 수 있는 여력이 없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사랑한다는 말을 감히 쓸 수 없는 것을 보며 더욱 그렇게 느끼기도 했다.

살아오는 동안 내게 힘이 되고 나를 극진히 여기던 가족은 모두 고인이 되셨다. 나를 가장 많이 사랑해 주셨던 할아버지가 그렇고 어머님이 그렇다.

가족이 아닌 경우로 사심없이 나를 이해해 주시던 분으로 직장생활에서 존경했던 법원장님이 한 분이 생각난다. 창원법원 재직 시 법원장님께 결재를 받으러 갔을 때 적십자사의 협조 요청으로 직원들에게 헌혈광고를 해야 하는데 자발적으로 동참 할 것을 조용히 권면하시고 당신부터 먼저 헌혈차에 오르시든 박영무법원장님이시다. 그 분과는 법원장과 직장협의회 대표와의 관계이기도 했지만 테니스를 함께 치며 인간적 친밀감도 많았다.

내가 법원 일반직으로의 한계를 느끼고 법원을 떠날 결심을 하고 당시 사법연수원장으로 계시던 그 분께 하직 인사를 위해 찾았을 때, 처음엔 나의 위험한 상황을 믿지 않으시고 한사코 만류하셨지만, 여러 정황을 알아 보시더니

조용히 내 손을 잡으시고 설마 했는데, 법원행정처 수뇌부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나를 거부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쓸쓸히 내 어깨를 두드려 주시던 그 분의 모습을 떠올리면 그 분은 분명 존경의 대상이었지 사랑의 대상은 아니었다. 그 따뜻하고 존경했던 분을  늘 기억하면서도 10년도 넘게 연락조차 못하고, 안하는 나의 인간성은 경솔하기만 하다.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프랑서 현대 사상가이자 시인(詩人)로제 카이유의 일화를 보면,

한 소경이 미라보다리 위에서 구걸을 하고 있었다.

저는 태어날 때부터 소경입니다.”라는 글자판을 목에 걸고 있지만, 행인은 무심히 지나가기만 할 뿐 동정을 표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 모습을 안타깝게 여긴 로제 카이유가 그 소경의 목에 걸린 글자판을 뒤집고 몇 자를 적어주며 다시 목에 걸게 했다.

하루에 10프랑밖에 구걸하지 못했던 그 소경의 수입은 그 후 몇 배가 넘는 돈을 얻게 되었다. 로제 카이유가 적어준 말은 머잖아 봄은 오건만, 저는 봄을 볼 수 없는 사람입니다.”였다. 메마른 사람의 가슴을 따뜻하게 움직이는 한 줄의 문장! 그 글의 힘으로 소경의 궁핍함을 면하게 해준 인정 많은 이 시인은 인간과 (), 일반미학의 저자이기도 하다.

이렇듯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감동을 전하는 글은 시()가 되고, 지적으로 더 세련되게 글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은 좋은 詩人이 된다.  

앞으로 얼마동안 내 일을 할지 알 수는 없지만 법무사의 일도 사람과의 관계이므로 어려울 때 찾아온 사람에게 시인의 마음처럼 온화하고 따뜻함을 전해줘야 한다. 내게 그럴 여력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67세인 내 생일을 맞이하며 더 많이 노력하고 더 많이 사랑할 것을 다짐해 본다.

2020. 10. 22.(음력 96)

 

법무사 김 영 석

 

by 마음 | 2020/10/23 14:34 | 삶의 향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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