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망령

내 청년의 때

60년대 70년대를 오롯이 서울에서 살았건만

서울은 왠지 낯이 설었다

부유하게 살던 고향을 혁명으로 잃고

좌절을 극복하려 안간힘을 쏟던

아버지의 잔재가 너무 많이 남아

일상이 늘 초라하기만 했던 곳

 

서럽도록 고독할 즈음엔

도봉산 신선대 혼자 올라 고함질렀고

나만은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려

비굴한 정치인을 미워하며

새벽마다 남산 국립도서관을 결기로 걸었다.

 

꿈조차 혼란했던 청춘의 끄트머리 시절

건달의 친구들과 낙원동 골목막걸리에 취해 객기 휘젓기도 하고

장발족 단속으로

쑥대머리 가로 세로 한 줄씩 바리캉으로 밀린 채

훈방으로 풀려나야 했던 굴욕의 시절도 그때였다.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러셀의 명제를 읽고는

내 인생 무엇인지 몰라 터덜터덜 걸었던 경복궁 돌담 아름하고

중앙청 지나 안국동 풍문여고 앞 육교를 건너 신민당사 게시판에 걸린

독재타도 기사를 읽다 잠복중인 형사에 잡혀

쪼그리고 앉아 구둣발에 채였던 종로경찰서 선명하다.

 

가끔씩

광화문 뮤직 박스 커피 향에 코 박고

성냥개비 탑을 쌓으며 연인을 기다렸지만

바람만 맞았던 그 다방이름, 초원이든가 모란이든가

 

그렇게 몸도 시리고 영혼마저 방황했던 요지경 서울이 싫어

결혼 후 아내의 소담한 고향에 40년 정착 하였는데

딸이, 우면산 아래 양재천 흐르는 온화한 곳에 가정을 꾸렸고

관악산 서기어린 탯줄을 단 내 혈육 태어나니

그 낯설기만 했던 기억의 편린들이

낭만이 되고 추억이 되어

KTX 타고 딸네 집 가는 동안 그리움의 서울이 된다.

어쩌랴, 이 망령됨을!

 

2020. 12. 30.

 

 

by 마음 | 2021/01/04 16:14 | 隨想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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