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님.

<하늘나라 용돈>

장모님을 마지막 뵙기는 별세하시기 20여 일 전이였다.

내가 서울 딸집에 한 달에 한 번 정도 가다가 요즘은 손녀가 눈에 밟혀 더 자주 간다. 보통 금요일 저녁에 도착하고 일요일 오후에 내려오기를 반복하다 보니 실제 시간을 내는 건 토요일뿐인지라 1시간 거리의 처남 집에는 특별히 마음먹고 가든가 아내나 딸이 가자고 하기 전에는 선뜻 가기가 쉽지 않아 두어 달에 한 번 정도 장모님 찾아뵙는데 갈 때마다 장모님의 건강이 쇠약해져서 간병하는 처남 내외나 처제의 수고가 늘 안쓰럽기만 했다.  

지난 6월 초순 그 날은 딸이 무슨 마음인지 할머니한테 갔다 온지 며칠 되지 않았음에도 자기를 키운 할머니가 정신 또렷할 때 자기의 딸을 한 번이라도 더 보여야 한다며 서두르는지라 엉겁결에 같이 갔지만, 나로서는 꼭 필요한 방문이기도 했다.

장모님은 그 날 잠시 안긴 증손녀가 발버둥 치자 증손녀의 양말만 꼭 쥐고 혼신의 힘으로 이 어린 생명 어디서 왔습니까? 하나님이 보내주셨으니 이제 자신의 기도는 다 들어 주신 것이라며 평생 성경 읽고 찬송하며 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기도를 하시고 이제는 마지막으로 당신의 생명을 빨리 데려가 달라는 절절한 통성의 기도를 하셔서 모두 울컥하였는데 나는 그때 장모님의 기도가 정말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걷잡을 수 없는 울음보가 터졌고 결국 예감대로 그 기도는 장모님의 마지막 육성기도가 되었다.  

그렇게 당신께서 간절히 소망하신 천국을 가셨다는 소식을 아내에게서 듣는 동안 나도 모르게 눈이 감기고 전율이 회오리치듯 비통과 충격에 떨어야 했고 세상의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예견했던 일임에도 어떻게 이런 아련함과 막막함이 스미는가!  

결혼 후 40년 동안 한 지붕과 이웃에 살며 직장 생활하던 아내를 대신해 내 딸들 유년기를 모두 키워주셨던 장모님께서 7194세를 일기로 별세하셨다.

장모님 장례식은 문상객을 받지 않고 가족들만으로 조용히 치르고 장모님 화장한 유골은 장인어른의 유골 화장과 함께 생전 즐겨 가시던 경관 좋은 곳에 뿌려드리기로 했다.

거동이 아무리 불편해도 요양병원 입원은 허락하지 않으셨던 장모님은 가끔씩 섬망(譫妄)에 빠질 때도 있었지만 주장이 뚜렷하고 생각에 흐트러짐이 없으신 분이셨다. 그런 장모님이 내게 당부하신 게 있다. 당신의 사후에 영혼이 자유롭고 싶으니 성냥갑 같은 묘지를 장지로 하지 말라는 말씀과, 장인어른 모신 공원묘지에 묘비석이나 세우고 땅에 묻으면 자손들이 이 땅을 찾아와야 하는 부담만 되니 영혼 떠난 육신은 그냥 화장해서 뿌리라는 말씀을 하신 것이다.  

장모님이야 그렇게 편하게 말씀하시지만 듣는 아내와 나는 뿌리는 장소 또한 자손들이 기억해야 하므로 그 장소도 미리 정해야 하는 부담이 없지 않았는데 3년 전쯤 장모님의 고향 인근에 우연찮은 기회로 묘지로 쓸 만한 땅을 구입하게 되었다.

그래서 내친김에 장모님의 장지를 미리 결정해야 될 것 같아 주말이면 늘 그렇듯 장모님 모시고 온천에서 목욕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낙동강 변을 따라 자연생태 그대로의 육림이 있는 곳을 거니며 내가 어머니 나중에 천국 가시면 남은 우리는 어느 장소에서 어머니를 기억할까요. 혹시 어머니 고향인 개천면에 좋은 곳이 있습니까?”라고 묻자 장모님은 답을 정해 놓은 듯이 고향이지만 아무도 살지 않고 교통 불편한 곳에 뭣 하러 갈 거냐? 화장해서 바로 이런 강가에 뿌리면 흘러가는 강도 보고 너희들도 즐겁게 놀이 삼아 올 수 있으니 나도 마음이 평안할 것 같다며 추념이든 기억이든 평화롭게 모일 수 있는 좋은 날 언제든 당신을 기억하라며 그때 장로님도 함께 화장해서 뿌리라며 완곡한 당부라고까지 하셨으므로 서울에서 별세하신 장모님의 인자를 그때의 소망대로 해 드린 것이다.

그리고 주일예배는 장모님이 평생 다니시던 교회에서 유족 모두가 참석하여 장모님이 즐겨 부르시던 천국 소망 찬송으로 예배를 드렸다. 가족과 목사님 외에는 누구에게도 장례를 알리지 말라는 말씀도 따랐고, 장모님 사후에 교회에 헌금하라고 알려주신 통장은 처남이 미리 준비한 수표, 심지어 일부 받은 부의금(賻儀金)까지 헌금함에 넣는 것으로 모든 장례절차를 마쳤다. 장례기간이 장마철이었음에도 날씨도 좋았고 예배 일자 등의 순서가 각본을 짜 놓은 듯이 순조롭기만 하여 하늘도 장모님의 장례를 도왔다.  

그렇게 장례를 치르고 일주일 지났는데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머니 유품을 정리하는데 어머니가 오빠 집에 갈 때 오빠에게 맡긴 생활비와 병원비 통장과 문서함에 돈이 남았단다.

나는 당연히 그 돈은 오빠 몫이니 조금도 달리 생각하지 말라 하였는데 처남과 처수는 그 돈은 어머님의 돈이고 문갑은 손자나 손녀들에게 용돈 주시던 지갑과 사진 보관함이니 아들 딸 모두에게 공평하게 나눠 주는 게 맞을 것 같다는 결정을 하고, 각 자의 통장으로 입금을 했으니 손자들의 용돈은 각자 알아서 챙겨주라는 것이다. 적지도 않은 돈이건만 그런 결론을 내리고 심지어 자기의 몫은 어머니를 제일 오랫동안 모신 나와 아내에게 주는 게 도리라며 오빠의 몫까지 보냈다는 전언이다.

장모님의 유일한 아들이자 집안의 연장자인 처남의 의연함을 보며 과연 장모님의 곧은 삶은 자녀에게도 그대로 선한 영향력을 끼쳤음에 가슴이 먹먹하다.

덕분에 장모님이 하늘나라에서 보낸 용돈을 나도 받았다.

2021. 7. 10

 

 

by 마음 | 2021/07/12 11:50 | 삶의 향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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