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있을 동안 먹을 반찬 만들 거라며 어시장에 장 보러 간다는 아내의 얘기를 건성으로 듣고 토요일 스포츠중계 보기에 열중하고 있는데 아내로부터 빨리 주차장으로 내려오라는 다급한 목소리의 채근 전화가 왔다. 짐이 많으면 으레 날 불러 내리는 아내인지라 응원팀 공격 장면도 못보고 내려간 주차장엔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아내를 다그치는 모습이 눈에 띈다. 웬일인가 싶어 아내에게 상황을 묻자 아내가 짐을 내리고 빈 주차칸에 주차하려니 앞차가 기아 중립을 해놓은 채 가로막은지라 그 차를 밀었는데 때마침 모퉁이에 배달 온 오토바이 한 대가 그 차에 부딪히며 와당탕 넘어갔다는 것이다. 그 오토바이 주인이 아내를 다그치는 중이었고 슬쩍 민 앞차가 오토바이를 건드릴 줄 생각지도 못했던 아내인지라 오토바이 넘어지는 소리에 당황한 아내는 어찌할 줄 몰라 연신 라이더에게‘미안합니다.’를 연발하다가 내게 상황설명을 한 후 먼저 가겠다며 짐을 들고는 꼬꼬댁하고 올라가 버리니 결국 내가 사고처리를 해야 되는 입장이 된 것이다. 그런데 요즘의 라이더! 코로나 시대에 한창 주가가 뛴 바쁜 배달원 아닌가, 더구나 하루에 20만 원 수입을 거뜬히 올린다는 오토바이 라이더! 나보다 큰 키에 우람한 체구의 라이더는 기분이 나쁜 듯 연신 오토바이 여기저기를 살피면서 아내를 다시 내려오라고 하기에 남편인 제가 대신 해결하겠으니 제게 말씀해 달라하자 오토바이가 넘어지면서 스크래치가 생겼으니 배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어떤 부분에 손상이 갔는지 확인해 보라 하니 발판 밑바닥의 가로로 생긴 몇 센티 스크래치를 가리키는지라, 내가 세워둔 오토바이가 넘어지면서 스크래치가 생긴 것이라면 부위도 맞지 않고 더구나 발판 밑은 운행 중 말고는 넘어지면서는 생길 수는 없는 자리가 아니냐고 또박또박 대응을 했다. 그러자 검은 헬멧에 검은 선글라스까지 써 위압적으로 보이는 이 라이더, 단박 ‘그렇다면 신고할까요?’ 묻는 게 아닌가! 내가 어디에 신고하느냐고 되묻자 경찰을 부르겠다는 것이다. 완전 능수능란하게 밀어붙이는 오토바이 라이더를 보며 부아가 치민 나도 그렇게 하시라고 대답하니 라이더 느긋한 표정으로 씩 웃으며 경찰에 신고하였으니 아내도 내려와서 경찰이 올 때까지 기다리라는 것이다. 순간 나는이 라이더 전직이 경찰출신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파트 주차장에서 일어난 이만한 일에 경찰까지 부르는 경우는 상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연 순찰차가 출동하였고 2명의 경찰관 중 한 명이 신고자인 라이더와 한참 얘기를 하는 동안 또 한 명의 경찰은 적당히 수리비 주고 해결하는 게 좋은 거 아니냐며 귀찮은 듯한 어투로 아내를 겁박하니 아내는 내게 했던 그대로의 설명을 경찰관에게 다시하며 도대체 무슨 큰 사고라고 경찰까지 출동하고 난리냐며 신경질적 반응으로 경찰에 대한 적의감까지 드러냈다. 라이더의 진술을 듣고 다가온 경찰관의 말인즉 우리는 운전 중인 차량이 세워둔 오토바이를 받았다는 교통사고 신고를 접수하여 출동한 것인데 가해자와 피해자의 진술이 너무 다르니 확인을 위해 아파트 관리실에 가서 C.C.T.V를 같이 보자는 것이다. C.C.T.V 화면은 아내의 말 그대로였고 아내의 차량이 시동이 꺼지지 않은 것은 맞지만, 오토바이와 직접 부딪친 것은 아내의 차량이 아니라 세워 둔 중간 차량을 밀다 오토바이가 넘어간 것이 맞으니 교통사고는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고 그 외 문제는 당사자끼리 해결하시라는 말을 남기고 경찰은 가버렸다. 라이더의 엄포는 대단했다! 곧 오토바이 수리비를 청구하겠다며 전화번호와 주소를 요구하여 얼른 알려주고 주차장을 벗어났지만 참으로 고약한 일을 겪는다는 불쾌함은 가시지가 않는다. 어찌되었든 오토바이를 넘어트렸으니 도의적으로 얼마만큼의 금전배상은 하려했던 처음의 마음은 사그라지고 경찰까지 부르며 아내를 겁박한 라이더에 대한 오기가 생겼다. 얼마 후 알려준 번호로 수리비 금액 400,000원이니 아예 오토바이 수리점으로 송금하라는 문자가 떠서 다시 통화하며 수리내용이 뭐냐고 묻자 스크래치 부분이 아닌 오토바이 핸들에 이상이 생겨 그렇다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답하는 이 라이더! 나로서는 신중히 대응할 필요를 느껴 관리사무실로 다시 뛰어가 C.C.T.V 내용을 한 번 더 봤다. 오토바이가 넘어지는 과정을 자세히 보니 오토바이 뒤에 실린 박스형 백팩가방이 바닥에 먼저 닿았고 핸들은 들리듯 바닥에 닿았으므로 핸들에는 충격이 갈 리가 없었다. 설사 충격이 갔다 해도 그 정도로 핸들에 이상이 생긴다면 애들 장난감만도 못한 수수깡 핸들이란 말인가! 즉시 문자를 날렸다. ‘수리비 청구를 하려면 영수증 첨부하여 소송을 제기하시기 바랍니다. 덤터기가 너무 심해 그냥은 줄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송달주소로 나의 법무사 사무실 주소를 찍어줬다. 주민등록상 아내의 현 주소는 서울 딸네 집 주소였으므로 달리 알리고 싶지도 않았고, 내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사람이란 걸 알려줄 필요도 있어 의도적으로 송달주소를 사무실로 한 것이다. 10 여분 후 한 번 더 문자가 왔다. ‘아 법무사였군요! 그러니까 경찰이 출동해도 위축되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군요! 그럼 소송으로 청구하지요.’ 였다. 이 라이더 주차장에서 오토바이 넘어진 사실관계를 전부 알고 있었으면서도 차량으로 들이받았다는 허위신고로 경찰까지 출동시킨 인물이다. 단디 해야겠다.
2022. 5.
첨언: 열심히 살아가시는 라이더 분들에 대한 폄훼 의도는 전혀 없음과 이 일이 발생한지 몇 달이 지났건만 아직까지 소송이 들어오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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