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하늘이어라!<> 결혼 한지 45주년을 맞이하여 특별히 의례적인 행사를 계획한 것도 아닌데 마침 막내처제가 코르나 여행제한도 풀렸으니 언니들 모두 자기 집에 와서 여자들만의 시간을 보내자는 제의를 하자, 처제들 모두 옳거니 하고 미국을 가기로 하니 나로서는 결혼 45주년 기념이라는 타이틀과 칠순 기념이라는 명분까지 넣고 한 달간 아내를 보냈지만, 실상 처제의 입장을 생각하면 이렇게 기념을 운운할 여행 성격의 미국 방문은 아니다. 처제는 20여년 전 제부의 급작스런 사망후 외롭고 힘든 미국생활을 하며 유일한 혈육인 딸을 처제 혼자 키워 딸이 동부의 명문대 석사에 귀한 자격증까지 지녔고 직장도 든든하여 이제 겨우 주름피고 제대로 살려는데, 딸 아이가 교제하던 남자를 소개하며 결혼을 하겠다며 돌발적 선언을 하니 처제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형편의 남자여서 처제의 말인즉 ‘내 눈에 흙 들어가기 전에는 결혼을 허락하지 않겠다’며 딸이 결혼을 포기하지 않으면 35년 미국생활 청산하고 곧 한국에 나가서 살겠다.는 폭탄 선언으로 맞서는 형국이니 처제의 가정이 파탄이 나기 직전의 상황이 되었다. 30년을 서로 의존하며 지낸 딸과의 사이는 처제의 인생 전부였음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처제도 나이가 들어 혼자 지내는 게 쉽지는 않지만 이제는 홀로서기를 위해서도 딸의 결혼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데 목사 사모였던 처제인지라 신앙의 결이 맞지 않는 사위감에 대한 반발로 결혼을 결사반대하자 경제적 능력이 충분한 딸은 반대만 하는 엄마를 더 이상 설득이 안 된다며 별도의 살림집까지 마련하여 집을 나가 버렸으니 언니들의 입장에서는 저러다 막내가 독한 마음이라도 품을까 싶어 당분간 미국에 같이 있어줘야 해서 한 달간씩 가 있기로 한 사정이다. 참으로 난감한 입장에서의 미국 여행이다 보니 출발하기 전 아내의 한마디가 "언니 노릇하기 어렵다!"였다. 그 말이 연상되는 한시(漢詩)는 논어별재(論語別裁)로 "하늘이 하늘 노릇하기가 어렵다지만 4월 하늘만 하랴. 누에는 따뜻하기를 바라는데 보리는 춥기를 바라네, 나그네는 맑기를 바라는데 농부는 비 오기를 바라네, 뽕잎 따는 아낙네는 하늘이 흐리기를 바라네.” 하늘이 하늘노릇 하는 것도 어렵고, 사람은 각자의 생각으로 역경(逆境)과 순경(順境)을 받아들이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결국 자신이 살아 온 삶의 결론일 수밖에 없다. 어쩌랴! 처제의 입장을 이해는 하면서도 또한 성년인 처조카의 인생을 함부로 관여할 수도 없는데... 그래서 아내를 통해 편지 한 장 보냈다.
<정미처제 읽으렴!> 정미를 처음 본 1973년 12월24일은 내가 언니를 만나서 집에 인사를 하러 가기로 한 날이었다. 고속버스 터미널에 언니와 마중 나온 중학생이던 정미가 손을 흔들며 웃는 모습이 너무도 언니와 흡사하여 정겨웠고, 군복무 중 광주비행장에 면회도 언니와 함께 왔고, 장 목사와 결혼 후 이랑이를 잉태하여 만삭의 몸으로 귀국하던 배불뚝이 정미도 기억하는데 형부로서 보다 처음부터 정미는 내게 남다른 혈육의 정까지 지녔었다. 내가 이런 과거를 회상하면서까지 서두를 잡는 이유는 오늘 정미와 이랑이의 관계에 대한 얘기를 언니로부터 처음 들었기 때문이다. 정미의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유일한 혈육인 이랑이를 포기하고 싶다는 말을 했을까 싶어 내게도 충격이고 아픔이어서 언니 미국 보내면서 아버지 어머니 계신 ‘기억의 큰 나무’를 찾았다. 정미야! 하나님께 기도하는 영성은 정미가 더 뛰어났음으로 내가 기도얘기 하는 것은 외람되지만, 내 삶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인생을 위한 기도는 기도의 제목이 아닌 것 같다. 비록 자식일지라도 生의 전부를 놓고 정미가 원하는 바를 기도하여도 하나님인들 어떻게 각 사람의 인생 전부에 일일이 응답이 가능하겠어? 기도는 하되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는 게 옳은 기도 응답일 거야. 이랑이의 인생은 이랑이의 것이니 그냥 이랑이의 생각대로 살라고 놓아주면 어떻겠니? 이랑이의 생각을 바꾸고 정미가 원하는 바대로 바뀔 수 있는 상황이라면 기도를 포기하라는 말은 못하겠지만, 이미 타이밍이 지나간 기도라면 달리 이랑이의 운명적 선택을 바꿀 수는 없잖아! 또 과거 얘기다만 장 목사 수술실 가기 전 내가 장 목사와 나눈 대화에서 장 목사는 수술이 실패할 경우, 내게 정미와 이랑이를 부탁한다고 하여 나는 그렇게 하겠다는 다짐을 했고, 그 보호자로서의 부채는 지금도 그대로야. 때문에 정미와 이랑이는 내 딸들처럼 항상 내 마음에는 내가 보호자인거야. 정미 네 마음이 상하고 아파도 현실을 인정해 주는 게 엄마의 도리이고 역할이지 네 의견에 따르지 않는다고 부모 자식 간의 정리를 끊겠다는 말은 절대 해서는 안 되고 결코, 생각조차 품지마라! 내가 정미 너의 입장이 아니라하여 이렇게 되지도 않는 소리 하느냐고 힐문하겠지만, 얼마 남지 않은 우리 인생보다 그래도 더 많은 인생을 살아야 할 이랑이에게 마음에 옹이 박히면 안 되잖아! 그러니 한 번만 마음을 비우고 네가 이랑이 입장이 되어보렴. 나로서는 처제의 마음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이랑이의 의견도 존중할거야. 부디, 처제의 마음이 평안해지길 바란다.
2022. 10. 5. 마산 큰 형부 씀 .
|
연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