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배와 여교사의 만남(제 1편)

1. 不良輩와 女先生의 만남

법원 입사 16년, 법복 입고 재판입회 한지도 10 여년이 되어가니 입사동기들 중 퇴사하여 법무사 개업하는 동료도 생기고,
눈치 빠른 이들은 승진을 염두에 두고 기본서 다시보고 실무연구에 몰두하는 살벌(?)한 분위기도 감지되는 때라 나 역시 공직에 더 머무를 판이면 최근의 판례부터 살피며 눈 빠지게 공부에 매달려도 시원찮은 마당에 여름휴가를 떠나자는 마누라 등살에 고민을 아니 할 수가 없게 되었다.

마누라 지론인즉, 교육공무원도 아닌 법원공무원이 그만큼 공부해서 법무사 자격증 취득한 것만으로 족하지 뭣 하러 고생스런 공부를 또 시작 하느냐며 천하의 태평스런 태도이다.
승진을 하여 좀 더 좋은 지위에서 晝夜長川 늠름하게 근무하고 싶은 내 생각이 마누라에게는 알량한 봉급이나 받으며 공직이라는 현실에 안주하려는 기품 없는 소인배로 보이기라도 한단 말인지 ...

그래 딱 3일만 가자! 까짓 거 휴가 며칠 갔다 온다 한들 人生 달라질게 뭐 있다고...
마산에서 - 대전(갑사) - 진부령 - 설악산(12선녀탕) - 건봉사 - 통일전망대 - 삼척(환선동굴) 코스를 定하고 준비를 마쳤다. 준비라야 얼음박스, 등산화뿐이지만 마누라는 여행에 익숙한 터라 비상식량, 구급약까지 많이도 챙긴다 몇 년 전처럼 같이 갈 큰 녀석도 없고, 작은놈은 고입시생이어서 외할아버지, 할머니와 같이 학습에 전념 할 거라나! (자석, 엄마눈치 안보고 T.V나 음악 실컷 들으려는 수작임을 내가 모를 줄 알고 - - )

둘째 녀석이 아들만 같았어도 코를 꿰서라도 마누라 대신 산에 데려 다니고 바다 수영도 하며 남자다운 여행을 하련만 어쩌다 얄궂은 사상체질에 큰딸 놓고 7년 공들인 작품에도 아들대신 또 딸이 태어나고 말았다.
그래서 그놈 별명이 “불량품”이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 심지어 의사까지 뱃속의 그놈보고 아들이라 했는데 막상 딸로 나오니 아들이 正品인데 불량품인 딸이 잘못 나왔다 하여 지금도 거나하면 나는 불량품’이라 부른다.
그래도 녀석은 싫은 내색 없이 해죽해죽 웃어주는 품이 속 넓은 나를 닮았다고 내가 끔찍이도 좋아하는 둘째다.

대전에서 일박하고 원주를 지나 강릉으로 들어서면서 여행의 즐거움이 무르익을 즈음, 사십대 끝자락의 마누라가 실없게 웃더니 “당신! 나를 안 만났으면 이런 여행 할 수 있겠어요? ”라면서 선문답 하듯 물끄러미 보고 있을 때 나는 이미 追憶의 늪에서 헤매고 있는 마누라 속을 훤히 꿰뚫고 있었다.

그렇다!
아내를 처음 만난 것은 1973년 7월 25일 포항에서 영주로 가는 야간열차에서다.
포항 보경사에서 며칠 보내고 밑천 떨어졌으므로 원주 누님한테 가서 戰時 실탄 공급받듯 당연히 받아 쓴 용돈을 또 타러 가는 길이였고, 내친김에 치악산, 설악산 등반 계획도 해둔 터였다.
당시 야간의 피서 열차는 미어터지다 못해 문 난간에 매달려서 가는 경우는 예사였다.

지금처럼 안전에 문제가 있었다면 날마다 추락사고로 난리날 일이지만 당시의 열차는 속도가 별로 없었던 탓이었는지 그런 사고도 없었을 뿐더러, 열차는 수시로 연발, 연착 머무르는 일이 허다했으므로 거짓말 좀 보태면 한 정거장쯤을 쫓아가서 타도 될 만큼 느렸다.
그런 열차 한 구석에 자리를 차지하고 나만의 思念에 빠져 있을 때 여학생 세 명이 그 비좁은 틈바구니에서 합창을 하고 있었다. 낮은 소리의 합창 이였지만 제법 듣기에 좋았고 모습들이 밉지 않아서 모두들 관심을 쏟고 있었다.

어느 역에선가 열차가 숨고르기 하듯 쉬고 있을 때 답답한 사람들은 내려서 시원한 밤바람에 땀을 식히며 열차가 움직일 때까지 눈치만 보고 있다.
드디어 열차가 무거운 기적을 울리자 사람들은 잽싸게들 뛰어 올라타기 시작했고 빠른 걸음 정도의 속력을 낼 때쯤은 나 외에는 모두가 탄 듯하여 내가 마지막으로 탈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난간을 붙잡고 뛰어 오르지를 못하는 여자가 한 명 있었다. 아까 노래 부르던 학생중의 한 명이었다.

열차 속력으로 뛰어는 가면서도 올라타지 못해 절절하는 폼이 우습기도 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내가 떠 안 듯이 밀어 올리고 나니 탄력이 붙은 열차는 제법 속도를 냈고 나는 그 칸에 타지 못하고 마지막 칸에 아슬아슬하게 탔다.
그게 첫 因緣이었다.

내가 그 여자에게 건넨 첫마디는 핀잔 이였다.
“노래는 가볍게 부르더니 몸은 왜 그렇게 둔해요? ”
“ 아-니예 계단이 그렇게 높은 줄 몰랐어예!” 무지막한 경상도 사투리지만 젊은 처녀의 목소리에는 귀여움이 많았다.
열차 화장실 앞에서 몇 시간 얘기를 나누는 동안 서먹하지 않을 정도의 사이가 되어 영주역에서 헤어 질 때는 내 등산 계획대로 설악산을 같이 가기로 약속까지 했다. 구체적으로 7. 27. 오후 7시에 강릉역 광장에서 만나기로 하고 나는 원주로 향했다.

당시, 학교생활의 좌절로 꿈도 희망도 삭정이처럼 부러져 나간 내겐 차가운 냉소만이 내 表情의 전부 였을텐데도 고뇌에 찬 내 모습이 철학적 이미지를 풍긴다는 그 여자의 말에 가슴 한구석에 빛살 같은 온정이 스몄다.
강릉역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서울에 있는 산행 친구와의 약속을 변경해 가며 정신없이 이틀을 보냈다.

약속한 날! 모든 신경을 집중하며 그 여자를 만나는 상상으로 들뜬 마음을 가누며 무아지경으로 기다리든 그 시간에 여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강릉에 있는 열차가 모두 떠날 때까지 초조하게 기다렸지만 기어이 그 여자는 없었다.
하루는 절망하고 하루는 희망하면서 기다렸던 순간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자
속았다는 憤함! 속였다는 怒함! 으로 가슴에는 멍이 들었다

“그래 만남이란, 부질없는 착각일 수밖에 없다!”내 혼자 읊조리는 자조를 하면서도 몇 시간의 대화에서 느꼈던 나만의 直感! 약속을 어길 여자는 아닐 것이라는 확신이 내 속 어딘가에 옹골차게 자리를 잡고 있어 열차마저 빈 강릉역을 벗어 날 수가 없었다.
여자 때문에 젊은 날의 하루를 역에서 서성인다는 게 자존심 상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기다리면 틀림없이 만날 것 같은 예감에 별빛을 응시하며 팽팽한 시간으로 하루를 꼬박 더 보내야만 했다.

어둑한 열차에서 본 여자의 모습이 기억조차 확실하지도 않은데 지금 생각하면 生面不知의 사람을 만나려고 내가 얼마나 무모했는지 . . .

만 24시간 후의 7. 28. 오후 7시 강릉역엔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많은 사람들 틈새 틈새로 식은땀 뿌리면서 찾아 다녔지만 그 여자는 없었다.
그래 결국 그런 것이야! 모든 人間이 다 잡초같은 存在인데
그 여자인들 무슨 난초라고... 허망한 나만의 신념을 믿고 하루를 보냈단 말인가!
 
심장이 터질 듯 한 배신감을 느끼며 강릉역을 뒤로하고 돌아서려는데 “ 兄예! 여기 있습니더! ” 기막힌 소프라노 목소리가 아닌가! 그 여자였다!
벙거지같은 등산모자를 푹 눌러쓴 채 안경까지 썼으니 전혀 느낌이 달랐지만 목소리만큼은 귀에 익었다.
세 명의 여자 모두가 반가움과 놀라움에 낯설지 않게 악수를 나누고 약속을 지키지 못한 사연을 설명한다며 왁자지끌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이들은 이미 7시 40분 부산행 열차표를 끊은 상태였고 곧 개찰을 앞둔 시간인지라 내가 우선 설악산을 포기하고 행선지를 바꿔야 할 상황 이였다. 그래서 잠시 기다리게 하고 매표소로 뛰어가 표를 구해야만 하였는데 아뿔싸 표는 이미 매진, 입석조차 없었다.

순간적인 생각이 세 명의 표를 물리고 다음 열차를 타면 될 것 같아 의논하려 세 여자가 있던 광장으로 돌아오니 이게 웬일! 아무도 없었다, 이미 개찰하고 열차에 타버린 것 아닌가,
타겠다든지, 가겠다든지, 한마디 전갈도 없이 . . . .
무작정 플랫홈으로 뛰어 칸칸이 창문으로 손을 흔들며 확인을 하고 겨우 찾아냈을 때 갑자기 어색해진 표정의 그 여자가 입구까지 나와서는

“미안... ...합니더! 다음 기회에 만납시더!”
여자의 목소리에는 떨림이 있다고 느꼈다.
“어디서 만날까요?”
나는 또 얼마나 참담하고 절제하기 힘든 목소리였든가!
“연락처 드릴께 예!” 그러면서 마산의 주소를 알려 주었다.
나는 내려야 하지만 이대로 헤어질 수 없다는 망설임에 머뭇거리다 며칠 전 이 여자 태워줬던 열차 속도가 되어서야 뛰어 내렸다.

그렇게 야속하게 보낸 강릉역만 떠올리면 난 광야에 팽개쳐진 마른나무 신세로 전락되어 허허로움의 망루가 되고 만다. 내 젊은 나이에... ...

그때 그 여자는 내가 뭐 하는 사람이냐? 어디에 사느냐? 물은 적이 없다. 마산 주소 적어줄 때 “마산에서 뭐 합니까?”라고 내가 묻자 “학교 있습니더!” 나는 小都市 마산에 무슨 대학이 있는지만 궁금했지 그 이상은 알 바도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헤어졌던 그 여자를 다시 만나기까지는 지금까지 살아온 내 일생일대에 없는 고난과 좌절, 일주일 동안의 무모한 여정 3일 밤낮의 굶주림까지 겹친 몇 날의 투쟁 끝에야 전마선과 본선이 마주치는 거제도 외딴 섬 황포포구 한 가운데서 만나게 되는 역경을 겪게 되리라고는 당시로서는 상상도 못하였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강릉역 광장에서 옥수수 행상을 하는 아주머니가 그 여자 일행에게 알려 줬다는 말! 惡意는 아니었겠지만 나를 가리켜 “저 청년들 불량배니 빨리 도망가는 게 좋다!” 이 한마디에 친구들은 혼비백산 열차로 뛰어가고 그 여자만이 반신반의 끌려서 열차를 타게 되었다는 사실을 . . . . .

그 행상 아주머니는 이틀 동안 강릉역을 배회하던 나와 후배 한명을 불량배로 봤던 것이다. 착각도 아니고 실수도 아닌 그 행상 아주머니의 순수한 판단이었다.
당시 날쌘 체구와 장발의 머리, 예리(?)한 눈빛을 한 나를 서울에서 온 불량배쯤으로 본 강원도 아주머니의 판단에 지금의 나로서는 敬意를 표할 수밖에 - - -
더구나 그 여자들이 교대 졸업하고 선생님으로 발령받은 교사들이라 했으니 존경하는 선생님을 보호하겠다는 君師父一體的 忠言으로 빨리 도망치라 했을 터이니 - - -

그렇게 야간열차에서 만난 동작 뜬 여자가 지금은 변죽만 쳐도 복판이 울 정도’의 아내가 되어 여름방학만 되면 여물먹은 소 되새김질하듯 느긋한 심사로 한반도 구석구석 안 다닌 곳이 없다. 그것도 사반세기 동안 칠월 하순에 - - -

2000. 8. 5.

창원지방법원 민사과 김 영 석




2. 그 여자와 헤어진 뒤 강릉역에서 설악산으로 향하면서

항해의 목적지가 없는 배는 어떤 바람도 순풍이 되지 못한다고 하였던가! 나만의 산행이 외롭다고 느낀 것은 동행해줄 사람이 있을 뻔 하였다는 기대치가 무너짐에서 오는 허전일 뿐, 처음부터 혼자였으므로 특별히 더 외로워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강릉역에서 부터 설악산을 오르는 동안 마음은 계속 무거웠다

난 그 여자를 잊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밤 열차에서부터 들떴든 그녀와의 만남은 솟아오르는 태양에 스러지는 새벽안개와 같은 것이라고 치부하며 희망도 부질없었다.

가야계곡을 거쳐 희원각으로 대청봉을 올랐다가 다시 봉정암으로 백담사까지 내려 갔다가 또 역 코스로 대청봉에 오르고 양폭으로 내려와 비선대에서 텐트를 치고 며칠을 지내는 동안 난 한시도 그 여자의 마지막 태도에 대한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결국 그 여자가 적어준 주소로 편지를 쓰기로 했다.
1973. 8. 2. 이였다.

청희!
山의 웅장한 자태 앞에서는 위대한 人間이란 없고 오직 약한 인간으로서 超然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자연의 신비로움이 이다지 황홀하다는, 느껴보지 못한 또 새로운 느낌!
좋은 곳을 다녀보지 못한 視野좁은 저의 가벼운 감탄인지 모르겠습니다.
막상 雪嶽山 入口에 도달하였을 때는 마음이 우울해 지더군요.

청희 일행과 同行하여 등반했더라면 하는 아쉬움 때문에 혼자의 산행이 더욱 초라해지는 것 같았어요.
만나고 헤어짐이 조그만 인연인데 약속이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마는 어긋난 約束을 이렇게 아쉬워함은 저의 마음이 너그럽지 못한 탓 일겁니다.

청희!
지금쯤 조용한 휴식을 취하고 계시겠군요. 아니 兒童心理를 이해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계실지도 모르고...
삶을 위함인지 배움을 위함인지 뚜렷한 目的意識도 없이 단지 습관의 궤도를 벗어나 새로운 발견을 하며 멀리 나가 보고픈 욕망에 의해서 움직이는 저의 여행은 설악산을 돌아보면서 새로운 活力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마음 같지 않게 형편없이 지쳐버린 肉身이 彼岸의 영역으로 갈 것을 요구하고 있으니 골치입니다.

청희! 마음에 있는 말을 다 할 수는 없습니다. 저에게 꼭 편지 한 장을 주십시오.
왠지 7월 26일과 28일 사이에는 장님이 처음 눈을 떴을 때에 본 세상만물의 기억과 같이 청희의 모습이 제 뇌리에서 사라질 것 같지 않습니다. 이곳에서는 8월6일까지 있다가 어느 곳으로든 갈 예정입니다.
비선대 위에서 텐트를 쳐놓고 밤과 낮을 잊은 듯 있어볼 예정입니다. 서울서 출발 할 때의 예정코스는 거의 다 돈 셈이고, 일월산과 주왕산은 청희 일행과 같이 가려는 막연한 기대로 다음 기회로 미루지요.
주소는 “설악산 우체국 유치”로 해 주십시요!
1973. 8. 2. 영석


물론 난 설악 우체국에서 그 여자의 편지를 받아보지 못했다. 비선대에서 우체국까지 하루에도 두 번씩 할일없이 오가며 며칠을 보내다가 더 이상 미련을 두지않기로 했다. 주소가 맞는지도 모를 일이고 설사 편지를 받았다 해도 그 여자의 답장을 기대하기에는 시간적으로 여의치 않았다.

두타산, 청옥산, 태백산등
한달여 동안의 산행과 여행을 마치고 8월 14일 서울에 도착하였을 때 나의 몸은 지칠대로 지쳤고 내 삶의 방향에 대한 뚜렷한 확신도 없어 집에 들어가서(자취방이 아닌) 편안한 잠이나 실컷 자야겠다는 생각으로 집을 향했지만 적잖은 기간동안의 비웠던 거리의 모습들은 내가 살던 서울이 아닌 것만 같았다.

다시 산으로 향하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가 나를 허전하게 했고 나그네 같은 심정으로 대문에 들어서면서 몇 달 만에 찾아온 아들을 맞이하는 어머니의 눈빛에서 아버지가 집에 계시지 않는다는 확신만 들었다.
어머니는 아무소리 없이 편지를 한통 내미셨다. 나로선 전혀 예상치 못한 그 여자의 편지였다.



<그 여자의 서신 1.>


Dear friend

또 밤이 되었고 이 하루의 의미를 밤과 낮 그 한번만으로 치부해 버린다면 정말 숨이 막혀 버릴 것만 같습니다.
난 어쩌다 바보처럼 生活을 단순하게 만들고 있는지... ...
로오렌스의 The plumed serpent에는 어떤 상태든지 자신을 마음대로 제한 할 수 있는 것이 생활의 일면이라는데. 강릉에서 돌아온 후 미미한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속 시원히 감동해볼 그 무엇을 찾고 있는데 도와주실래요?

안녕하세요? 자연 속으로만 헤매고 있을 영석(칭호를 생략하겠습니다.)이 몹시 부럽네요. 자신을 측정할 수 있는 좋은 기회들이 될 거예요.
지금 당장이라도 가고 싶은 일월산이예요. 오늘 온 종일 함께 산으로 갈 친구들을 구했지만 모두가 시간들이 맞지 않아 지금 얼마나 답답한 심정인줄 모르겠습니다.
또 영석에게 연락하여 합하게 될지도 아주 어려울 것 같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너무 먼 거리에 있습니다. 좋은 방법이라도 있음 적어 보내주세요.

개학이 계획에 의하면 8月 21日로 되어있어요. 내가 가질 수 있는 시간은 15日, 16日을 제외한 날 모두입니다.

돌아올 때 첫 인상에 대해 이야기했었는데, 영석이가 좋게 평가해준 것 이상으로 우리도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정말 좋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you의 등산이야기를 다시 듣고 소리내어 웃고 싶은데... 거대한 욕망 속에서 움직이는 여행이 지쳐버리지 않도록 하세요.
등산인과 낚시꾼!
이 한 낱말 속에서 멋진 취미 生活을 하는 you를 찬양합니다.
또 비가 내릴 것 같아 걱정이 됩니다.

엊저녁엔 Folk and pops festival에 참석했었는데 흥미 있게 재즈 피아노 연주를 듣고 이런 류의 연주법도 배우고 싶어졌습니다. 자신이 만들지 않으면 작은 보컬이나 연주회 등은 곧잘 놓치고 마는 이 소도시에 살고있는 사실이 싫습니다.
소도시에서 일반 주민에게 보급된 양은 아주 희박하고 음악 감상실이 영업이 되지 않아 폐쇄 되어버린 사실 앞에 이 지방을 사랑하는 내겐 비감뿐이랍니다.
음악, 이 과목이 내 生活에 큰 영역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영석은 음악과를 좋아하는가요? 좋은 이야기가 생기면 또 소식 전할게요. 안녕!

馬山에서 淸

<8月 6日까지만 설악산에 있을 거라고 해서 집으로 보냅니다. 설악산으로도 보내고 말입니다.>


급하게 써느라 그랬는지 마지막 부분에 날자도 적혀있지 않았다.
언제 쓴 게 중요할리도 없고 내 앞에 이 편지가 있다는 사실 앞에 나의 피로는 흥분으로 변했고 그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서울에서 그 여자에게 띄운 첫 편지>


나의 感性 외에는 모든 것을 무시해버리고,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는 바보가 되어서 그러나 정말은, 나의 思考를 정리하고 無能을 일깨우며 무엇을 僞해 살아야 하는가를 알고 싶었기에, 누구나가 內的으로 지니고 있는 人間 存在의 슬픔을 잊기 위한 한 방법으로 떠났든 산행
말은 하기 나름입니다. 결국은 취기에 의해서 돌아다닌 거라고 말하죠!

이것이냐? 저것이냐? 극단적인 生을 요구할 수 없는 人間은 이렇게 돌아다니는 것만이 모든 不條理한 現實의 긍정 인양, 그래야만 알겠다는 듯이......

마냥 돌아다니다 이제야 도착했습니다. (13日 11時 설악산에서는 10일 오전까지 있었으면서도 淸의 편지를 받지 못하고서 말입니다.

40여일 동안의 여행중 가장 소중하게 알고픈 청희!
그 동안 안녕하십니까? 번잡한 거리를 떠나서는 살아갈 수 없는 都市의 올가미에 묶인 石은 또 도시의 속박으로 자진해서 돌아 온 것이랍니다.
건강엔 이상 없지만, 마음은 찢어진 채......

청, 共感이란, 같은 運命의 우리 젊은이들에겐 꿈보다 소중한 것입니다. 좀더 많은 對話를 갖고 싶음도 그러한 연유이구요.
상당히 큰 글씨로 음악과를 좋아하시냐고 물었는데, 네! 좋아합니다. 조용한 생각만큼이나 조용한 음악듣기를 좋아한답니다.
도착하여 아직 샤워도 않고 책상 앞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는 저를 생각하고 웃어 주십시오. 손과 얼굴은 나치스의 패잔병 같은, 초라한 몰골입니다. 급히 쓰다보니 두서가 없습니다. 만나게 되면 얘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P.S
제가 서울은 언제 출발할지 지금 당장 말할 수 없습니다만 아마 곧(17日 內)일겁니다. 그러니까 18日 오전 11時 까지는 부산 역에 도착하겠습니다. 특급 대합실이 따로 있다면 그곳서, 그렇지 않다면 일반대합실에서 기다리겠으니 착오가 없도록 하십시오. 만약, 사정상 부산에 못 오시겠다면 마산에 그대로 계십시오. 제가 찾아가겠습니다. 만나서 바로 주왕산이나 혹은 일월산으로 함께 산행하기를 기대합니다.
그럼 반갑게 만날 수 있기를...... 안녕!

8월 14일 11時50分

서울에서 石



편지를 중앙우체국에서 속달로 보내고 나오면서 내 마음은 단 하루라도 먼저가야겠다는 조급함이 생겼다. 속달이라 하여도 이틀은 걸리는 상황에서 내일 그 여자가 내 편지를 받을는지 알 수 없을 바에야 당장 전보를 치자! 그리고 내일 출발하자!

당시는 전화가 귀한 편이고 또 그 여자의 주소밖에 모르는지라 전보가 가장 빠른 연락방법 이었다. “16일 오후 마산역 도착 대합실에서 만남 요망 영석” 이것이 마산 내려가기 전에 보낸 전보내용이다.
이렇게 서두르면서 나의 제2차 여행은 시작되었다.
by 마음 | 2008/06/19 04:18 | 삶의 향기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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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노브노스 at 2008/06/19 04:33
아 이거 너무 감동적이네요^^ 저희 삼촌께서도 법원에계셔서 더욱공감이 갑니다. 잡초속의 난초라구 ㅋㅋㅋ좋은하루 보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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