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닭 남편
<장닭 남편>

品格이란, 사람 된 바탕으로 살아가면서 지켜야 하는 人格的 禮節이긴 하지만 결혼생활 28년이 넘은 지금 생각하니
夫婦가 품격에 맞게 산다는 게 공허하고 부질없다고 느낀 게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부부는 그다지 사회적 格이 높지 않음으로 얻게 된 자유분방함이 많다.

나이도 같고, 벌이도 같고 뒤숭맞게 덜렁대는 성격도 같아 잘 다투기도 하지만  싸운사실을 금방 까먹는 건망증도 비슷하여 우리는 유치하나마 절친하게 지내는 편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부부의 情으로만 채우지 못하는 미묘한 허전함이 조금씩 싹튼다. 자식이 떠난 빈집의 적막이 그것이다!
큰딸은 음악 한다고 미국간지 6년이 되었는데 작은딸 역시 대학입학 하면서 기숙사로 훌쩍 떠나고 보니 덩그렁 거리는 생활의 허전함이 여간 크지 않다. 공부하는 애들한테 신경 쓰며 숨소리 죽이고 지낼 때가 차라리 그리울 지경이다.

그렇잖아도 법원공무원생활을 그만두고 법무사 개업을 법원주변이 아닌 조용한 읍내인 내서에 하고보니 사람이 그리운 나날인데 집에서조차 허전하니 세월이 여간 무정하지가 않다.
格에 맞는 사람을 주변에서 만나보려고 이쪽저쪽 기웃거려 봤더니 가까웠던 친구들은 주로 외국 나가 있고 또 서울에 멀리들 사는 관계로 주위에 는 아무도 없음을 알았다. 혹시나 말벗이 될만한 사람이라도 있을까 싶어 주변을 살펴보아도
격조없이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나의 허전함은 채워지지 않는다.

마산은 유독 연고, 동창등의 유대를 많이 내세우는 보수성이 어느 지역보다 강한편이어서 이 지역에서의 나는 언제나 마이너러티(minority 소수)에 속함을 알았으므로 더 이상 교제의 한계를 원망치 않기로 하였지만... ...
그 동안 너무도 바쁘게 살아왔던 탓인가! 마음 터놓고 사귄 사람이 별로 없었다. 술 마시는 부류의 사람들과 피해 온 것이 우선 결정적이었는데 그렇다고 오랫동안 다닌 교회에서조차 교인과의 친분도 별로였음을 절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사교에 부적격 할 만큼 배타적 성격이었음인가?
서울에서 자라고 아내의 고향인 마산에서 정착한 나의 정체성이 모호했음인가...?

내가 사람사귐을 쉽게하지 않는 것만은 분명했다.
세상일로 대화를 하다보면 숲은 모른 채 나무만 바라보듯, 정제되지 않은 말을 함부로 하는 공격적부류의 사람을 기피하고
침묵으로 觀照하면서도 입을 열면 구국적이고 고상한 얘기만 하는 지도층행세하는 사람들과도 노는 물이 다르고, 도대체 화려함도 초라함도 없음에 나와 아내가 소속할 단체가 없음을 알았다.

결국, 아내와 내가 내린 결론이
우리끼리의 저녁운동이다. 그게 제일 속 편했다.
그런데 거기에도 문제는 있었다. 체력의 차이!
나는 그동안 등산과 테니스로 다져진 몸인지라 아내의 표현대로 장닭같이 나부대는 체질이고 아내는 애들 뒷바라지, 교직생활 30년에 진이 다 빠진 연약한 병아리 수준의 건강이니 이게 어디 쉽게 조화가 되는가!
할 수 없이 나는 같은 시간을 조깅으로 달리고 아내는 같은 코스를 걷는 것으로 때우기로 하여 일주일에 3~4번 부단히 저녁 운동을 하며 우리의 단조로운 삶에 만족하기로 하였다.

어젯밤에는 코로롱아파트에서 좀 더 멀리 떨어진 농산물 도매센터까지를 목적지로 정하고 걷고 뛰면서 (나는 200m쯤 앞으로 뛰다가 다시 아내가 걸어오는 뒤로 뛰는 식으로-) 밤 11시가 넘은 내서읍 농산물 센터에 도착하고 보니 광장이 어찌 그리도 넓고, 도로가 활주로처럼 비어 있는지 平和는 이런 것이다 싶을 만큼 한적했다. 간간히 인라인스케이팅을 즐기는 젊은 가족들의 웃음이 우리 부부를 즐겁게도 했다.

분위기가 잡히면 으레 그렇듯이 아내는 높은 음정의 가곡을 몇 곡 부르고 나는 흘러 간 팝송을 흥얼거리며 어둑한 광장을 이리저리 하릴없이 기웃거리느라 우리만 남게 되자
평화도 시들고 돌아올 때쯤은 몹시 지쳤고 자정이 가까워졌다.
터덜터덜 집으로 향하는데 아내가 느닷없이 힘이 없어 걸어갈 수가 없으니 자기를 업어달란다!
내가 헛웃음을 치며 가당찮게 쳐다보자
장닭이 병아리 하나 업기로서니 뭐 그리 대단하냐며 숫제 배짱을 내밀며 빨리 업어란다!

별수 없었다! 업히겠다고 우기는 마누라 못 업어줄 나도 아니고 장닭이 병아리 한 마리 못업겠냐며, 오냐 업혀라! 하고 등을 내 밀고 부부체육대회 참가하듯이 업고 날래게 달려봤는데 깔깔대며 좋다는 아내의 환호가 차라리 딸보다 더 어린 듯 했다.

그런데 한참을 조용해서 등에서 잠이라도 든 줄 알았든 아내가 보슬비 같은 음성으로 “당신 이렇게 건강한데 내가 약해서 어떡하지요!”
나는 가슴이 멍해진다. 업힌 아내의 몸이 이렇게 가벼울 줄이야---
멀리서 비취는 트럭의 불빛에 연애하다 들킨 처녀처럼 후다닥 등에서 내리는 아내의 태연함을 보며--- 가슴 아린 쓴웃음을 지어야 했다.

그동안 세월의 소용돌이와 밀물에 밀리 듯 중년의 끝자락이 된 지금까지 아내의 귀함을 모르고 살아왔던 것만 같다.
아이들은 이미 성년이고 우리만 덩거렁 남은 지금 내겐 참으로 아내가 귀하건만 그동안 아내에게 제대로 해 준 것이 없었음을 가벼워진 아내를 업고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아내가 나더러 장닭(?) 같다고 했다면 그것은 남편으로서 제대로 한 게 없다는 원망인지도 모르겠다.
장닭(수탉)이란 놈은 제멋대로 암닭을 품기도 하고 쪼기도 하고 천방지축 하는 놈 아닌가!

지금부터라도 주변의 산을 아내와 등반하며 건강한 餘生을 보내야겠다!
부부가 함께 취미생활 할 수 있기로는 다행히 내서읍 만큼 좋은 입지조건도 없는 듯 하다. 청량한 공기는 물론, 주변엔 어느 때나 오를 수 있는 야트막한 산이 있고 감천계곡이 있고, 광산사에서 바람재까지 걸을 수 있는 임도가 있으므로... ...

2004. 11.
<2006년 경남 변호사회지에 게재>

by 마음 | 2008/06/19 04:19 | 삶의 향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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