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배와 여교사의 만남(제3편)
 편지를 전달하기 위해 학교에 갔을 때는 며칠 전의 여선생님 외에 또 한명의 여선생님이 계셨다. 이제는 그들도 알았다. 청춘의 남자가 청춘의 여자를 만나러 서울에서 왔다는 것을, 그리고 무던히 기다리다 끝내 못 만나고 떠난다는 사실을---
정중히 인사하며 그동안 고마웠음도 표하고 마지막으로 이 편지를 전해줄 것을 처음의 여선생님에게 부탁하였다.

그 여선생님은 개학이 연기되었으므로 일주일 후에나 박선생이 올 것인데 안됐다는 듯한 표정으로 서울로 바로 갈 것이냐고 묻는 등 친절함을 베풀었다. 그들이 나에게 따뜻한 생각을 가졌음은 왜 일까! 섬마을 처녀선생을 만나러 서울에서 느닷없이 찾아온 남자의 출현이 황당하여 경계의 눈초리가 여간 매섭지 않았었는데 막상 관심의 대상이 떠난다고 하니 내가 측은하게 보였음인가...!
어쨌든 묘한 느낌을 받으면서도 이젠 모든 것을 포기했으므로 개의치 않기로 했다.

그래! 파랑새를 찾아 먼 먼 길 왔지만 그것은 내 생활의 탈피에 불과했다.‘희망’이라는 이름의 理想을 異性에게서 찾으려 했든 몽롱한 나만의 낭만이었을 뿐이다.
이제는 현실을 직시하고 내 젊은 날을 더 이상 허황되게 보내지 말자!
서울 가는 길로 다시 도서관에 가자! 인생을 알 수 있을 만큼 내 지적욕구를 독서의 양으로 채우자!

장목까지 걸어가서 부산가는 배를 타기에는 몸이 너무 지쳤다. 할 수없이 이 곳 황포에서 3시의 배를 타기로 하고 배낭을 둘러메자 허리가 휘청하며 허기와 갈증을 견디기 어려웠다.
포구의 왼쪽 해안에 수련장이라는 팻말이 있어 그 곳으로 발길을 돌려 털털거리며 걷다보니 어느 외딴집의 툇마루가 보였다.

내 모습의 무엇을 봤을까 허리가 굽은 할머니가 앉을 것을 권하며 냉수를 주신다.
마침 점심으로 수제비를 끓였다며 한 그릇 들어보라고 권했을 때에는 가슴에 뜨거움이 치미는 온정을 느꼈다.
이틀 전 황포에 온 첫날밤에 아이들에게 창경원 얘기로 감자를 교환해 먹은 것과 이 수제비가 황포에서 먹은 음식의 전부였다.

부두에는 세 명의 승선 할 승객이 대기 중이였다.
멀리서 뱃고동이 울리자 사공은 나룻배를 타라고 채근한다. 미련을 갖지 않기로 했지만 훌쩍 올라타기에는 아쉬움의 앙금이 가라앉지 않아 무거운 발걸음으로 미적거리며 맨 나중에 타고는 나룻배 난간에 털썩 주저앉았다.

구름이 흐르듯 사공이 배를 저었지만 나는 포구가 너무 빨리 멀어지는 느낌에 주체하기 힘든 공허를 맛보아야 했다. 잊자! 잊자! 황포를 잊자! 추억도 없고 미련도 없다. 잊자! 라고 주술을 하듯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8월 하순이긴 해도 남해바다 한낮의 태양 열기는 적잖이 높았지만, 선그라스를 쓴 채 모자까지 푹 눌러쓴 내겐 하늘이 높아 보이지도 뜨겁게 느껴지지도 않고 모든 게 밋밋했다. 구름도 낮아지고 바다는 하늘색 보다 어둡기만 했다.

여객선이 엔진소리를 멈추지 않은 채 머무르고 있는 동안
내릴 사람들이 난간에 대기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몇 명의 사람들 가운데 하얀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어느 여인을 부축하며 함께 내릴 준비를 하고 있다.
환자로 보이는 여인을 조심스레 쳐다보는 순간, 섬광인 듯한 햇살이 스치고 그 여인의 모습이 어디서 본 듯한 생각이 들자 나도 모르게 손을 흔들며 벌떡 일어섰다.

의심스럽지만 그 여자였다! 그런데 그 여자는 나를 쳐다보고도 전혀 관심이 없는 듯 울렁이는 배의 난간을 잡고 내릴 준비만 서두르고 있는 것으로 봐서 나를 알아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선그라스 속의 내 모습을 기억하지 못한 것은 밤 열차에서와 강릉역에서 잠깐 본 때문이었을까!
나는 얼른 안경을 벗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어어!” “아니 아니!” 동시에 벌어진 탄성은 심장에 폭격이라도 맞은 듯 신음처럼 터졌고 그 여인은 눈을 가늘게 뜨며 거의 굳어버린 모습이 완연했다.
그 여자였다! 박청희 선생이었다!
함께 온 여학생은 여학생대로 놀라움에 안절부절 하는 동안 나는 그 여자의 손을 잡고 부축해서 내리게 했다. 함께 내리든 승객중의 한 아낙은 박선생을 잘 아는지 연신 나를 쳐다보며 우얄꼬! 우얄꼬! 하며 중얼거린다.

다시 부두로 돌아간다는 얘기를 내가 사공에게 한 것도 아니건만 사공은 여객선의 사무장에게 탈사람 다 탔으니 떠나라는 손짓을 했다.


그 여자를 찾아 나선지 일주일, 섬에 도착한지 4일, 모든 인연이 끊어졌다고 포기하였고, 나의 여정이 너무 지쳐 몸조차 탈진된 상태에서 파도 일렁이는 바다 한가운데, 여객선과 나룻배가 잠시 머무는 곳에서 그 여자와 나는 연극장면 같이 邂逅(해후)를 한 것이다. 기다림의 아픔으로 다시는 오지 않으리라는 오늘 아침의 다짐도 까맣게 잊은 채 나는 다시 황포로 돌아오고야 말았다.

그 여자의 일주일은 이러했다고 한다.
학교에 있다가 내게 전보가 왔다는 동생의 전화를 받고 8월 14일 마산집으로 온 뒤부터는 집 주변에서 가족의 눈치를 보면서 지치도록 나를 기다렸단다, 참으로 궁금해서 한 시간을 하루처럼 보내느라 자신도 굶고 지냈다며, 얘기하는 동안도 나만 고생한 게 아니라는 듯 눈 흘김을 살짝 한다.

16일도 종일토록 기다리며 밖에서 서성이기도 하고 행여나 싶어 마산역에도 가보고, 서울 학생이 길을 묻거나 주소를 찾을까 싶어 동사무소에 근무하는 아는 사람에게까지 부탁하여 안내해 줄 것을 당부하였지만 17일까지도 소식이 없자 결국 포기하고 학교로 돌아가야 하는데 오지도 않으면서 기다리게 한 야속한 사람에 대한 괘씸함에 밥맛조차 잃어 며칠 굶은 탓에 결국은 몸살을 앓게 되었단다.

온다는 전보는 왜! 한 것이며 온다했으면 하루 이틀 뒤라도 와야지 소식조차 주지 않음에 대한 섭섭함이 몸의 기운을 모두 앗아가서 3일을 앓다가 겨우 정신 차리고 황포로 돌아가려 하니 어머니가 그 몸으로 혼자 보내면 위험하다 하여 고등학교 2학년인 둘째동생과 함께 왔든 것이었는데... ...

나를 알아 본 순간 기절 할 만큼 놀라 ‘아니!아니!’라는 소리를 질렀지만 반가움 보단 이일을 어쩌나하는 걱정으로 하늘이 노랗게 보여 나온 탄식 이였단다.

주소의 번지에는 집이 없고 공장만이 있어 집을 찾기 어려웠다는 나의 얘기에 바로 그 공장이 아버지의 공장이고 집은 그 공장안에 따로 있었단다.
공장 간판엔 전화번호도 있었는데 마산을 떠나 황포로 가기 전에 전화 한번만 걸었어도 서로 이 고생은 하지 않았을 것 아니냐는 그 여자의 나무람에 난 도무지 꿈만 같은 일주일이 내 인생에서 깊은 상처와 깨달음을 주었다고 주억거렸지만 사실 뭐가 뭔지를 몰랐다.

지금 이 순간은 그토록 힘겹게 만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너무 편안하게 얘기를 하는 것이 오히려 당혹스러웠다.
참으로 이상한 여자! 막상은 마주앉아 보기는 처음이면서 이렇게 정겨울 수가 있단 말인가! 나는 이 여자를 정확히 모르고 이 여자 또한 나를 알리 없건만...
젊은 감성은 예의와 절차란 가식을 생략하면서 느낌만으로도 이미 마음 깊은 대화의 장은 열린 것이다.

소문이 파도처럼 무서운 섬마을에서 우리가 함께 지낼 수 있도록 방파제의 역할을 해준 그 여자의 동생은 참으로 고맙기만 했다.
박선생이 머무는 자취방은 황포마을의 유일한 장로님 댁이었다. 그 날이 마침 수요일이여서 교회에 가야한다는 그 여자를 따라 생전 처음으로 교회를 함께 갔다. 아무 생각도 없었고 어떤 기도를 해야 할지 몰랐지만 남들처럼 무릎은 꿇고 앉았다.


그 여자와 동생은 저편 여자들만의 자리에 앉아 기도를 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도 순수하고 단아해 보인다. 이런 만남을 예정하였고, 교회에서 기도하는 인연으로 맺게 해준 전능자라면 과연 神은 존재하는 것인가!

그 날 저녁엔 마을에서 꽤 떨어진 해변이 보이는 언덕에 텐트를 치고 밤이 깊도록 대화하였다. 교회 성가대원이라는 그 여자와 동생은 찬송가를 너무도 듣기 좋게 불러 내 황량한 마음에 깊은 감동을 자아내게 했다. 언덕에 누워 여인들의 노래를 들으며 거제도 황포 섬마을의 환상적인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있었던 그 날!
내 살아온 날들에서 이 날처럼 신비로운 감성! 아름다운 밤이 있었을까!

무신론자였던 내가 기독교라는 신앙을 접하게 되고, 신비하리만큼 획기적 만남으로 알게 된 이 여자는 섬마을의 여선생이 아닌 내가 처음으로 느낀 이성의 戀人, 아니 황홀의 대상이었다.

황포에서는 이틀을 더 머물면서 하루는 바다에서 수영과 낚시를 하였고 하루는 박선생과 학교일직을 하면서 보냈다. 박선생은 내 편지를 보관했던 여선생으로부터 격려인지 시기인지 모를 놀림을 받으며 수박파티라는 비싼 값을 치르고야 내가 전한 편지를 되돌려 받았다.


떠나기로 작정하고 쓴 편지의 무엇이 그 여자를 감동시켰을까마는 이 편지는‘제 것이므로 돌려주지 않겠습니다.’라는 통보로 내 결별선언은 무효가 되고 말았다.

그 여자와는 일박이일의 코스로 양산 통도사를 거쳐 영치산을 등산하기로 하였지만 험한 영치산을 끝까지 오르지 못하고 통도사 인근 개울가에 텐트를 치고 밤이 새는 줄도 모르고 법당의 예불소리가 새벽을 깨우기까지 참으로 많은 대화를 나눴다.


문학, 종교 독일의 여류작가‘루이제 린저’의 ‘삶의 한가운데’를 읽은 서평까지 그 여자는 학교의 교사만 하기에는 아까울 만큼 교육정책의 긴 안목을 가졌고, 문학과 세계사의 폭넓은 지식을 가졌음에 그 여자의 독서량이 어떠한지를 가늠할 수 있었다.

나름대로 독서의 양을 많이 채웠다고 자만하든 나로서는, 부족함이 많음을 알았고 이 여자와의 대화에서 知性的인 여성의 멋을 처음으로 느꼈다.

그렇게 하룻밤을 새우듯 보내고, 나는 서울로 그 여자는 마산으로 가야하는 작별의 순간을 맞았다.
경부선과 경전선이 교차하는 조그만 역인 삼랑진!

내겐 이 여자와 이별의 장소였다. 이런 식의 헤어짐이 한번 있었다 하여 이별이 내게 익숙할 수는 없지만 며칠간 마음을 함께한 여인과 담담한 이별을 해야 하므로 감정수습이 쉽지 않았다.

마산행 열차가 오고 그녀가 먼저 떠날 때! 그 여자의 해맑은 눈에서 그윽한 情感이 있음을 알았을 때 나는 차라리 눈을 감고 싶었다.


서울과 마산은 멀고, 언제 다시 만나겠다는 약속을 한 바도 없고, 나는 상심하듯 서서 손 흔드는 그 여자와, 떠나는 열차를 넋 잃고 바라보아야만 했다.
강릉에서의 이별과는 또 다른 막연함으로...

만남은 짧기만 하였는데 이별은 너무도 길었다. 낙동강 철교아래 강물은 무심히 흐르고 나른한 몸에 눈을 감았지만 나는 그 여자의 생각으로 매캐한 터널의 공기조차 향기로 맡으며 열차 난간에 기댄 채로 밤을 새워 서울로 왔다.



<삼랑진에서 헤어진 뒤 서울에서 그 여자에게 띄운 편지>

淸姬!
서러운 이름 같이만 생각 되는군요!
예고도 없이 무시로 마구 가슴을 찌르는 숱한 전율은 누구의 그리움입니까?
모든 용기가 일시에 사라지고, 그대와 다시 대화를 나누고 싶은 이 떨림은 무엇을 말하는지요!

정처없이 방황하던 내 영혼이 그대를 만나면서 제대로 숨쉴 곳을 찾은 듯하여 평화로움에 적이 행복함을 느낍니다.
내 삶의 영역에는 나 외에 아무도 들어설 수 없도록 구축된 그동안의 완연한 내 자리를, 그대에게만은 조금 양보한다고 해도 섭섭하지 않을 것만 같습니다.

착하고 솔직한 생각을 지닌 그대 마음의 아름다움을 느꼈기에 난 허심탄회 하게 그대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싶답니다.
사려 깊은 언행의 소유자이면서 과감한 등산까지 감행한 용기있는, 청희 같은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는 사실에 無神論者인 나로서도 그 무엇인가에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청희!
곰곰히 생각했습니다. 삼랑진 Plate Home에서 그대를 보내고 나오면서부터 어제도 오늘도... 이 넓은 세상에서 한 사람이 이토록 소중한 存在일 수 있는가 라는 의문을...
소홀히 다룰 수 없는 그대임에도 편지 쓰고 있는 지금의 제 태도가 너무 불손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두 가지, 취하든가, 바보가 되든가 난 지금 두 가지 모두의 상태에 있답니다. 어쩔 수 없는... 정말 어찌할 수 없는......

1973. 8. 30
永 石.


<그 여자의 서신 2.>

My friend
수년 동안 가질 수 없었던 감정, 아니 절대로 받아들였을 것 같지 않은 어떤 감정으로 인해 이렇게 안정을 잃고 있는 나 자신이 바보스러워 보입니다.
아무 부러울 것도 못마땅할 것도 없이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생활에 선천적이라고 치부해 버릴 수만은 없는 나약함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누적된 욕망에의 꿈을 발달단계의 하나로만 생각해 왔던 것처럼 지금의 나를 그런 식으로 생각해야 하는지요!

안녕하세요? 어느 누구보다 잘 지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9.5 일 석의 편지를 받고 많은 생각으로 글을 썼지만 역시 보낼 수 없는 글들이 되었습니다.
하긴 이 편지도 그렇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지금 봉하게 될 거고 내일 마산에서 부치게 될 거예요.
싸매어 갔던 발 상처는 나았나요?

당신네의 유쾌하지 못한 소식 땜에 여간 불안하지 않아요. 이러한 어려운 사실들 앞에 “삶 그 자체가 바로 ”신앙”이라는 말이 대두되었나 보죠.
당신네가 힘겨워했던 답답하고 잔인한 이 지방의 내 생활이(극히 짧은 生活이겠지만) 신앙일 수도 없어요.

게오르그(독) 박사는 신앙의 대상이 自我에게 유일하고 모든 것이 되는 존재라는 말에 의하면 8月에 내겐 또 하나의 신앙을 얻게 된 거예요.
당신네의 글 중에 그 무엇엔가 감사를 드리고 싶다는 말! 황포에서 이야기했던 신앙이 아닌가 싶어, 난 얼마나 기쁜 마음인지 모릅니다.
석이 신앙을 가진다면 어쩌면 지금보다 평정을 유지할 수 있을 거예요.

통도사 가는 길에서도 이야기했지만 神에게 가기 전에 동행하는 인간집단의 나쁜 면을 보고 단적으로 이것이 기독교 인가? 기독교가 아니고 어떤 종교든 말이에요. 그러면 어쩌죠? 이러고 보니 사실 내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 것인지 모르지만 아주 전도사 같은 기분이 드는데요!
신학생으로 재학중인 이모부와 가끔 말다툼을 합니다. 장로의 딸이 교회를 비판한다고 나를 나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도 신학의 관점으로만 세상을 보는 그들이 별로 탐탁하질 않아요.

새 달과 또 다른 계절이 왔고 예전대로 당신네와 만나기 전의 그런 하루를 보내고는 있지만 내 영혼은 아주 큰 변화가 일고 있습니다. 어느 때는 세계가 뒤집혀지고 모든 人間이 기근 속에 헤매는 변혁을 바라기도 했는데 그런 상상보다 사실적으로 더 큰 변화를 얻게 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石도 실감한 자연의 大氣속에 묻힌 지금 그 언덕에서 함께 이야길 나눌 때만큼의 즐거움은 없습니다.
실제보다 더 슬퍼져 그 감정으로 떨어지는 잎의 법칙을 알고자 하는 바보 같은 인간이 활개를 치는 계절이기 때문에 빨리 이 가을을 보내 버려야겠습니다. 세월을 앞당겨 사는 사람이 바보라면 난 역시 바보인가요?
어쩔 수 없는 일을 가능하도록 하는 게 술 이라고 얘기하며 계속 취하는 방법을 택하면 곤란하죠!

통도사에서 촬영한 사진은 소식이 없는데 그 여고생은 우리가 싫었나 봐요. 그러면 石은 내가 石을 볼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셔야 해요.

8. 27날 이곳에 와서 연 3일간 10時間이상이나 잠 속에 빠졌구요. 내게는 어울릴 것 같지도 않은 깊은 상념에 빠지게 됨은 누구의 유산인가요?
우린 웃으며 즐겁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일만 생기게 될 거예요. (특히 石에겐) 또 소식 전할게요. 안녕!
73. 9. 7 淸




그 여자의 편지는 침착하면서도 나를 기쁘게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내 처한 실정을 잘 알지 못하였지만 나에게 술을 절제 할 것과 냉정하기를 요구했고 감정대로의 행동을 자제 해 줄 것을 부탁하는 등 평범한 듯하면서 사뭇 선생님 같은 의젓함으로 평안한 마음을 지니도록 했다.


<3일후에 다시 온 편지>

안녕하세요?
한 장의 당신네 글 속에 이렇게 많은 기쁨이 도사리고 있는지는 예전에 미처 몰랐습니다.
또 이 작은 글이 영석의 生活에 약간의 보탬이 될 수 있다면 좋겠어요.

9월 8일(토) 馬山에 왔다가 오늘 아침 황포에 갔었지만 내겐 의미 없는 중추절의 덕분으로 4시경에 다시 마산에 도착했습니다. 휴일보다 즐거운 편지를 받게 되었군요.
아주 건강하고(약간 약오르지만), 좋은 계절이고 淸의 소식을 받게 되었다면 이제부터 제발 열심히 공부하세요! 몰입의 상태가 된다면 모든 어려움을 견딜 수 있는 지름길이에요.

이 감각적인 世界속에서 살고 있지만 역사가 나름의 집필로 세기를 보내는 그런 人間이 되지 않기 위해서 말이에요.
그렇게도 많은 이야기를 했으면서도 영석의 사고방식을 누구도 이해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共感이란 단어는 소멸 되어야합니다.
석으로 인해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 것 같기에 이제는 황포에 가는 길이 옛날만큼 싫진 않습니다. 석이 걱정하던 감기도 약간 나았지만 그 여파는 계속입니다. 항시 건강을 자부했는데...

지금 라디오에선 좋은 노래가 나오고 있습니다. Englebert Humperdindc의 There goes my everything 조영남의 떠나가는 연인으로 소개되었는데 “저기 멀리 떠나가는 여인, 인사도 없이 가는 여인…… 발자욱 소리에 귀 기울인다.” 가사는 퍽 근사한 것 같았는데 이것밖에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지금처럼 쏟아지는 비속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같아 아주 좋습니다.

오늘 영석의 근사한 사진을 받게 되어서 아주 기쁩니다. 통도사의 그 女高生이 사진을 부쳐주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기쁘다는 표현 이상의 다른 어휘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실력 탓이죠. 뭐)

10월이나 11월초에 꼭 서울을 간다고 말 할 수 없지만 만날 수는 있을 거예요. 노력 해야죠!
그러니 영석도 연락 없이 불쑥 찾아오는 어리석음을 보이진 마세요!

설마 지난번의 고생을 잊지는 않았겠지요. 우선 지금은 둘 다 안정을 얻어야 하는 시기예요. 누군 술 이야기 많이 하는 사람을 알게 된 기쁨이 없나요? 역시 共感이란 말이 소멸되지는 않을 것 같아요.

편지는 황포로 해 주세요. 주일마다 집에 오지만 직접 내가 받지 않는 게 싫어요. 이렇게 긴 글을 (예전엔 상상도 못했지만) 쓴다는 건 (그저께 보낸 편지도 그렇지만) 기록적인 사실들입니다. 아마 감정과 순화되는 밤의 덕분 일 거예요. 안녕!
73. 9. 10 馬山에서 淸


* 나는 그 여자의 편지를 30년 넘게 잘도 보관하고 있으므로 그 여자의 얘기를 이어 갈수 있으나 중간에 생략된 듯한 나의 편지는 결국 그 여자가 내 편지를 분실했던가 보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당시 나는 사회와 삶에 대한懷 疑(회의)가 너무 깊어 술을 많이 마셨고, 정신적 공황이라 할 만큼 자제력이 없었을 텐데 그런 나의 상황을 그여자에게 글로 썼던 것 같다
by 마음 | 2008/06/19 04:21 | 삶의 향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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